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듦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

인생에도 1종, 2종 면허가 따로 있을까?

by 바이올렛


"0 과장, 요즘 힘들어요?"

"네, 팀장님. 요즘 좀 힘들어요!"


쑥스러움과 멋쩍은 웃음 사이에 조금의 반항심과 투정까지 덧붙여서 팀장님께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회사생활이 애들 장난일 수는 없지만, 요즘 진행 중인 업무가 조금 무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을 했다. 며칠 전부터 눈가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가장 피곤할 때,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만 생기는 입가의 수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물집이 잡히는 것이다. 통증과 함께.


뭐 커다랗고 대수로운 병은 아닐지라도 이런 작은 질환을 눈감고 지나가면 숙명적으로 그다음으로는 마음이 힘들어질 차례라는 걸 경험상 알고 있다. 몸과 마음은 스트레스에 함께 반응한다. 단지 시간차를 두고 올뿐이다. 내 몸과 마음을 사리느라 팀장님께 '힘들다'는 큰소리를 치고 났더니 그날부터 팀장님께서 눈에 띄게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나도 다 안다. 내가 지금 배려받고 있다는 사실을.




팀 전체에 보내는 메일에서 팀장님은 다른 모든 팀원들에게 나를 도와주라는 메시지를 보내셨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주요 관심 업무라서 나는 그것만 하면서 살기에도 벅찼다. 한마디로 내 일만 바라보고 그것만 처리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사이에 팀원들은 내가 놓치고 있는 업무들을 티도 내지 않고 돕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배려받고 보호받으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상황을 잘 모른 채 팀장님께 '힘들다'라고 큰소리를 쳐놓고 나니 자꾸 시간이 지날수록 겸연쩍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이것도 못 버틸 정도였나? 이어서 몇 가지 질문들이 떠오르지만 더 이상은 자책하는 투의 질문으로 나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대신 칭찬할 거리를 좀 찾아보기로 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로, 절대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입술에 수포는 물론이고, 몸에 병이 생겨도 이야기를 잘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나는 아픈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정상 근무 시간을 채우려고 미련한 언행을 한 적도 있다. 물론 아무도 그런 내 상황은 모른 채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지진이 왔다.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아무도 몰라주네.' 나도 인정받고 싶고, 아픈데도 노력하고 있다는 걸 할 수 있다면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끝까지 못했다.


과거의 온갖 미숙했던 판단들과 아픔을 참고 웃으며 근무하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리다. 힘든 걸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던 나는 왜 그랬을까? 무엇이 두려웠을까? 그렇게 하고 나서 남은 것은 무엇이었던가? 병든 마음뿐이었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젠 그러지 않겠다는 결심이 섰다. 따로 결심한 적은 없지만 이미 내 언어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의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고, 규모가 작을 때 나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자 희한하게 깨달음도 함께 왔다.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하고 그 상황 이후에 어떻게 가야 할지 방향도 잡을 수 있겠다. 나에겐 아주 큰 변화다.




나는 운전면허를 2종 보통으로 땄다. 오토 기어가 아니라, 1단부터 6단까지를 수동으로 넣는 옛날 방식 기어로 배우고 시험에 응시한 것이다. 예전의 우리 차가 그런 타입이기도 해서 어려운 것으로 시험을 봤었다. 당시엔 오토 기어가 막 보급될 시기라 많이들 쉬운 면허 시험을 응시했지만 나는 굳이 정석대로 배워두면 좋을 거라 생각해서 어려운 길로 들어섰었다.


물론 지금은 수동 기어 조작 방식을 거의 다 잊어버리긴 했지만 내겐 한 가지 경험은 분명히 존재한다. 수동 기어를 사용하다가, 오토 기어를 사용해보니 이건 뭐 편리함의 정도가 차원을 넘어서는 급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이건 처음부터 오토 기어로 운전했던 사람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간편함과 기쁨이다. 요즘의 내 회사생활도 이와 비슷하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힘듦을 절대로 알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꾹꾹 참으며 병을 키우던 성향이었다. 그렇게 참고 참다가 한방에 '못 하겠다.'는 말을 하는 미련한 쪽이었다.


하지만 이젠 수시로 '김을 빼듯' 가볍게 웃으며 나의 상황을 캐주얼하게 말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헤퍼 보여도 좋으니 몇 중으로 남을 배려하고 생각하다가 정작 가장 가까운 내 마음 하나 제대로 못 챙기는 상황은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수동에서 자동 기어로 바꾸어 운전하며 자유와 편리함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처럼, 직장생활에도 나만의 기어 변화를 확실히 주려고 한다.


꾹꾹 참았다가 한방에 터뜨리는 유형의 감정 전달이 아니라, 가벼운 바람개비처럼 하루하루 내 감정에 충실하며 가벼워진 마음의 짐을 시원하게 떨쳐버리고 일은 말끔하게,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과는 홀가분하게 지내고 싶다. 모두 지나고 나면 얼마나 치열하게 일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남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얼마나 웃으면서 마음을 따뜻하게 나누면서 근무했는지가 남는다. 지나 보낸 시간을 통해서 앞으로 어떻게 직장생활을 이어가야 할지를 설정해보자.


오늘의 글은 쓰기 시작할 때부터 유독 부끄러웠다. 지금 회사의 육아지원제도와 선한 사람만 모은 것 아닐까 싶은 우리 직원들의 얼굴이 자꾸만 겹쳐졌다. 이 공간은 나의 온갖 생각을 다 받아내는 곳이기에 우선 적기는 했다만, 쓸수록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정말로 많은 지원과 배려, 기회 속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구나!' 오늘 글의 수확은 이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만족한다.




카카오톡 어느 구석엔가 지금 쓰고 있는 '워킹맘 이야기'가 게시되었나 보다. 복직하기 전날의 에피소드에 대한 조회수가 수만을 넘어서고, 구독자수가 계속 늘고 있다. 이것도 나에겐 새로운 경험이다. 예전에 다른 sns를 할 때엔 최대한 나를 알리는 것이 포인트였다면, 요즘 브런치에 글을 쓸 땐 나의 신상과 특히 회사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글을 잘 쓰고 싶고, 생을 다 하는 날까지 좋은 글을 써내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결국 어느 순간에선 제 삶을 어느 선까지 드러내 보일 것이냐 하는 거대한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글을 써서 그 일이 본 직업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의 내 본 직업은 '직장인'이다. 그렇기에 내 삶을 어느 선 이상으로 드러낼 수 없다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 한계가 다행스럽게도 전혀 아프지 않다. 나에게 한계가 있기에 내가 안전한 영역을 설정해서 얼마든지 자유롭고 심도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도 명확하다. 이렇게 내 손으로 선을 그어놓고 자유와 기쁨을 찾아가는 과정이 무척 행복하다. 글은 그렇게 나를 성장시킨다. 글을 쓰려면 내 정체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얼 하는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쓸 수 있는 사람인가? 이렇게 고작 몇 가지 질문을 남들보다 추가로 안고 살아갈 뿐인데도 나의 삶은 겹겹이 의미와 보람으로 쌓여가고 있다.


이렇게 오늘처럼 글을 쓰다가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충만한 감사를 느끼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글이 내게 주는 기가 막힌 유익이다. 요즘은 긴장이 되어 꿈에서도 업무 하는 꿈을 꾼 적이 있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부담감과 긴장감을 내려놓기 힘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일찍 눈이 떠진 오늘 같은 새벽에 그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놓는 데에 글을 쓰는 것만큼 감사한 일은 없다. 그렇게 내가 글을 쓰고, 나로 인해 글은 탄생되고, 그렇게 탄생된 글은 다시 나를 살린다. 그러니 어떤 어려운 일이 와도 나는 글을 쓰며 또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것이다.


새벽 6시 차츰 창밖이 밝아져 온다. 우리 아이들의 인생이 이렇게 밝아졌으면 좋겠다. 나는 그 인생을 바라보며 그들을 축복하며 내 인생이 차츰 어둠에서 죽음으로 향하더라도 기꺼이 기뻐할 것이다. 물론 많이 이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생명력과 활기가 커지는 만큼, 나의 그것은 줄어들 것이라는 걸 이젠 겸허히 받아들이고 싶다. 이 모든 것이 글을 쓰며 배우게 된 것이다. 오늘 하루도 불평은 줄이고, 감사는 크게 가지며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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