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덕밍아웃

왜 사당발 당고개행 열차는 비어있을까?

04.23

by 치슬로

대학생 시절 1교시를 향한 통학 사투를 기억해 본다. 용인 우리 집에서 서울 학교까지 9시에 시작하는 1교시 수업을 들으러 가려면, 7시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7시에 출발을 해야 했다. 그래야만 미금역 종점에서 출발하는 M버스를 타고 제시간에 명동까지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근길+등교길 사람이 너무 많아서 줄만 30분 넘게 서야 하기 때문에(...) 집 앞에도 M버스 정류장이 있긴 하지만, 종점에서부터 이미 사람이 다 차서 오기 때문에 절대 탈 수 없었다.

4102.jpeg 분당 M버스 아침 줄.. 저 뒤로 더 있는 건 함정 (출처 : 한겨레)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삐끗해서 7시 15분 정도에 출발하기라도 하면, 버스를 타서는 절대 1교시 시작 전에 학교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지하철... 당시만 해도 집 앞에 지하철역이 개통 전이었기 때문에 나는 학교를 가기 위해 4번이나 환승을 해야 했다. (마을버스 - 분당선 - 신분당선 - 2호선 - 4호선, 가끔 역에서 걸어가기 힘들면 내려서 용산04번을 탔으니 5환승도 자주 했다.)


환승할때마다 수많은 무리가 떼지어 다음 환승 구간으로 뛰어가는 짜릿함은 항상 있었지만, 그 짜릿함이 극대화되는 곳은 바로 2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사당역 구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번역은 사당, 사당입니다. 내리실 곳은 왼쪽입니다..." 하는 순간부터 모두가 비장한 표정으로 내릴 준비를 해서, 문이 열리자마자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이 미친듯이 헐레벌떡 뛰어가는.

사당역.jpeg 사당역. (출처 나무위키)



원래 사당역에서 2호선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는 계단은 두 군데지만, 아침 9시까지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2호선 승강장에서 제일 가까운 계단은 막아둔다(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러면, 사람들은 끝까지 미친듯이 뛰어가다가, 휘릭 돌아 유턴해야 하는 구간에서 드리프트(!!)를 하고, 또 계단을 미친듯이 뛰어 내려간다.


이 지난한 통학 과정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건 사당역엔 항상 빈 열차가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운이 안 좋아서 안산에서부터 올라오는 당고개행 열차를 타면 절대 못 앉아 갔지만... 그래도 빈 열차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으면 나는 살았다! 를 외치며 자리에 앉는 것이다.


근데, 왜 하필 사당역에는 항상 빈 당고개행 열차가 있는 걸까?


그 비밀은 직류와 교류 전원에 있다. 지하철은 전기로 달리니 당연히 여기에도 직류, 교류 방식이 적용된다. 같은 4호선이어도 사실 당고개-남태령 구간과 선바위-오이도 구간은 운영 주체가 각각 다르다. 서울시에 속하는 당고개-남태령 구간은 서울교통공사가 담당하고, 선바위-오이도 구간은 코레일이 맡는다.


4호선.png 4호선 노선도 (출처 나무위키)


4호선을 크게 나누자면 4호선 본선(당고개-남태령), 과천선(선바위-범계), 안산선(금정-오이도) 이렇게 3선으로 나뉘는데, 원래 4호선 본선과 안산선은 아예 다른 호선이었다. 그러다 과천과 평촌신도시 개발로 전철을 들이자는 이야기가 생기면서 4호선-과천선-안산선을 잇게 된게 지금의 4호선이다. 4호선 본선은 우측통행-직류, 과천/안산선은 좌측통행-교류다. (여기서 생긴 초유의 사태 꽈배기굴 얘기는 나중에... :) )


물론 직류와 교류를 다 다닐 수 있는 직교류 겸용 열차들도 있지만, 서울교통공사의 몇몇 차들은 4호선 본선만 다닐 수 있는 직류 전용 열차다. 그 차들은 당연히 사당까지만 갈 수 있다. 그렇게 우리가 늘상 보는 사당행 열차가 탄생한다. (남태령역까지 직류이지만, 사람 없는 남태령까지 열차를 운행해서 돌려 나오는 건 시간 낭비다)


그 사당행 열차들도 사당까지 운행을 한 뒤 다시 창동기지로 올라가야 하니, 사당에서 차를 돌려 사람을 태워 간다. 그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시는 사당발 당고개행 열차들이 항상 비어 있는 것이다! 가끔 사당에서 되돌아 올라가는 열차 중엔 직교류 겸용도 있기는 하다.


사당에서 빈 열차 잡는 비법


물론 예외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당고개행은 사당에서 차를 돌려 출발하는 열차와 안산에서 올라오는 열차가 번갈아 간다. 만일 내가 사당역에서 이수역 방향으로 올라가는 열차를 타려 할 때, 내 뒤로 당역 종착 열차가 도착했다면 그 열차가 바로 앞으로 우리가 타게 될 빈 당고개행 열차가 된다. 조금만 기다리자. 약간의 인내심을 발휘하면 기다리던 열차 도착! 서울교통공사 로고송이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빈 좌석이 번쩍거리는 열차가 그대를 맞이하리니...


사실 이제 회사가 강남권에 있어서 사당에서 4호선 갈아타겠다고 달리던 이야기도 먼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가끔 사당에서 약속이 잡힐 때 이런 생각을 하면 혼자 피식 웃게 된다. 지하철은 참 재밌단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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