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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Jul 29. 2022

무지개 빛깔 모피코트와 단 하나뿐인 패딩 잠바

애 키우는 엄마의 옷차림


무사히 복직 후 첫 주가 흘렀다.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꾹꾹 참고 있다가 결국 못하겠다고 두 손 들고 싶지 않아서 매일 더 충실하게 기록하면서 섬세하게 살피고 있다. 나와 내 주변에 대하여. 복직을 준비하며 하루 날을 잡고 쇼핑을 했다. 그동안은 놀이터와 장 보러 나가는 용도의 옷만 필요했으니 티셔츠 쪼가리와 편안한 고무줄 바지만 있으면 되었다. 동네에서 누굴 마주쳐도 '애 엄마'니까 편안하게 입고 왔나 보다 하면서 가볍게 넘어갈 만큼 그런 수더분한 복장으로 생활했었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그럴 수 없다. 어쩌면 저리도 부지런할까 싶어 보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풀 세팅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반대 방향으로 튀지 않으려면 나도 머리부터 발 끝까지 치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살짝 세미 정장 느낌이 나는 옷으로 몇 벌을 샀다. 미용실도 다녀왔고 복직 얼마 전부터는 피부과도 다녔다. 화장도 매일 하고 있다. 그렇게 거울 속의 나를 보면 영 딴 사람 같다. 선명하고 자신감 있어 보인다.


그 복장으로 하루를 마치고 돌봄 교실에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깔끔한 복장과 '일 하는 엄마'라는 느낌을 풍기며, 방금 차를 몰고 오며 썼던 선글라스를 머리에 딱 끼고 학교로 들어섰다. 거기에서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났다. 내가 바로 지난주까지 입던 것과 같은 편안한 복장을 하고 계셨다. 나를 보시며 살짝 깜짝 놀란 듯한 모습을 보이셨다. 나의 달라진 외모를 보시곤 "육아휴직 끝나고 복직하셨나 봐요~"라고 먼저 말을 붙이셨다. "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곤 바로 7년 전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2살이었던 첫째 하원 시간에 맞춰서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카시트에는 1살인 둘째를 태웠다. 차에서 내려 아기띠를 먼저 하고 그 위에 하나뿐인 패딩 잠바를 입는다. 나도 때 빼고 광 내며 직장 생활할 때가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새롭게 구입하는 아이 물건들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꾸밈에 들어가는 노력이 줄어들었다. 항상 아이를 안고 다니니 면 티셔츠가 제일이었다. 겨울에는 숏 패딩 하나, 롱 패딩 하나가 전부였다. 색깔별로 사놓고 요리조리 멋을 내던 아가씨 시절은 저 먼 옛날이야기였다.


그렇게 나는 늘 똑같은 패딩 잠바를 입고 첫째의 어린이집 교실에서 갓난쟁이 둘째와 함께 기다리는데, 그때마다 좋은 차를 몰고 모피 코트를 요일별로 다른 색깔로 바꿔 입고 오는 아이 친구 엄마가 있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사 입을 수 없어 보이는 결이 참한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좋아 보였다. 외동딸 '루아'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이름도 영롱한 딸 루아와 엄마는 늘 여유로워 보였다. 내가 현실 육아를 하고 있다면 루아와 루아 엄마는 동화 속에 나오는 풍경 같았다.


가끔은 어린 아기 키우는 엄마들도 화장을 하고 옷을 깔끔하고 세련되게 갖춰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감탄한다. 와, 나는 세수만 할 수 있어도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밤중 수유를 할 때는 양치질할 시간을 놓쳐서 그대로 아이와 잠이 든 적도 있다. 외출 한 번 하려고 하면 연년생 두 아이의 준비물을 챙기느라 결국 마지막에 머리 한 번 쓱 빗고 나가는 날이 태반이었다. 선크림도 몇 년간 바르지 않았었다.




그동안은 한 살 터울로 쑥쑥 자라나는 남매의 사계절 옷을 새롭게 장만해주느라 내 옷은 거의 사지 않았다. 결혼 전에 입던 옷을 입기도 하며 나의 치장엔 관심을 쏟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 옷도 우선으로 사야 한다. 나에게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새로운 시간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옷을 멋지게 입는다고 업무 능력도 올라가고 관계에 있어서도 우위를 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은 할 수 있게 된다.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구나. 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하나의 문화를 만드는 데 나도 한 명의 구성원으로 역할하고 있구나. 한 명 한 명이 만드는 색깔이 어우러져서 전체의 그림이 완성되겠구나.


내가 만드는 색깔은 나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를 바란다. 이제 겨우 4 차이고, 아직 여러모로 도움을 주기보다는 도움을 받는 '약자' 입장이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명에게  다가가고 다는 것이 자명하다.


그런 마음이 남몰래 생기는 중이다.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잘하고 싶지만, 지금 보이는 그 모습이 스스로에겐 최선이라는 것을 이젠 넓은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내가 변했다. 그런 나의 변화가 옷차림에도 나타났으면 좋겠다. 좀 더 헐렁하고 편안한 옷, 내가 좋아하는 색깔의 옷을 사는 것에 망설이지 않는 마음까지 갖고 싶다. 이제 주말이 다가왔다. 바느질이 필요한 옷, 손빨래가 필요한 옷, 세탁소에 맡길 필요가 있는 옷을 잘 구분해서 또 다음 주에 내 몸과 마음을 감싸줄 옷을 잘 관리해봐야지.


이렇게 복직 첫 주를 보낸 나를 칭찬하며, 기본적인 세팅을 잘 마무리하고, 업무에도 의미와 사명을 가지며 착착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 욕심은 내지 말되, 삶의 균형을 잡고자 하는 투명한 열정은 계속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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