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장서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2017.11.23 일기

by 치슬로


요즘 사실 글을 잘 못 쓰는 이유는 표현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데 이걸 말로 풀어낼 방도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도 추상적이었던 나의 언어는 여러 시간을 거치면서 이제 글로서 나타날 수 있는 형태마저 잃은 듯 하다. 마음에만 머물러 있는 표현들은 남의 글을 읽으며 그 글자 위에 잠시동안 포개져 나타나며, 영화의 장면들 속에 부유하다 사라진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보기 시작했나, 내 말을 대신 해 줄 누군가를 찾고 그 사람이 내 말을 하는 것을 보려고.

상담 갔다가 오늘은 나의 N(직관형) 기질에 대해 이야기했다. 꾸준히 뭘 하기가 어려운 이 산만한 사람들은 추상적인 표현을 쓰고 이해하는 것에 능하며, 변화와 혁신을 늘 꿈꾸며 산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기 때문에 보고 만져야만 느낄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두각을 나타낸다. (오, 네가 보지 않고도 능히 나를 믿느냐? 하신 예수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대신 이 사람들은 똑같은 일상을 꾸려나가는 일에 약하다. 한 마디로 시작도 끝도 없는 모호한 상태가 지속되는 건 이들에게 쥐약이다. 안정을 원하면서도 끝없이 변화와 발전을 원하는 모순된 인간, 그래 그게 나야.

"선민씨에겐 변화와 활력이 필요하네요."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보통 내 또래의 사람들이 활력을 어디서 얻느냐 하면, 그건 바로 연애라고 한다.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한 시기가 지나가는 과정을 함께 공유할 사람이 없어 하나의 응어리가 10개가 되도록 괴로워한 사람이 어딘가에 있었다고 했다. 근데 나는 내 마음 속에도 있다는 그 응어리가 1개인지 10개가 되었는지, 쇠똥구리 똥 굴리듯 커다란 덩어리로 불어났는지 알 길이 없다.

적응의 동물인 인간은 현재에 집중해서 살아남을 방도를 어떻게든 찾아내니까. 그러면 그런 응어리 숫자를 헤아리는 괴로움 따위는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오늘을 사는 일에 비해 그건 너무나 사소하니까.

이야기하다보니 문득 어느 순간 위로의 가치를 나도 모르게 폄하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표현하지 않는 말은 형태를 잃는다. 그 다음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현재의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못하는데 너에게 내 문제를 말해 무엇하겠니.'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민폐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위로에 대한 기대는 사라지고, 문제에 대한 '해결' 만이 지상 과제가 된다.

어제 <공동정범> GV에서 이혁상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저는 이 영화나 인터뷰가 이 분들의 아픔을 다 치유했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심리치료나 정신과적 치료가 다 해결할 것이라 믿지도 않고요...(중략)... 하지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해하며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를 잘 운반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문제와 상처는 늘 있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문제 앞에 놓인 자의 몫이지만, 그 문제가 늘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대가 머리와 꼬리를 분간하기 어려운 거대한 악이라면 더욱 더.
어찌됐건 그 때엔 상처가 덧나지 않게 약이라도 바르고, 붕대라도 동여매고 나서야 한다. 싸웠다가 더 크게 다치면 안되니까. 그런데 그 붕대를 동여매는 일은 다친 나 혼자서는 못 하는 일이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이 땐 혼자 하겠다고 덤비는 것이 훨씬 더 민폐일 것이다.

사회라는 전장에서 아마도 응어리는 계속 멍울져 올라올 것이고, 이기는 날도 있겠지만 아마도 힘쎈 놈한테 얻어터지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힘쎈 놈을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응어리가 목구멍을 꽉 막기 전에 풀어야 하고, 상처는 치료해 두어야 한다. 하지만 둔한 우리 감각은 응어리가 몇 개인지, 상처가 났는지도 모른 채 문제없다고 착각하며 살게끔 돕는다.

그러니- 스스로는 못 세는 마음 속 응어리가 몇 개인지 세어 주고, 더 생기기 전에 안아서 녹게끔 만드는 것이 곁사람의 역할이 아닐지. 상처에 빨간약 발라주는 아주 작은 일도.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내맡기는 일은 나의 몫이겠지. 비단 연인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깊은 신뢰가 동반되는 멋진 관계에서라면.

그래서 글을 쓰다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은 이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 속 응어리가 몇 개인지 세어줘. 그래서 걔네가 녹게끔 꼭 안아줘. 상처는 어차피 계속 생길 거지만 너에게만은 내 상처를 보일게. 그땐 빨간약 발라주고 밴드 붙여줘.

사랑하고 싶단,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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