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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Jul 28. 2022

직장인이라는 외피

작심삼일을 무사히 넘기며


아이를 낳아보고서야 부모  심정을 헤아릴  있었다. 아이 낳기 전에는 천지를 모르고 까불며 살았다. 나는 그러고 싶어서 그런  아닌데 매년 쉬지도 않고 꼬박꼬박 나이를 먹고 회사에 와보니 후배들이 군단을 이룰 만큼 많아졌다.  다물고 지갑을 열어야  선배 자리에 다다랐다. 나이를 먹고자  것이 나의 본의가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다.


후배들의 생기 있음, 경쾌하고 발랄함이 나의 마음을 두드린다. 그리고 내 기억 하나도 오랜만에 열렸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새싹보다 더 푸르르던 시절. 까마득한 선배님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던 시절.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던 나의 이름은 알고 계시지만 성까지는 확실히 기억하는 것이 어려우셨나 보다. 나는 선배님이 내 성을 잘못 부른 줄도 몰랐는데, 대화를 마치고 자리로 와보니 사내 메일이 하나 도착해있었다. 그 높디높아 보이던 선배님은 후배의 이름을 잘못 불렀다면서 미안하다고 하셨고, 거기에다가 <논어> 같은 책의 어떤 문장도 인용해서 앞으로 회사 생활을 밝고 씩씩하게 해 나가길 응원하겠다는 덕담까지 보내오셨었다.


나는 그 메일을 받고 감사한 마음이 깊숙하게 다가왔지만, 그 고마움과는 별개로 똑같이 한자어를 사용해서 정중하고 장중한 문장을 구사할 자신이 없어서 답장조차 보내지 않고 자그마치 십몇 년이 흘러버렸다. 이제는 보내고 싶어도 선배님은 퇴직을 하셨기에 사내 메일로는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오늘로써 3 차다. 사무실로 차를 몰고 가는 아침의 심정과 다시 집을 향해 차를 몰고 오는 오후의 심정,  둘을 소화하며 하루를 보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새벽에는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고, 퇴근 후에는 도시락을 씻는 것으로 집에서의  번째 근무를 준비한다.  도시락을 싸고,  먹은 것을 설거지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복직하지 않았더라면 이걸 싸고 풀고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집에서 아이들하고 신나게 놀고 있을 텐데...'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면 다시 반대방향으로 돌리기 위해서 회사에 다니면 좋은 점을 어서 떠올려보려고 한다. 우선 오늘 발견한 것은 이것이다. 같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 내가 본받을 만한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불평을 하자면 끝이 없을 텐데 그러지 않고 고맙고 훌륭한 사람 찾기에   혈안이 되어보려고 한다. 이상하게 그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것이 나이 먹은 탓일까? 아이 둘을 키워본 덕일까?


물론 아직 파악하고 적응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해서 예전처럼 울적한 기분이 든다거나, 못 견디게 괴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겨우 3일 차라서 그런 것 일 수도 있는데 내 눈에 들어오고 내 귀에 들어오는 많은 것을 보며 '모든 사람이 원래 그렇지. 자기만의 방식이 있지.' 하는 생각이 앞선다. 예전의 나는 절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이래서 불편하고, 저 사람은 저래서 힘들어.'라고 생각하며 내가 힘든 이유 기백 가지를 그 자리에서 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않고 싶다.




아이 둘을 방학 중 돌봄 교실에 맡기고 출근하는 이 마음, 이 땅에 수많은 엄마가 같은 길을 달리고 있을 텐데 나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 나만 힘든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해보니 어떤 포인트에선 특별히 마음이 무너질 것처럼 죄책감이 들더라거나, 수치감이 들어서 혼이 났다는 것 따위를 꾸준히 기록해두고 싶다. 그리고 내가 한 기록이 쓸데 없어졌으면 좋겠다. 내가 겪은 어떤 고민이나 고난 같은 것은 나의 대에서 끝났으면 좋겠다.


여성친화 정책, 육아하는 부모를 위한 제도가 나왔을 때 처음 사용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정책적인 배려가 감사하지만 개인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담담히 적어두고 그 기록이 후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람들의 불편을 줄여줄 수 있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내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었으면 좋겠다. 고생은 여기까지, 뒤에서 이런 제도와 문화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은 난감함이 줄어들고, 편안함과 행복감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글에 묻은 절절함과 비애의 그림자가 그들에겐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한 글을 쓰면서 회사 내의 보안과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의 신상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그 균형점을 찾는 것 또한 나의 몫이다. 글을 쓰다 보면 자꾸 자극 점을 찾아서 선을 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하지만 길고 단단하게 길을 내기 위해서는 지금 이 시점에 감수해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 그것이 곧 나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작심삼일이라고 했다. 3일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 욕구가 터질까 봐 겁을 냈는데 무사히 3일째 밤을 맞이한다. 아이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져서 아프로디테 나오는 부분까지 읽어줬더니 잠에 들었고, 나는 이제 고대 전쟁사 책을 읽고 곧 잠에 들려고 한다.


하루를 전투라고 생각하지 않아야지. 내게 오는 시간과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매시간, 매 사람을 대하고 싶다. 그러면서 나를 잃지 않고 편안하게 이 생활을 지속하고 싶다. 첫 월급이 나오면 얼마나 기쁠까를 생각해보았다. 이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는 이제 직장인이 된 것이 분명하다. 월급 말고도 내게 또 다른 즐거움이, 마음 깊숙한 곳을 꽉 채워주는 내밀한 행복이 있어야지. 그게 진짜 '나'이니까. 직장인이라는 개념은 나의 가장 마지막 외피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 옷이 내게 무척 화려하고 때로는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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