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단상 - 지나간 사랑에 부쳐
21.11.26
오늘부로 2년 5개월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해서
이별이란 실감도 안 난채로 그대로 집에 왔는데
2년간 함께해준 맥북도 없어,
별안간 로그아웃된 메일 계정과 날아가버린 슬랙 계정을 보자니 역시나 이 단절의 순간은 적응하기가 어렵다. 이게 처음도 아니면서.
첫 퇴사 때엔 그당시 단골 술집이었던 을지로 <광장> 에서 술 한잔에다 무슨 똠얌꿍 국수를 그간의 마음 고생을 보상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먹어치우고 사장님께 이제 뵙기 힘들겠다며 인사까지 드리고 왔는데,
별 일 없던 오늘은 그냥 소박하게라도 마무리를 짓고 싶어서 집에 와서 마라탕을 시켜 먹었다.
다음 회사 출근은 월요일이다. 그동안 몸담았던 곳들과는 달리 모든 프로세스가 오와 열을 맞춘 듯 딱딱 진행되는 곳. 동료들과 일주일 다녀보고 별로면 포도, 좋으면 딸기를 보내달라는 농담같은 메시지를 서로 던졌다. 거봉이냐 킹스베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마치 4호선 안산선 구간과 수인분당선 환승이 한 번에 되는 한대앞역 승강장에 서 있는 것처럼, 나는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긴 환승 통로를 걸어갈 틈도 없이 재빨리 건너편에 정차한 다른 호선 열차를 올라타는 사람 같다. 둘은 나란히 달리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반짝 눈을 뜨면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 그렇게 풍경도, 사람도, 일도, 살아가는 방식도 모두 바뀌어 있겠지.
업계에 몸 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20대 초중반의 맹렬한 사랑과 열정으로 서비스를 대한다기보단, 여러 한계가 보일지라도 계속 사랑하겠다는 매일의 결단이 나의 일을 만드는 것 같다. CS는 넘칠 것이고, 백로그는 늘 밀려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무리한 요구를 할 것이고, 언론은 우리 흠결에만 관심이 있는 듯 하고, 문제는 언제나 있을 것이다.
이제 아마도 이런 말들이 더 많이 내 삶을 채우리라.
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
다 웃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
기분이 나쁘구나.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맘에 안 들지만 지금 여기서 뭐가 필요하지?
문제가 있다. 어떻게 해결하지?
매일의 모색과 실천, 일관성이란 어쩌면 사랑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과정이 우리가 아는 '사랑' 만큼이나 로맨틱하지는 않을지라도.
이제 지나간 서툰 사랑을 반납한 장비와 어쩌면 영원히 봉인될 나의 지난 구글과 슬랙 계정에 실어 보낸다. 다가올 새로운 사랑에겐 매순간 서로를 위해 꾸준하겠노라고 말하고 싶다. 그 실천이 둔탁하든 운 좋게 성공하든, 어쩌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