세상에 든든히 뿌리내렸다고 생각할 때보다, 오히려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한다고 느끼는 날에 글이 더 잘 써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글을 쓰는 것이 부유하는 말들을 잡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인만큼, 나 역시 말들과 함께 떠다니다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을 잡을 수 있어 그런 것 아닐까?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재발성이라고. 그런게 뭔지 까먹고 살았다가 요즘 들어 자꾸 죽는 생각을 많이 한다 했더니 역시나. 예전의 죽는 생각 하는 나와 지금의 죽는 생각 하는 나는 비슷해보여도 전혀 다른 (오히려 나아진) 사람이란 선생남의 그 말씀 하나를 붙들어 보았다.
불안에 시달리는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세상은 위험한 공간이 되고, 곁에 머무는 관계들은 뿌리내리지 못하고 붕 뜬 내 존재만큼이나 무중력 상태가 되어 우주 저 편으로 떠나버릴 것 같다. 나를 미워할 것 같다. 무중력 상태의 우주엔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취방엔 나를 제외한 온 공간이 적막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어쩌면 실제 세상과 다를 수 있다는 미심쩍음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아득함이자 또한 안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나는 도대체 어느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진실은 뭐지? 내가 지금 여기서 생생하게 겪는 두려움은 환상이 되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니 빠져나오라는 엄마와 친구, 상담 선생님의 말은 공포 속에서 떠는 나를 현실로 내려놓는 중력이 된다. 나는 무서울 때 그들의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또 약 뭉치가 한움큼 생겼다. 이 약을 먹고 나면 이제 당분간은 실체 모를 불안에 시달리며 의자에 앉아 숨만 몰아쉬는 일은 없겠지. 샤워도 빠릿빠릿하게 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도 쓸데없는 생각 없이 집중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가득 찬 공간에서 비현실감이 몰려와 뛰쳐나갈 일도, 한동안은 없을 것이다.
3년 전 내 진단명을 받게 한 사람에 대해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를 불안한 어른으로 만들었던 나의 지난 시절을 생각한다. 이 상태가 당연한 줄 알고 살았던 10대와 20대의 나를 생각해본다. 인간 정신의 항상성과 보수성이란 지독해서 다시금 나에게 그 상태가 당연하다고 여기게끔 만들 때가 많다.
감기처럼 찾아온 오늘의 불안엔 약을 먹고,
일찍 잠을 청하고, 일찍 일어나고,
바닥이 느껴질 때까지 발을 구를 것이다.
언젠가 나는 중력을 느끼며 살,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무중력의 환상이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