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reversible
2017.12.9 일기
1. 2017년 한 해동안 평생 봤던 영화의 1/4 정도를 봤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영화관에 가서 혼자이든 둘이든 여럿이든 영화를 본다. 세상은 넓고 좋은 영화는 많고. 새로 나온 재밌고 좋은 영화가 계속 쌓여가기 때문에 늘 왓챠 '보고싶어요' 목록에 저장해둔 영화를 다 볼날이 올까 궁금하다.
2. 만날 사람들은 어떻게든 만난다는 인연의 신비함을 체감했던 한 해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시절 매주 양장본 노트에 긴 글을 주고받던 친구와는 서로의 험난한(?) 시절을 거쳐 같은 건물에서 한 층 차이로 함께 근무하는 사이로 다시 만났다. 또한 친해지고 싶다고 속으로만 생각하던 선배는 도무지 친해질 기회가 없었는데, 8년이 지나 영화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는 든든한 동료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인연들은 동시에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또 다른 인연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3. 힘든 일이 많았던 만큼 변화를 간절히 바랐고 그에 응답이라도 한 듯 물리적 공간과 비물질적 공간(마음?) 의 변화가 따라왔다. 사무실에 앉아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남산을 바라보면 마냥 행복하다. 내 몸속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는 위와 이 친구들 역시 고생깨나 시켰지만 다행히도 평생 만나본 분들 중 가장 좋은 의사 선생님들께로 날 인도했다. 믿기진 않겠지만 치과 가서 신경치료를 하느라 끙끙 앓다 나오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정신적 고통은 물리적 고통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재밌는 사실을 알았다. (아 이래서 힘들게 운동하면 스트레스 풀리는거로군)
4. 우리가 '이전의 상태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라고 선언할때 이것을 변화라고 한다고 신형철 평론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 에선가 그랬던 것 같다. '되돌아가지 않겠다' 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변화라는 개념 자체에 자신의 의지를 넘어서는 어떤 마술적인, 혹은 운명적인 힘이 작용한다고 전제를 깔기 때문이 아닐까. 쌓여온 자기 성찰/기도가 힘을 얻어 언제든 뒤로 고꾸라질 수 있는 연약한 내 자신을 뒤에서 붙드는 실체로 거듭나는 것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래서 내 의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것.
5. 공교롭게도 올해 부활절은 4월 16일이었는데 이것은 예수님 부활 사건과 동시에 이 사회는 세월호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엄숙한 선포이기도 했다. 그리고 성가대석에 앉아 있던 나 역시도 "오늘 이후의 너는 결코 오늘 이전의 너와 같을 수 없다" 는 깊숙한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8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가장 내홍이 심각했던 MBC는 최승호 기자를 사장으로 선임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해직 기자가 복직되어 사장이 되는 정도의 가시적인 사건이나 체험은 없었으나 그 날의 음성은 나에게 있어 부정할 수 없는 확신으로 자리잡았다. 그렇게 천천히 회복해 나갈 수 있는 바탕을 만들었던 것 같다.
6. 영상을 찍는 멋진 친구에게서 영감을 얻어 하루에 들은 아름다운 사건과 말들을 기록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바이올린 연주에 대한 고민을 들은 이야기,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다는 격려, 극영화 안에서 자신도 예상 못한 다큐멘터리의 순간을 만났다는 봉준호 감독과 김대환 감독의 고백..
아름다운 것을 담아야겠다는 순간의 결심은 그래도 내가 잘못 가지는 않고 있다는 다행스러운 증거가 된다.
7. 스물여섯이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