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4
대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학교엔 교양 필수인 <발표와 토론> 이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학교에서 그 과목은 '발토', 소위 '발리고 토하는' 무시무시한 별칭으로 불렸다. 그 '발리고 토하는' 과목을 어쩌다가 가장 빡세고, 학점이 짠 교수님 밑에서 듣게 되었는데 생각만큼 교수님은 그리 무서운 분은 아니었고 주기적으로 학생들에게 학교 옆 백반집에서 밥을 사 주시는 소탈하고 재미난 분이었지만 그분이 요구하시는 글의 분량과 퀄리티만큼은 정말이지 너무나 나에게 힘겨웠다.
언젠가 교수님께 푸념섞인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교수님 저는 글의 퀄리티가 너무 들쭉날쭉해요. 어떤 날은 갑자기 삘이 막 와서 잘 써지고, 어떤 날은 몇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도대체 글이 써지질 않아요. 어떡하죠...?" 라고 하니, 교수님은 "그럼 그 '삘' 이 자주 올 수 있도록 해야겠지?" 라는 새삼 너무나도 당연한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다 (....)
글의 '삘' 이란 건 도대체 언제 오는지, 오기는 하는 건지 나는 항상 기다리고 궁금해했다. 마침내 작년 초 나는 1달동안이나 안 써지던 글이 20분만에 써지는 경험을 하고 그 글의 '삘' 이라는 것이 내가 오라고 해서 오고 가라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닌 하나의 의지를 가진 신적 존재임을 깨달았는데, 이제 돌아보니 그 깨달음은 아주 기초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저 이제 매일 브런치에 하나씩 글을 쓰고 카톡으로 인증할게요. 1시간동안 나비보벳따우 음악을 들으면서 다 쓰고, 이걸 다 쓰면 다음날 양재 프릳츠 가서 맛있는 커피 사 마셔서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는 거죠."
29살 3월. 나의 곁에서 문단 단위로 글을 속삭이던 글의 신은 일찌감치 떠나고, 뭔가가 마비된 채로 글을 쓰지 못하는 나만 남았다. 어느 날의 통화에서 매일 글 쓰는 습관을 들이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던 나는 어느새 저런 말을 하고 있었는데, 한 번 한 말은 지켜야해서였을까, 아니면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였을까. '글 쓰는 습관' 을 들이기로 결심하고 무작정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의외로 글쓰기는 성공적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 같았으면 커서만 깜빡이던 여백 위는 활자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냥 내가 느끼고 바래왔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떻게든 하나씩 써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아주 퀄리티가 좋은 글이건 나쁜 글이건. 내가 준비한 것은 목욕재계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 것 뿐이었는데.
글이 도저히 안 써지는 날에는 2014년 미국에서의 일기를 봤다. 그 때에도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누가 보던 말던 매일 페이스북에 글을 써서 올렸는데, 어째 23살짜리가 29살보다도 글을 더 잘 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서 혼자 발전 없음을 한탄하기도 했지만 결국 석유 시추하듯, 나도 모르던 임의의 지점에 삽을 파 내려가자 시커먼 원유가 위로 치솟듯 나의 말들도 마구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표현해야 하는 말들은 항상 마음 속 어느 임의의 지점에 머물러 있으면서 발견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순간은 항상 어떤 슬픔이나 소회를 마음 가득히 몰고 지나간다.
오늘은 그런 감정의 폭풍은 불지 않았고 글도 잘 써지지만 30분 시간제한이란 엄청난 규칙이 걸렸다. 이제 2분 남았는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융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 속에는 수많은 존재가 살고 있는데, 이들에게 각자 말을 할 수 있는 (그 전에 그들이 할 말을 생각할 시간도) 충분히 내 시간에서 내어준다면, 그들은 기꺼이 자기 이야기를 할 것이고 그 가운데 가끔 반짝이는 비유와 수려한 표현도 선물도 줄 것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습관을 만들거라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나 스스로에게 헌신을 한 것이다. 그리고 값진 선물을 다시 한 번 받은 것이다.
이게 온전한 결론일지는 모르겠지만 '삘', 그러니까 '글의 신' 이 자주 오게 하려면 그이면서 그의 현신이기도 한 내 마음을 위한 약속 시간을 만들고 지키면 되는 거였다. 그가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마음 깊이 믿으면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