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록을 들었다

짧게 쓰는 숨은 예술 얘기 04.14

by 치슬로

어쩌다가 나무위키 캄보디아 항목을 찾아 읽다가 킬링필드 이전, 1970년대의 짧은 왕국 시대엔 그들도 엄청난 록 문화를 갖고 있었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크메르 전통 음악과 사이키델릭 록이 합해졌다는데, 그건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듣기 시작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3QPTefh7bQ&t=20s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이지만 분명히 당시 유럽과 북미에서 유행하던 프로그레시브 락의 요소도 들어가 있고, 다양한 실험이 가미된 재미난 음악이었다. 무엇보다도 정말 좋았다.

Ros_Serey_Sothea_discogs.jpg 로스 스레이소떼아 By Source (WP:NFCC#4), Fair use, https://en.wikipedia.org/w/index.php?curid=55903800


그 와중에서도 눈에 띈 건 크메르 록의 여왕이라 불리던 로스 스레이 소떼아의 곡들이었다. 흔히 락커라고 불리면 한번쯤 떠올리게 되는 거친 음색과는 거리가 멀지만, 마치 창이나 일본 악기 샤미센을 떠올리게 하는 전통적인 음색인데 그게 록하고 또 묘하게 어울리다니 신기했다.


한편, 로스 스레이 소떼아를 듣던 와중에 생각난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신중현 사단의 이단아 보컬, 김정미였다. 신중현 사단도 70년대 사이키델릭 록을 했었는데, 김정미는 그 속에서 얇으면서도 독특하게 속삭이면서 꺾는 창법을 구사하는 독특한 보컬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v0CNrcUatE

('아름다운 강산' 은 이선희의 곡으로 더 널리 알려져있지만, 원래 김정미의 곡이다.)


두 재능 있고 독특한 보컬의 공통점은 '오래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잠깐이나마 문화가 융성했던 짧은 왕국 시대를 지나 캄보디아는 100만 명 이상(DC-Cam Mapping project와 예일 대학의 공동 조사에서는 1,386,734명으로 추정 <출처: 위키백과>) 이 죽음으로 빠져든 킬링 필드 시대에 접어든다. 수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이 죽거나 사라졌다. '서구풍' 음악을 했던 로스 스레이 소떼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가 29살이던 1977년에 죽었다고 영어 위키백과에 되어 있지만, 정확한 날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Cambodian Rock Album 유튜브 영상의 첫 댓글은 이 노래를 부른 사람들도, 들은 사람들도 모두 죽어서 없다는 이야기....)


김정미 역시도 당대의 서슬 퍼런 유신 정권에게 미운털이 박혀 그녀의 곡 대부분이 금지곡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죄목' 은 창법 저속. 그렇게 그녀는 짧은 6년간의 음악 활동을 마치고 은퇴한다.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와 한국의 군사독재정권. 이 두 정권은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금지하고, 통제하고, 독특한 목소리를 짓밟았을까? 정권의 문화 탄압이 없었다면 캄보디아와 한국의 록 음악은 지금 어떤 모습이 되어있었을까? 슬픈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는 대목이다.



한편, 반짝 져버린 캄보디아 록을 생각하다보니 문득 재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던 필리핀 영화들이 생각났다.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영화를 만든 나라이자, 지금도 수준 높은 영화들을 만드는 곳이다. (그때 봤던 <3세계 영웅> 과 <필리핀 예술가의 초상> 은 정말이지 놀라운 영화들이었다.)


MV5BNTIyODA3MTgtZDYyZC00YWVkLWIxMWItMjMzZWFjYzA0ZmE2XkEyXkFqcGdeQXVyMTgwMTQyNjY@._V1_.jpg 필리핀 예술가의 초상 (1965), 출처 IMDB

그 영화 속에는 세계를 떠돌며 온갖 공부를 해 나라를 구하려던 국부들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올드 마닐라' 라 불리는 옛 마닐라의 서정이 담겨 있었다. 한국의 우리가 흔히 아는 '필리핀' 에 대한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달까.


우리가 쉽게 '못 사는 나라', '도와줘야 하는 나라' 라고 부르는 캄보디아에도 록을 즐기고 만들고 부르던 사람들이 있었고, 필리핀엔 예술을 사랑해 그것을 찾고 전 세계를 떠돌던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우리가 모르는 어떠한 새로운 시도들,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던 이름 모를 과거의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나 늘 있지 않았을런지. 하지만 그 많은 것들이 정권의 무능과 부패, 편견으로 사라지고 어떤 경우엔 그 자리에 있었는지조차도 모르게 된 건 참 슬픈 일이다.



한편 요즘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런 것이다. 캄보디아의 로스 스레이 소떼아나 우리나라의 김정미처럼 어떤 정치적 이유나 혐오, 편견, 기타 다른 이유에 의해 발견되거나 주목받지 못한 예술가들은 너무나 많니 그들의 서사를 찾는 것.


60년대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행위 예술을 했다는, 전설처럼만 전해지는 미술가 집단을 찾고 싶다. 그리고 당장 신중현의 아내 고 명정강만 해도 한국 최초의 여성 드러머인데, 그녀의 예술 세계를 설명하는 자료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 자료를 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홍콩에서만 음반 80만장을 팔며 동남아를 휩쓴 젊은 보컬 임종임에 대해 알고 싶다. 백남준의 아내로만 알려진 비디오 아티스트 구보타 시게코에 대해서도. 이 세상엔 찾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렇게 캄보디아 록 앨범 하나를 다 들으며 숨겨진 것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고 만든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없다. 그러나 지나간 것들과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살아 돌아오게 할 순 없어도 나는 그들을 활자 위에서 호명하여 부활할 수 있게 할 순 있다. 그들의 역사가 기억되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게 앞으로 내가 계속 해 나가야 할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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