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국을 너무 잘 먹는 아이들을 보며
월급날 새벽이 밝았다. 근 한 달을 새벽 6시에 알람을 맞추고 밥 하러 벌떡벌떡 일어났더니만 이젠 새벽 5시 반쯤이면 몸이 긴장을 했는지 부스스한 상태로 저절로 일어나진다. 늘어져서 자지 못할 만큼 스트레스 상태라는 뜻일까?
기다리던 월급날이 다가왔다. 정기 급여일 바로 다음날에 복직을 했고, 꼬박 31일을 근무하고 첫 월급을 받아 쥐는 것이다. 핸드폰의 은행 어플이 떠 있다. 새벽에 곱게 급여가 들어와 있다. 돈이다! 통장에 찍히는 이 돈. 이것을 벌려고 한 달을 살아왔고 휴직기간 내내 복직이냐, 퇴사냐를 심도 있게 고민했었다. 동료들을 만날수록 아무 생각 말고 정년까지 붙어있으라는 말을 한다. 내 머리 위로 생각주머니가 둥둥 떠다닌다는 게 들통나는 것 같아 쑥스러운 때가 많다.
만나는 직원들마다 나에 대한 소문을 몇 가지 들었는지, 유튜브에 나왔느냐, 무슨 색다른 일을 했느냐 하면서 궁금해 하기도 하고, 그동안 나의 온라인 활동을 지켜봐 왔다고 말하는 직원들도 있다. 어느 쪽도 부끄럽기는 매한가지이고 과연 앞으로의 직장생활에 이런 소문들이 보탬이 될지 방해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임은 져야 할 것이다.
우선 돈이 들어오니 기분이 좋았다. 아주 작은 돈도 내 힘으로 오롯이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겪어보았고, 내가 젊은 날 혼을 다해 입사에 성공한 회사에서는 맡은 바 업무에 큰 빈틈을 만들지 않으면 무난하게 월급이 나온다. 물론 그 노력이 내겐 산을 옮기는 것처럼 어려운, 존재의 이유를 바꿔야 할 만큼 큰 노력이긴 하지만 말이다...
퇴근해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있는데 남편이 꽃바구니를 들고 들어온다. 어디서 받아온 것인가 했더니만, 1시간 일찍 퇴근해서 꽃집에 들러 아내를 위한 꽃을 사서 오는 길이라고 한다. 아니, 이 남자가! 남편에게 꽃은 처음 받아보는 것이다. 결혼 전 프러포즈 때에도 케이크만 받았었는데, 빨간색 장미를 보니 쪼그라 붙은 사랑마저 부풀어오를 지경이다.
이 꽃을 받고 앞으로의 회사 생활도 즐겁게 하길 바란다고 그가 덧붙인다. 장미꽃 향기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아주 달다. 월급의 위력과 남편이 선물해준 장미꽃 향기의 위력으로 달달한 월급날을 마무리 한다. 다음날 새벽엔 물론 강도와 도둑, 괴수들에게 쫓기는 꿈을 꿨지만 적어도 눈 감기 전까진 흡족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오늘 퉁퉁 부운 다리를 세워 앉아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하루 종일 그것 때문에 부끄럽고 우울했으며 옴짝달싹 못할 것처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살짝 버거운 업무, 하지만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과외의 업무가 있었다. 팀에서 내가 정식적으로 맡은 업무가 아니라, 다른 팀 업무를 도와주는 차원에서 하는 부차적인 업무였는데 나는 그저 돕겠다는 생각으로 흔쾌히 승낙을 하고 보니 느낌이 싸했다. 이건 내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뒤늦게 들었지만 이미 수습 불가 상태였다.
달력 속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왔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그리고 아는 것은 별로 없으면서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있으려니 부끄럽고 주눅 들어서 마음이 한껏 오그라 붙어있었고, 나의 그런 불안한 심리로 인해 내 입에선 안 해도 될 말까지 쭉쭉 나오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건 나 혼자만 아는 식은땀 나는 상황이지만 그렇게 하루 종일 속에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자리에 끼어 있었다는 죄책감으로 내내 편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마 사나흘은 앓아누워야 풀어질까 말까 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회사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 평정심을 유지하는 표정을 지었을 테지만 집에선 울상이 되어 이불속에서 훌쩍거리고 있었을 텐데... 오늘은 퇴근길에 차에서 혼잣말을 하면서 왔다.
그래. 언젠가 한 번은 해봤어야 할 '시작 단계'인데, 이번에 겪길 잘했다.
그래도 한 번도 안 해본 것보다는 한 번 해보고 분위기 파악하는 게 나았잖아.
덕분에 다음엔 무턱대고 수락부터 하는 일은 없을 테지.
이렇게라도 나를 다독이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괴로울 것 같았다. 그렇게 침울한 마음으로 퇴근하여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콩나물국을 끓였다. 그런데 요 아이들은 어쩌면 그렇게 혈기왕성하게 밥을 잘 먹는 것인가. 나는 밥맛을 잃고 시들시들한 상태로 지질거리고 있는데, 아이들은 물, 콩나물, 소금, 파 조금, 이렇게만 넣은 콩나물국을 너무나 맛있게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들이 밥과 국을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져 왔다. 내가 이렇게 내적 괴로움의 굴을 깊게 팔 이유가 없겠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무척 유능하고 잘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던 나의 욕구가 가득 채워지지 않아서 하루를 그렇게 울상으로 보냈구나 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내가 귀엽고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리곤 얼른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언가 잘하고 싶고, 최선을 다하고 싶은 그 마음을.
찌푸리고 있을 시간에 기운을 내어 밀린 집안일 하나라도 더 해치우고 편안히 휴식하는 것이 나의 심신에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상황 파악이 되고 수습해나가는 내가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이건 전부 아이들을 키우며 배우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나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기 때문이다. 매일 살이 오르고 키가 크며 마음도 성숙해져 가는 것이 내 눈에 보인다. 매일 나를 기운 내어 일어서게 만든다. 그게 아이들이 내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찌글찌글해져서 자책만 하고 있을 새가 없다. 아이 둘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려면 나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 비록 퇴근하고 오면 손끝 하나 움직이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지만 그건 크게 상관할 바가 아니다. 아이들은 오늘도 학교 수업이 재미있었고, 친구들하고 노는 게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방과 후 수업도, 돌봄 교실도 너무나 잘 적응해서 다니고 있다. 나만 잘하면 된다. 아이들이 잘 적응할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잘 적응해서 살아갈 것에 대해 관심 갖고 해 나가면 된다.
어제와 오늘 급여가 들어오고 난 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통장에 얼마의 액수가 들어오는 것에 흥분하기도 했고, 그 액수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내 시간과 혼을 담아 살아온 한 달에 대한 값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했다. 이 돈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까... 아직 나 자신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우선 계속 직장생활을 잇는다. 그렇게 잇다 보면 또 길이 보일 것이다.
잘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직장에 다니는 것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만나는 동료들마다 부동산, 아이 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나는 속세의 사람들과 너무 다른지 아이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주며 그쪽 세계에 심취해서 살아가는 중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읽고 있다. 점심시간에 읽으면 정말로 꿀맛이다. 정치와 철학이 과연 내 배를 불려줄 것인가? 내 영혼이 살찐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의 몸집도 커질 것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관심사를 꾹꾹 누르며 사는 삶,
시키는 일을 받아서 완벽하게 잘 해내려고 애쓰는 삶,
내 시간을 저당 잡힌 채 월급으로 입막음 당하는 삶.
내가 지금껏 살아왔던 삶이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는 삶이다. 하지만 이 모습으로 계속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자꾸만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안 하고 싶어질까 봐 꾹꾹 참아왔다. 첫 월급을 받았으니 두 번째 월급까지도 한 번 지켜보자. 그땐 내 마음속에서 어떤 문장들이 쏟아져 나올지 나도 알고 싶다. 여전히 남들이 감당하는 몫보다, 젤리처럼 물렁한 내가 철수세미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듯, 내가 받아내는 직장인의 삶이라는 무게와 거칠기가 상당하다.
내가 이렇게 연두부 같은 사람인 것이 예전엔 싫었지만, 이제는 축복하며 살려고 한다. 한 번 쓸고 지나가면 그 모양새가 내게 남고, 한 번 할퀴고 간 것 또한 모두 남는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것을 겪고 기록하고 이겨내며 살아갈 뿐이다. 그게 나라는 것을 이젠 받아들이는 중이다. 조금 더 가보자. 다음 월급날 나에겐 어떤 생각이 함께할 지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