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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Aug 17. 2022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겐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 사람도 마음에 안 들고, 저 사람도 마찬가지야.


이십 대에 직장 생활할 땐 속으로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이 사람은 이래서 불편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어. 착한 사람 증후군을 앓고 있었기에 절대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겉으로는 밝게 웃으며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왔다. 그러다가 속에 있던 불만이 차츰 커다란 불씨가 되어 꾹꾹 참던 것이 한꺼번에 터지곤 했다. 한 번은 사무실 내 책상에 앉아서 가만히 있다가 눈물이 주르륵 흐른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본 선배가 얼른 나를 데리고 회의실로 간 적이 있다. 그땐 그랬다.


그러고도 세월이 많이 흘러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한 명, 이어서 또 한 명 낳았다. 내가 이해 못 하던 선배들의 모습을 지금 내가 하고 있다. 왜 그렇게 빠릿빠릿하지 못할까 속으로 구시렁거리던 이십 대의 나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자리도 팀장님 바로 앞자리로 이동하여 누가 봐도 '선배'임을 드러내며 말단석에서 상석으로 옮겨왔다. 더불어 내가 속으로만 탐탁지 않아하던 선배들의 모습처럼 무언가 느리고 무언가 나른한 모습을 한 채로 하루를 열고 닫는다. 그렇게 나는 세월을 뒤집어썼다.


육아휴직 기간 중에 책을 많이 읽었다. 그동안 만나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며 새로운 세상을 봤다. 회사에서 비즈니스 약속을 잡고, 맡은 역할과 업무를 해내던 사람에서, 인정을 바탕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그야말로 '업무 외적인 관계'를 많이 쌓았다. 그러면서 내 세계가 많이 넓어졌다. 한 곳만 바라보고 쭉 살아왔는데, 여러 타입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내가 봐오던 세상 말고 또 다른 방식의 세상도 존재한다는 걸 희미하게나마 알았다.


회사 밖은 유토피아일 줄 알았다. 업무 스트레스도 없고, 매일 봐야 하는 껄끄럽고 의무적인 관계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걸 마지막에 알게 되었다. 나 한 명을 위한 아늑하고 고즈넉하며 조금은 적적하고 한가로운 이상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생 어느 한 구석이라도 시끌시끌했으며, 어느 것 하나가 원활하다 싶으면 나머지 한 부분이 기우뚱하게 가라앉곤 했다.


직장에서는 같은 조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때로는 경쟁을, 때로는 연대를 한다. 결론적으로는 커다란 시스템으로 움직이며 함께 일을 해나간다. 하지만 이런 세계 말고 다른 세계도 존재하더라. 철저히 혼자인데도, 자기만의 비즈니스를 가만가만히 만들어갈 수 있는 어떤 영역도 있었다. 어쩌면 새로운 방향으로 내 진로를 뚫을 수도 있겠다고 희망해보기도 할 정도로 재미있었고 참신했다.


하지만 퇴근 후 나의 몸 상태는 바람 빠진 풍선, 사용하고 남은 자투리 물건처럼 기운 빠진 모습이다. 우선 하루 종일 앉거나 서서 생활하니 다리가 퉁퉁 붓는다. 종일 업무적인 글쓰기를 하다 보니 밤에 조금이라도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마음을 써보려고 해도 자꾸만 보고서 투의 말만 쏟아져 나온다. 가만히 틈을 벌려서 내 꿈과 미래, 희망적인 상상을 해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현실에서 어떤 변화를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지고 그래서도 안될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 한마디로 내가 변한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마감하고, 다음날 눈을 뜨면 또 똑같다. 회사에 최적화된 사람으로 가득 충전해서 다시 주어진 일을 한다. 나는 요즘 그렇게 살아간다. 출근길 차 안에서 회사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량의 행렬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여기에서 자발적으로 일 하고 싶어서 오는 사람이 존재하긴 할까?'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내 순서가 되면 회사로 빨려 들어간다. 알맞은 자리에 주차를 하고 최대한 씩씩한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다시 내가 근무하는 층으로, 우리 팀으로, 내 자리로 향한다. 팀원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고, pc 전원을 켠다. 그렇게 내 하루에 시작 버튼을 누른다. 과거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선배들의 우중충하고, 나른한 모습을 지금 내가 하고 있다. 예전과 또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참 많이 생각했었는데 이젠 그럴 새가 없다는 것이다. 내 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빠듯하다.


여유가 생긴다면 차라리 아이들이 잘 생활하고 있을지에 마음을 두거나, 내 몸의 컨디션이 어떤지를 살핀다. 그렇게 세월과 함께 나는 나를 돌보고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분주해지고, 자연히 남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와는 거리가 생긴다. 그렇게 차츰 어떤 부분에선 무뎌지고, 둔해지면서, 나는 마침내 덜 민감하고, 덜 예민한, 외부 자극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변해간다.


나는 요즘 이렇게 살고 있다. 단 하루도 적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복직을 했는데, 어느덧 3주 하고도 절반이 흘렀다. 그렇게 나는 예전에 있던 그 공간으로 돌아와서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중이다. 찾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을 정확히 찾아서 살고 있다. '생각보다 괜찮네, 생각보다 견딜 만 해'라는 주문을 중얼거려본다. 그래, 그렇게 세월 한가운데로 걸어가 보자. 오늘도 하루만큼 걸었다. 때로는 시간이 공간으로 치환되고, 공간은 시간을 불러온다. 나는 공간과 시간 사이에서 과거의 나를 안고, 이것과 다를 미래를 가슴에 숨기고, 오늘도 무탈하게 살아간다. 내가 나의 세계를 잃고 싶지 않아서 안간힘을 쓰듯, 모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 삶을 기록 중이다. 내 간절함이 큰 만큼 타인의 삶 또한 포용하고 싶어 진다. 이게 가장 크게 달라진 나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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