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장서사

비현실을 사는 삶

서울시 청년공유공간 청년청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by 치슬로

(2018.11.15)

출근이란 걸 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집에서 불광역 서울혁신파크까지는 꼬박 1시간 반이 걸린다. 매일 졸린 눈을 부비며 콩나물 시루같은 신분당선을 타고 양재에서 3호선을 갈아타서 드디어 불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서울혁신파크와 50+ 캠퍼스, 한국환경시험연구원 광고가 있고 2번 출구를 지나 조금 걸으면 북한산과 바닥을 온통 노랗게 가득 메운 은행나무가 맞아 준다.


60년대에 조성된 2만평 단지 안엔 나무가 빼곡하다. 잘 자란 나무들 틈엔 밧줄을 매달고 나무에 오르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넓은 단지 안에 일회용품을 쓰는 사람도 공간도 거의 없어 테이크아웃 컵과 플라스틱 용기를 본 지가 꽤 되었다.


요즘 주로 머무는 건물인 청년청에 들어서면 아침부터 커다란 스피커에서 시티팝이 울려퍼지고 있다. 1층 카페 사장님과 제일 먼저 인사를 하고 인터뷰로 알게 된 분이든, 잘 모르지만 마주친 적 있는 것 같은 분들과 모두 정겹게 인사를 나눈다. 그렇게 우유와 버터를 안 넣고도 맛있는 비건 빵을 매일 먹고 사장님과는 신제품 이야기도 종종 나눈다. 오늘은 단호박 머핀을 먹었다.


옆 건물인 공유동엔 하자센터 산하의 청소년 진로 센터인 크리킨디센터가 있다.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춤과 요리, 코딩 등을 배운다는 그곳엔 청소년들이 직접 요리와 서빙을 하는 식당이 있고, 그곳 밥은 참 맛있다.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이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고 물빠짐 선반에 올려놓는다. 그 건물 3층에는 북한산 들개 출신인 강아지도 산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써놓고 봐도 참으로 이 세상 아닌 다른 세상 같은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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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자신의 꿈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묻고 답한다. 10개의 질문 안에 어떻게 그 고민과 계획과 너른 목표를 다 쓸 수 있겠냐만은, 하나의 직업과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프로젝트 단위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생활을 이어나가는 이들의 이야기엔 분명 불안함도 있지만 묘한 확신과 삶의 기쁨이 묻어나온다.



사무실을 건축적 실험 공간으로 쓰는 건축사 사무소부터 크레파스를 만드는 팀, 신개념 운동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팀, 자전거 교육부터 제작, 정책 자문까지 모든 걸 다루는 팀, 피벗 이후에 마음을 다잡고 나아가는 스타트업, 공대생 출신으로 문화기획사를 차린 팀, 놀이터 만드는 팀, 페미니스트 극작가 모임... 진로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팀은 처음 본 나에게 커피를 내려주시며 그런 이야기를 해 줬다.



"우리가 받은 교육에서는 진로에 관해 이야기할 때 30대 이후, 직업이 하나로 분명한 삶에 대해 이야기해요. 방황하고 이리저리 부딪히는 20대의 삶은 거기서 삭제되어 버려요. 그래서 다들 그렇게 대학 가서 방황하는 거 아닐까요? 저는 그래서 방황하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가는 20대의 삶을 진실되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학교, 회사와 하나의 직업적 타이틀에 집중하는 현실적 삶은 분명히 아직도 꽤 많이 지배적이지만, 우리가 배우지 않았던 현실 뒤의 '비현실' 적 삶은 자갈을 뚫고 나오는 새싹들처럼 움트고 있다. 삭제된 방황과 실험은 이제 다시 쓰여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그 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음에 매일 감사하고 있다)


가끔 출근할 때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모두와 인사하고 맛있는 거 매일 먹고, 하고 싶은 일 하는 사람들만 만나고 젠더 감수성 높고 친환경적이기까지 한 이 비현실적 삶에 계속 머물러도 괜찮은 걸까 생각했지만 당분간 나에게 주어진 이 비현실적인 삶에 잘 머물러보기로 했다. 깊게 체화된 비현실은 언젠가 정말로 진짜로 살아갈 매일의 삶이 될 것이므로. 이 지독히 현실적인 세상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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