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덕밍아웃

역사를 싣고 달리는 버스

광주 버스 518, 419, 228, 1187

by 치슬로

작년 초, 어쩌다 갑자기 광주에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일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친구들 중에 광주가 고향인 친구가 많아서 그랬나, 아무튼 그냥 가고 싶어서 하루만에 숙소 예약과 기차 예약, 광주에 있는 친구와의 약속 잡기를 모두 마치고 KTX를 타고 내려갔다.


광주 가서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곳은 총 세군데. 5.18 기념공원과 아시아문화의전당, 그리고 궁전제과였고,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건... 어디선가 이야기를 들었던 518번 버스였다.

구 전남도청(아시아문화의전당) 옆에서 내가 탄 518번 버스

518번 버스는 이름 그대로 5.18 민주화운동 사적지를 도는 버스다. 상무지구부터 저 멀리 광주역, 광주고등학교, 전남대 그리고 518 공원묘지까지. 원래부터 노선 번호가 518번이었던 건 아니고, 2004년에 한 차례 바뀌고 난 다음 2006년에 '518' 이란 이름에 걸맞게 노선이 조정되었다고 한다.


영상으로만 보던 518번 버스에 직접 타니 숙연해졌다.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한산한 광주 도심이 한때는 자유를 위해 싸우던 사람들로 가득 찼던 곳이라니, 역사의 한 장면에 들어온 듯 그동안 봤던 영화와 사진 속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518번 버스는 배차간격이 30분 정도로 상당히 길다. 다행히 처음 구 전남도청에서 5.18 공원묘지로 갈 때는 버스를 금방 탈 수 있었지만, 공원묘지를 참배하고 나올 땐 정말 말 그대로 30분을 벌벌 떨며 기다려야 했다. 버스 종점은 효령노인복지타운이지만 거의 5.18 공원묘지가 종점 가까이나 다름 없어서 버스 정보도 잘 안나오고, 배차 간격도 넓기 때문에 공원묘지측에서 제공하는 시간표를 잘 보고 타는게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5.18 공원묘지는 행정구역상 분명히 광주가 맞긴 한데... 외진 곳에 있어서 택시도 안 잡히고, 사람들도 거의 자차로 다니는 듯 했다. 나중에 광주가 고향인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거길 버스로 갔다고??? 라며 고생했다고 말해주었다ㅠㅠ)


419번 버스

419번 버스, 출처 나무위키

광주에 머무는 동안 탈 일은 없었지만 419번 버스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4.19 혁명 당시에 광주에서는 광주고등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었는데, 훗날 광주고 앞의 4.19로를 지나는 버스 중 하나가 당첨! 되어 419번으로 번호가 바뀌었다고 한다.



228번 버스와 달빛동맹사업


228번 버스, 출처 연합뉴스

228번은 2.28 학생민주의거를 상징하는 버스 노선인데, 사실 이 의거는 광주가 아닌 대구에서 일어났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읭? 스럽겠지만, 사실 대구 노선이어야 할 것 같은 228번이 광주에 들어온 이유는 바로

대구광역시와 광주광역시가 함께 시행한 '달빛동맹사업' 때문이다.


달빛동맹사업이라니.. 이름만 들으면 순간 애니 생각이 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대구의 옛 지명 '구벌'과 광주의 옛 지명 '고을' 을 합친 이름이다. 2009년부터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를 놓고 지자체 간 갈등이 심해지자 소모적인 경쟁 대신 어느 곳이 선정돼도 연구개발 사업을 공동으로 하기로 한 데서 시작됐다" (출처 동아일보) 는 사업이다. 현재는 대구-광주 내륙고속철도 사업 및 코로나19 관련 협력이 이 사업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구를 상징하는 228번은 광주에서 다니고, 광주를 상징하는 518번은 대구에서 다니고 있다고. 대구 518번 버스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타보고 싶다.


무등산과 1187번 버스

1187번 버스, 출처 나무위키 (1187번 3715호.jpg)

아 이것까진 정말 몰랐는데, 광주가 고향인 작가님이 알려줘서 알았다.


1187은 광주 무등산의 해발고도를 그대로 딴 버스 노선번호로, 실제로 무등산이 종점이다! 어렸을 때 무등산 서석대 항공촬영한 것을 방송에서 인상깊게 본 적이 있고, 기아 야구에선 늘 '무등00' 이 거론되어서 가본 적은 없지만 어느정도 친근하게 느끼고 있는 산이다. 뭐 언젠가는 1187번 버스 타고 무등산 가볼 일이 있지 않겠나~



살면서 광주는 딱 한 번밖에 안 가봤지만 버스를 이만큼이나 파본 건 광주가 또 처음이다.

다음번에 광주를 또 가게 된다면 그 땐 저 버스를 다 타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버스 이야기하느라 언급하진 못했지만 최근 재개장한 전일빌딩을 방문하고 다시 그 이야기를 글로 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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