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때에는 인생이 10km로 가고, 20대엔 20km로 간다는데, 29살이 된 지금은 20대의 마지막 스퍼트 느낌으로 달려나가서 그런가, 벌써 1분기가 쑥 가버렸다.
딱히 올해 들어 분기별 목표를 세운 건 없었지만, 이번 분기를 총 3가지 측면에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학습과 성장, 삶의 향유, 사회참여. 이렇게 말이다. 3가지 측면은 그냥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대로 정해봤다.
학습과 성장
올해의 학습과 성장 측면에서의 입지전적 사건을 말한다면 무엇보다도 'AC2(Agile Coach Squared)' 에 참여한 걸 들고 싶다. AC2는 김창준 님의 '애자일 컨설팅' 에서 진행하는 애자일 코치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과정이다. 원래 이런 과정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커리어의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다' 라는 이사님의 강력한 권유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교육 비용이 정말 후덜덜하게 비싸서 이걸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 눈 딱 감고 신청해 버렸다.
아무리 권유를 하셨다고 해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면 안 했을 텐데, 신청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AC2 홈페이지에서 본 '성장과 변화' 이야기 때문이었다. "절대 안 변할 것 같던 사람들이 이 과정을 통해 변하는 걸 보면서 놀라서 신청하는 사람들도 많다." 라는 말. 난 정말 변하고 싶었고, 나에게 "스타트업에서 첫 커리어 시작한 애들은 역시 안 돼" 라고 말한 그 사람의 말을 내 삶을 통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싶었다. 내가 스타트업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기 때문에 더 성공할 수 있다고.
사실 드라마틱하게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나는 모자른게 너무나 많고, 우울하고 불안해하는 일도 자주 있다. 그렇지만 변한 것이 있다면 매일 조금씩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이를테면 매일 글쓰기, 회사에서 내 의견이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사전 작업 하기 등등) , 종종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회고를 하려고 하고, 어려운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아, 그리고 또 있다. 바로 파이썬 코딩을 시작했다는 것. 늘 나에게 조건 없는 도움을 주시려는 분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다는 것도 또 알았다.
이제 습관이 잘 다져질 수 있는 토양을 다졌다면, 땅에 씨를 뿌릴 차례다. 이번 2분기에는 매번 다짐으로만 그쳤던 영어와 일본어 공부를 매일 조금씩 해보려고 한다. 영어 말하기 어플 1년치를 끊어놨으니 좀 해보고(15만원 날릴 순 없잖아...) 브런치에 썼던 글들을 미디엄에 영어로 매일 조금씩 옮겨보려고 한다. 일어는 동생과 10분씩 오늘 있었던 일 이야기하기로 연습하려고 한다.
한편 기획력의 심각한 부족을 느끼고 해보려는 것은 박신영 씨의 <기획의 정석> 다시 읽기(예전에 아무것도 모를 때 샀을 땐 그냥 음~ 좋은 책이네~ 라고 말했는데, 이젠 굉장히 절박한 마음으로 읽을 것 같다.) 와 UX 코칭 받기, 그리고 내가 글로 쓴 것을 계속 도식화하는 연습하기. 나는 직관적으로 무언가를 포착하거나 풀어내는 건 잘 하는데, 그거 왜 그렇게 했어? 구체적으로 말해봐. 라고 하면 얼어버리는 타입이다(...) 천재 PM이 되려면 전부 다 갈고 닦아야 한다구!!
삶의 향유
올해 시작부터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바로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에 가서 한라산 백록담까지 등반을 한 것. 겨울이라 언제 입산 통제될지 몰라서 좀 불안해한 것도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는 시간 맞춰 잘 다녀왔다.
(혹시 몰라서. 코로나 사태 터지기 전 1월 중순이다!)
눈보라 맞아 꽝꽝 얼어버린 내 머리...
나는 심각한 저질 체력이고, 친구들은 다들 헬스와 요가로 다져진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저질 체력 페이스 관리해주기 참 어려웠을 텐데, 계속 기다려주고 응원해주고, 미친듯이 눈보라 쳐서 죽음의 위협을 느꼈던 정상 부근에서도 함께 해 준 친구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고 싶다. 다녀와서는 정말 글자 그대로 온 몸에 알이 배겼고 지금도 제주도 가서 고생한 생각밖엔 안 나지만 여전히 내가 친구들과 남한 최고봉을 올랐다는 건 얼떨떨하면서도 기분 좋은, 정말 해 보길 잘한 체험이다 :)
아, 이번 1/4분기는 음악을 무엇보다도 많이 들었다. 이전 글에서도 많이 썼지만 어느 날의 전화 통화에서 출발한 '매일 새로운 음악 듣기' 태스크를 통해서다. 이제까지 그냥 책이나 기사에서만 읽던 음악을 직접 들어보면서, 내가 미처 모르던 새로운 세계를 하루하루 만나고 있다. 프로그레시브 락을 파다 보니 70년대 음악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하고, 내가 즐겨 듣던 칸예 웨스트와 Cymbals의 음악이 어떻게 70년대 영국 락과 연결되어 있는지도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신기한 일이다.
사실 나만 음악 추천을 받은 건 아니고,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많이 추천해 드렸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주고받은 음악 리스트만 해도 어느새 꽤 쌓였다. (실제로 몇 곡인지 세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2분기부터 브런치에 매거진을 파서 서로 그 음악들에 대해 글을 쓰기로 했다. 신난당!
코로나가 아니라면 나는 지금쯤이면 한라산 다녀온 친구들과 청계산이며 인왕산이며 매주 산을 오르내리고, 등산 후 막걸리 한 잔에 두부김치를 먹는 삶에 대해 논했을 것이다. 영화도 아마 실컷 봤을 거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하고 <찬실이는 복도 많지> 를 못 봐서 너무 아쉽다...) 음악 글을 쓰기 전에 이미 만나서 실컷 수다를 떨고 맛있는 걸 먹었을 것이다. 2분기엔 코로나가 끝날까? 안 끝난다면 그래도 할 일이 있겠지. 우선은 음악을 열심히 듣고, 글도 열심히 써 보려고 한다.
사회참여
대학생 때만 해도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 같은데, 사회에 나와서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아주 아주 많이 깨달았다. 세상의 악은 생각보다 거대하고, 평범해서 더 잡아내기 어려우며, 그 '악' 의 일부에는 완고한 태도를 취하는 나 역시 포함이란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 가 아닌 여럿이 목소리를 낼 때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을 목도하기 시작한 나는 그 변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 현경 교수님이 이야기하셨던 '사회적 십일조' (내 월급의 1/10을 사회의 꼭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하기) 개념을 아주 조금씩 실천해보기로 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우선 이번 1분기에는 후원처를 하나 늘렸다. 바로 십대여성인권센터. 청소년 성착취 피해자들을 돕고,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몇 달 전 PD수첩에서 청소년 성매매 실태를 보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우는 동생을 보고 후원을 시작했는데, 지금 얼마나 정신없이 일하고 계실지 생각해보면 정말 후원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돈밖에 후원하지 못한다는게 마음이 아프다.
N번방 성착취 사건 이후로 (나이롱이지만 나름)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에서 말하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 라는 말이 대체 어떤 의미일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악이 26만명이라는 제 평범한 민낯을 드러내고, 최소한의 공감과 이해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의 막말을 보면서 영혼이 잠식당하는 것 같아서 사실 너무 힘들었다. 그 와중에 내가 내린 결론은 그거였다. 악과 최전선에서 싸우는 사람의 곁에 서고 그들을 지원하자. 그게 바로 선이다.
그 외 내가 후원하는 곳을 좀 더 소개해보자면...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 과 <공동정범> 을 연출한 김일란, 이혁상 감독이 있는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에도 거의 3년 정도 후원을 하고 있다. 올해 2분기엔 후원처를 한 군데 더 늘리려 한다. 나는 내가 버는 돈이 결국 '온전히 내 능력' 때문이 아닌 것을 알고, 이를 사회로 다시 환원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매일 출근길과 자기 전 명상을 시작했고, 1월부터 매일(혹은 하루 걸러) 요가를 한다. 예민하고 쉽게 우울해지는 나는 불안과 우울을 삶 속에서 조절하고, 감정에 잘 귀를 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상처와 잡념, 아쉬움들을 매일 자각하는 연습을 하면서 나를 더욱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더욱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2분기에도 똑같은 목표일 것 같다.
그나저나 접히는 핸드폰이 나오고,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나온다는 시대에 전세계에 역병이 도는 사태가 올 줄이야. 20대 마지막의 첫 스타트 치고는 나름 산뜻한 시작인 줄 알았는데, 무엇이 어디로 갈 지 모르는 혼란한 때의 한가운데로 들어온 것 같다. 공교롭게도 2분기의 시작은 만우절인데, 거짓말같이 찾아온 2분기를 맞이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차분히 해보려 한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