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이 유난히 소심 해지는 어느 날

내가 입은 이 옷 때문인가?

by 바이올렛


유난히 나의 수치감에 자꾸만 빨간불이 들어와서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 이따금 만들어지곤 한다. 둥글둥글하게 무던한 사람들과 일을 할 땐 살짝 허세도 부려보고, 괜히 목소리도 더 자신감 있고 크게 만들어서 부품 해 보이게도 만들 수 있지만, 꼭 나처럼 예민하고 작은 것도 잘 파악하는 사람들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나의 숨기고 싶은 수치감과 불안감까지 다 보여준 것 같아서 얼른 혼자 있고 싶어지는 그런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잘 보이고 싶어서 아껴두었던 옷까지 꺼내 입었는데 잘 보이기는커녕 집에 돌아와서는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이불킥 하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 바로 오늘이다. 집에 와서 정말로 엄마 밥을 먹으며 티브이를 틀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귤이라도 까먹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선 내가 엄마이고, 내 손으로 쌀을 씻어 밥을 해야 했다. 심지어 유부초밥을 만들어 아이들 접시에 하나씩 대령하며 나는 마지막 남은 기운까지 짜내야 했다.


오늘 멋 부리려고 입었던 그 옷을 몇 주전에도 입었었고, 그날도 정확히 오늘 같은 기분을 느꼈었다.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멋을 부리고 갔었는데, 폼을 잡기는커녕 그나마 남아있던 체면까지 깎이는 듯한 기분으로 돌아와야 했던 그날.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속에서 일어나는 이 오묘한 기류에 대해서 남들은 전혀 관심도 눈치도 채지 못하지만 나 혼자 이렇듯 북 치고 장구 치며 유난을 떨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번 그날도, 그리고 오늘도 유난히 잘 보이고 싶고, 유능하고 쾌활해 보이고 싶었었다. 하지만 난 그런 쪽으로 강점이 있다기보다는 조용히 혼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커다랗게 뚫린 공간에서 족히 잡아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같은 장소를 공유하며 그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참 기특하게도 참아가며 하루를 사는 나를, 나는 정말이지 무한히 칭찬해주고 싶다.


조용하게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내가 매일 화장실 한 번 갈 때마다, 출력물을 찾으러 프린터기 앞으로 갈 때마다 여러 명의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고 스몰토크를 하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때마다 반듯하게 인사하려고, 멀쩡하게 멋진 사람처럼 행동하고 싶어서, 얼마나 많은 애를 쓰고 있는지 역시 나 혼자만 아는 비밀이다.


가벼운 농담 하나에도, 미소의 밝기 정도에도, 목소리 톤의 다정함에도 내가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론 아무도 모른다. 나만 안다. 그러니 그렇게 여러 사람과 좋든 싫든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더욱 부족함 없이 칭찬을 쏟고 싶다. 정말 대단하구나. 조용한 공간에서 사색하길 좋아하던 내가 매일을 소셜라이징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다니!




복직하면서 염려했던 것 중에 다른 하나는 바로 회사의 비전에 따라서, 팀의 업무목표에 따라서, 내게 그저 업무분장에 따라 맡겨진, 그야말로 시키는 일을 과연 기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여전히 많은데, 과연 월급 받기 위해 주어진 일을 불평없이 해낼 수 있을까가 진심으로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이 점은 의외로 '가능하다'는 것으로 판결 났다.


막상 일을 하다 보니 스스로 동기 부여해서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솟구친다는 것이 신기했다. 마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요즘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려고 바짝 열이 올라 있는 상태다. 참 신기하다. 이것도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한 구슬픈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것은 맞다. 신기할 만큼 꼬박꼬박 하루를 알차게, 치열하게 보내고 있다. 매일 그것을 해내는 내가 그저 신기할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를 즐겁게 할 만한 요소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주위를 보니 종교생활에 열중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흡연을 통해 소소한 기쁨을 누리는 사람도 있고, 점심때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행복을 누리는 사람도 있고, 주위 사람들과 소소한 수다로 일상을 꽃피우는 사람도 보인다. 그럼 요즘 내가 누리고 있는 즐거움은 뭘까?


책상에 여러 종류의 영양제를 갖춰놓고 수시로 먹고 있다. 알약이라서 입에 톡 털어 넣는 것이 있는가 하면, 쭉쭉 짜 먹는 액체형도 있고, 가루 타입이어서 탈탈 털어 넣어야 하는 것도 있다. 신체 여러 곳의 기능을 좋게 하는 약들이라 크기도 다양하고, 맛도 그렇다. 이처럼 수시로 무언가를 먹으며 지내고 있다. 이것 말고는 책상 위에 장식품을 소소하게 두는 것이 있다. 선물 받은 향수를 올려두었고, 딸이 만든 선인장 화분도 놔두었다. 여기까지 써보아도 나의 일상에는 아직 달콤한 향기가 나지 않는다. 재미가 없다.




소심 해지는, 수치스럽고, 숨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 어쩌면 또 올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그런 날은 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한 군데에 모여서 일하는 곳이라면 하루에도 여러 번, 여러 장소에서 각각의 등장인물들에게 생겨나는 일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도 그렇다. 어느 시기는 수월하게 술술 넘어가는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시기에는 하는 일마다 걸려 넘어지는 것처럼 자꾸만 실수하고, 괴롭고, 그래서 망설여지는 때가 분명히 생긴다.


오늘이 대표적인 그런 날이었다. 하지만 그런 날마다 나는 내 가슴이 얼마나 예민하게 살아있는지 깨닫곤 한다. 어느 지점이 그렇게 못마땅했으며, 무엇을 그토록 바꿔보고 싶었는지 더 알고만 싶어 진다. 그리고 내 안에 숨어있던 위대해지고 싶은 마음, 밝고 명랑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집착, 실제보다 커 보이고 싶고 사교적이며 대범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에 대해서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참으로 그런 것을 유익이라고 생각하며 추구하고 있구나 싶어서 한편으로는 내 마음을 살살 쓰다듬어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반면 글을 쓰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에 대해서도 굳이 써보고 싶어 진다.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위의 욕망들을 채우고 싶어서 결국 안 해도 될 말, 안 하는 것이 더 나았을법한 말들을 수없이 내뱉고, 동시에 수없이 후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 내부 작동이 너무 숨 가빠서 결국 고장 나는 날이 생긴다. 오늘처럼. 그러면 그날은 감정 회로가 고장 나서 내내 암울한 기분으로 지내다가 아이들에게도 저기압인 모습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까만 밤에 자괴감까지 곱절이 되어버린다.


갑자기 여기까지 쓰다 보니 부끄럽고 동시에 개운해서 웃음이 난다. 우선 쓰기로 한 나의 장점들에 대해서 써봐야겠다. 나는 이처럼 사교적인 대화에는 서툴지만, 가만히 생각하고, 조용히 그 생각들을 글로 써보는 것에는 관심이 있고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세상엔 꼭 나처럼, 내향인이지만 밥벌이를 위해 외향인 인척 해야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할 거라 믿는다.


자신의 성향을 커튼을 닫듯이 가리고 살아갈 그들과 공감대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사실 이렇다'는 얘기를 무심히 해보고 싶다. 이런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걸, 기록으로라도 남겨두고 싶다. 이것이 나의 장점이다. 제 앞가림 하나만으로도 벅찬 하루를 반복하고 있지만 다행히 내겐 나와 같은 어떤 이가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며 그를 위해 내 하루를 기꺼이 열어서 보여줄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희망적이라고 믿는다.


아직 나와 정확하게 똑같은, 외롭지만 단단한, 조용하지만 잘 살고 싶은 사람을 많이 발견하진 못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여기에 있다고 자꾸만 손 흔드는 일을 이렇게 글 쓰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오늘 같은 울적하고 까만 밤을 혼자 맞고 싶지 않고, 혹시 누군가 그런 까만 밤을 혼자만의 방에서 보내고 있다면 이 글이 그 어둠 사이를 조금이나마 밝힐 수 있길 바란다.


내향인이 유난히 소심 해지는 날은 아마도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그날들에 대비하려면 나를 웃게 하는 것, 나를 으쓱하게 만드는 것들을 도처에 마련해두어야겠다. 우선 나의 아이 둘이 있다. 그 둘은 세상에서 나를 제일 좋아한다. 그것으로 다 된 것 아닐까? 근 10년을 아이 둘 키우며 보냈지만, 앞으로의 10년은 아이 둘에게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나의 커리어를 이어봐야겠다.


딸은 학교 미술시간에 만드는 대부분의 작품에 "엄마, 사랑해요"를 고정 로고처럼 사용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흔들리는 내면을 가진 어미라는 것을 딸을 모를 터. 하지만 딸이 내 나이쯤 되면, 내가 이토록 흔들리는 와중에 그들을 사랑으로 정성으로 길러왔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한 30년쯤 후에 말이다. 그때 할머니가 되어 딸로부터 고맙다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괜찮겠다. 나는 지금 딸이 창작해내는 여러 작품 속에서 최고의 뮤즈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사무실에서 헛헛한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멍하게도 보내고 때로는 업무에 정진하면서도 보냈는데, 정작 글을 쓰는 이 시간 동안 내가 웃다가 울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요즘의 이 시간이 나를 성장시키고 있는가 보다. 격렬한 감정들과 아이들의 무서운 성장세가 합쳐져서 나는 한 여성의 삶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갈 수 있는지, 30대와 40대의 경계가 얼마나 아찔할 수 있는지를 알아간다.


일상의 슬픔, 서운함, 외로움, 괴로움들을 글을 쓰며 내려놓는다. 고단함도, 불만도, 미련도, 수치감도 전부 뒤로한다. 그리고 나는 또 쓰면서 세월앞으로 나아간다. 소심함으로 꽉 찼던 그 마음에도 틈을 만들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채워봐야지. 모든 사람에겐 불행 사이에서도 웃음을 찾을 방법이 있으니까. 그 방법은 스스로 찾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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