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환경 vs. 맞는 환경,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부모에게
"소아정신과 의사면 육아도 쉽겠네요!"
사람들은 종종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육아는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배우고 느끼는 과정이었다.
아이는 단순히 어리다는 이유로 무지하거나 둔감한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감정을 더 예민하게 느끼고, 때로는 나보다 더 깊이 아파했다.
나는 진료실에서 부모들에게 말한다.
"아이의 감정을 읽어 주세요."
그런데 정작 내 아이 앞에서는, 나는 얼마나 아이의 감정을 읽고 있었을까?
나는 대치동 엄마다.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 믿었다.
"남들 다 하니까." "많이 다니니까 좋은 학원이겠지." 가볍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유명한 수학 학원에 아이를 보냈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어땠어?"
아이는 짧게 대답했다. "응, 그냥 그래."
생각보다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에게
"조금만 더 해보자." "조금만 더 하면 익숙해질 거야."
그렇게 나는 아이를 다독였다.
그러면서도, 표현하지 않는 아이가 그저 적응하는 중이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는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작은 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제야 신호를 읽기 시작했다.
숙제 앞에서 한숨을 쉬고, 손톱을 물어뜯고, 짜증이 많아졌다. 어느 날,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즘 힘들어? 엄마는 네가 괜찮은지 궁금해."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 시험 보는 게 부담돼… 내가 너무 못하는 것 같아."
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그토록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아이의 불안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느꼈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게 부모의 욕심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가 잘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 ‘잘됨’이란 게 과연 무엇일까?
나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믿었다.
하지만 좋은 환경과 맞는 환경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결심했다. 학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학원 입학을 위해 아이와 몇 달을 준비했고, 숙제한다고 다투기도 했다.
내 마음도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이제, 아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찾아주기로 했다.
그 후로도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이 선택이 맞을까?’ 불안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요즘 아이는 나에게 말한다.
"엄마, 엄마가 잘하는 게 한 가지 있어."
"뭐야?"
"좋은 선생님 골라 주는 거!"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때 깨달았다.
아이를 위해 내가 먼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걸.
그리고 나도, 소아정신과 의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흔한 엄마다.
욱할 때도 있고, 후회할 때도 많다.
하지만 한 가지, 나는 조금 더 조심하려고 한다.
아이가 보내는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도록.
육아는, 서로를 더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모도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
나는 결국 내려놓았다. 부모로서의 조급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