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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Aug 16. 2022

이런 사람도 직장생활해요.

온 세상의 걱정은 제가 대신해드릴게요.


1주 차, 2주 차, 3주 차가 지나고, 어느덧 4주 차에 접어들었다. 이번 달은 꽉 채운 5주인 달이라 다음 주면 꽉 채워서 근무한 5주 치에 대한 한 달 급여가 나온다. 통장에 찍힌 돈을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실제로 근무하며 업무에 대한 생각보다, '그래, 괜찮을 거야. 잘하고 있잖아.' 하면서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에 퍽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그러다가 그만 나와의 대화가 심도 깊어지고 어떤 때엔 '아이고 못하겠다.'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주로 일요일 저녁이 그렇다.


어제는 월요일이면서 빨간 날이라 토, 일, 월 이렇게 3일간 연달아 쉬었던 마지막 휴일이었다. 지난주는 내내 새로운 업무 익히랴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랴 에너지를 꼼꼼히 모아서 모두 다 쓰느라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렇게 남아 있던 몇 안 되던 기운을 모두 소진하고 나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어차피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은 '못하겠어.' 뿐이기에 그런 심정을 글로 쓰다 보면 더 우울해질 것 같고, 그런 어두운 면을 촘촘히 기록해두는 게 과연 무슨 소용이 있어질까 싶어 진다.


그렇게 검디 검었던 휴일의 마지막 날 밤을 보내고 오랜만에 출근했다. 내 책상에 앉으면 안도감과 긴장감이 동시에 감돈다. 직장인이라는 투명 가운을 입고, 나는 내 직급에 딱 맞는 목소리와 눈빛을 장착하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머그컵에 미지근한 물을 떠 와서 수시로 마시고, 새로 맡은 업무를 빈틈없이 해내 보려고 조용히 수면 아래에서 발길질을 한다. 혼잣말로 아는 척도 해보고, 이상하게 처리한 업무를 발견하면 탄식도 뱉어낸다. 그렇게 종일 나 자신과도 대화하고, 종이와도 대화하고, 다른 팀 업무 담당자들과도 대화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일을 되는 방향으로 틀어간다. 그게 요즘 내가 하는 주요 업무다.


그리고 점심시간의 낙이 있다면,  회사에 오래 다닌 덕에 꾸준히 마음을 주고받으며 함께 직장인의 애환을 나누었던 동료들과의 반가운 식사 자리이다. 분명히 직장에 있지만 마치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하이힐을 벗어던지는 것처럼,  부러져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내려두고 우리 아이들이 나에게 징징거리듯, 나도 친한 선배, 동기들에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렇게 대화하다 보면 이런 말도 듣는다.


"넌 결국엔 잘하잖아."

"어차피 잘하면서 그래."

"걱정 마. 지금까지 한 것처럼 잘할 거야."


어쩌면 모두 내가 듣고 싶었던 말들 인지도 모른다. 그런 말들을 수집하고 싶어서 그렇게 공적으로, 사적으로 노력해왔는지도 모른다. 못한다는 , 느슨하다는 , 소극적이라는 말을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적극적이고, 용감하고,  해낸다는 , 믿을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 말을 들으려고 애쓰다 보니 그렇게도 안절부절 못하게 힘들었었나 보다.


그런 칭찬의 말을 들어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렇지, 이 맛에 직장 생활하는 거지.' 싶어지는 것을 보며 참 이것도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긴 휴일의 마지막 날 밤 암울한 생각을 하며 이불에 등을 붙이고 누워있던 나와 사무실에 나와서 멀끔한 모습으로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나, 이렇게 둘은 어쩌면 다른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 둘을 조련하며 너무 무리하지 않게 너무 극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 것이 이렇게 '글 쓰는 내'가 할 일이다.


퇴근길에 차를 몰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왜 해보기도 전에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하는 걸까?

오늘 아침에 내가 주관하는 회의가 있었는데 그것이 그다지도 부담스러웠었나 보다.  생각만 하면 마음이 쿵쾅거리고 몸도 아파지는  같고 망신당하고, 창피당할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심리 수업에서 배운 대로라면 어린 시절에 있었던 어떤 사건이 말끔히 해결되지 않아 내게 '초감정' 상태로 남아있는 앙금이 지금의 생활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 전문적인 내용을 내버려 두고서라도 나의  부담감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어떻게 하면 내려놓을  있을지  모르겠다. 그걸 알면 이렇게 긴장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살지 않아도  텐데...


하지만 한 편으로는 무언가를 하기 전에 그렇게 고민하고 걱정하고 긴장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침착하게 순서에 맞춰서 빈틈없고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살이 잘 찌지 않는다. 작은 것 하나까지도 신경 쓰고 반듯하게 만들려고 애쓰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런 예민한 심성, 긴장하는 몸, 줄어드는 식욕,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약한 체력까지 모두 하나의 기차 바퀴에 속한 바큇살처럼 느껴진다.


나는  바퀴를 힘차게 굴리며 살아간다. 불안과 안도, 긴장과 평온을 오가면서 같이 나이 들어가는 동료들의 소식에 같이 미소 짓고 남몰래 눈물 지어가며 그렇게 오늘도 직장인으로서의 하루를 추가했다. 얼마나 뜻깊은지, 하루가 얼마나 밀도 있는지는 나만이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하루는 하늘을 움직여서라도 되돌리고 싶은 날일 수도 있고, 요즘의 내게는 무사히, , 빠르게 보내고 싶은 것이 직장에서의 시간이다. 그렇게 내가 어느새 커져 있으면  좋겠다. 마치 휴직기간 중에 나의 자아가 매일 풍선이라도 올라탄  부품 해져 올라갔던 것처럼, 그것과 다른 결이어도 좋으니 긍정적이고, 노력하는 마음으로, 내가 단단해져 있으면 좋겠다.


오늘 글은 쓰고 보니 온통 부끄러운 이야기뿐인 듯하다. 사무실에선 아무 문제없다는 듯 태평한 얼굴로 주어진 일을 빠르게, 정확하게, 강단 있게 해냈으면서 정작 속으로는 이런 생각들을 하느라 이다지도 분주했다는 것을 여기 이 장소에 털어놓는다. 이 커다란 세상에 내 속 하나 온전히 털어놓을 수 있는 어느 공간이 있다는 것, 때로는 이 속을 누가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하지만 내가 얼굴을 아는 사람들은 절대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희열과 깊은 좌절감을 동시에 느낀다.


이 얇은 선 위에서 때로는 힘겹지만, 이 선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그려놓고 언젠가는 그 위에서 꽤 자유롭게 뛰어오를 나를 상상한다. 지금은 이런 류의 상상이 나를 살게 하기에. 복직 4주 차를 맞이하는 나를 무한에 가깝게 칭찬한다. 오늘도 수고했어.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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