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 가지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돈 버는 목소리, 나를 위로하는 목소리

by 바이올렛


나는 분명히 한 사람인데 누가 나에게 말을 거느냐에 따라서 내 목소리가 달라진다. 직장 상사, 엄밀히 말하면 상대의 직급 차이에 따라서 내 목소리의 친절함, 명료함, 대답하는 스피드는 미세하게 달라진다. 얼마 전엔 내게서도 이런 공손하고 예의 바른 목소리가 이토록 순발력 있게 나올 수 있구나를 체감했다. 보통 사무실에 있으면 비슷한 위아래 직급의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기 마련인데, 최근 한 달은 임원진과 관련된 업무를 하느라 접촉하는 사람들이 달랐었다.


그곳에서의 나는 행동거지를 늘 조심했으며, 불시에 방문하는 임원들의 갑작스런 질문에도 늘 성실하게 답할 수 있도록 스탠바이 자세로 근무를 하곤 했다. 아! 내가 이토록 단정하고 질서 정연한 인간이었구나를 느낄만한 시간이었다. 묻는 말씀에 침착하고 정성스럽게 대답을 하고 나서 톤 자체가 무척 공들인 목소리라는 걸 나만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반면 내가 업무 지시를 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그러면 나는 최대한 위엄 있는 목소리, 단 한 번을 이야기해도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명확하게 상대방에게 도착하게끔 하는 기술을 기가 막히게 익혀가고 있다. 이건 어떻게 익히게 되었을까? 20대부터 수없이 많이 좌절하고, 무시당하고, 마음고생을 해보고 나서 터득하게 된 노하우이다. 눈물로 만들어진 기술인 셈이다. 언제 분위기를 풀어 농담을 주고받아야 하는지, 언제 긴장된 어조로 명확한 의사 표현을 해야 하는지 나는 매번 실수해 보고 나서 제대로 깨닫는다.


내가 만나는 업무 파트너들의 목소리가 바뀌는 광경도 목격한다. 내게 예의 바르게 대답하고 나서 자신의 후배 직원에게는 굵고 단호한 목소리로 업무 지시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그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는 모두 직급과 지위, 계약의 갑을관계에 따라서 목소리를 바꿔가며 살아간다. 그게 삶의 기술이고 돈 버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겐 기본 인지도 모른다.




무척 바쁘던 업무가 어제 날짜로 끝났다. 심적으로도 중압감이 있었지만, 물리적인 시간 역시 평소보다 많이 필요로 했다. 야근을 했고, 주말근무를 했다.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 공백이 생겼고, 저희들끼리 저녁밥을 먹고 양치 후에 잠들기까지 한 날도 있다. 남편과 아이 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매일 읽어주던 그리스 로마 신화 읽기의 맥이 끊겼으며, 업무를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와 보니 남매는 마치 개떼처럼, 싸우는 기술이 늘어있었다. 이것이 전부 나의 부재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야근을 마치고 온 날은 뇌가 몸에게 푹 쉬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지 못하는지 긴장이 풀어지지 않아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을 마치 밀린 숙제 하듯 주말의 낮잠으로 채우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마무리해야 할 집안일이 모두 대기 중이었다. 빨래를 시작으로 손 닿는 곳을 하나씩 정돈하고 남편에게 남은 일을 맡긴 후 아이들과 밤나들이를 떠났다. 집안일보다 시급한 것이 아이들에게 엄마를 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축구공 하나를 들고 동네의 공원으로 향했다. 엄마와 지내는 시간, 엄마 품에 얼굴을 파묻는 시간, 엄마에게 온갖 종류의 기상천외한 말을 쏟아내는 시간을 뺏겼던 아이들은, 공 하나를 주고받으며 허전했던 마음을 채우는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 그토록 맡고 싶었던 아들의 머리에서 나는 군고구마 냄새와 딸에게서 나는 아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말랑말랑한 아이들의 몸을 안으면 나는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워진다.


공원 한쪽에서 공을 주고받다가 운동장의 한쪽 축구 골대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우리는 얼른 달려갔다. '골키퍼'라는 단어가 생소했는지, 아이들은 '꼴끼'라는 별명을 붙여서 나에게 골키퍼 역할을 하라고 했다. 돌아가면서 골대를 향해 공을 차고, 역시 돌아가면서 공을 막아냈다. 딸은 조그마한 몸으로 공을 잘 막아냈다. 땀을 뻘뻘 흘린 채 돌아오는 길엔 음료수를 사 먹었다.




그렇게 핸드폰 배터리를 급속 충전하듯, 아이들과의 교감도 급속 충전하는 시간을 가진 후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아이들을 뒤로하고 남편과도 못다 한 대화를 마치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 아무리 바빴어도, 아무리 나 아닌 듯 목소리를 바꾸며 돈 버는 일에 충실했더라도, 여기 이렇게 글 쓰는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걸 잊지 않고 싶다. 글 쓰는 나는 늘 밖에서 힘들었던 나를 위로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잘못된 결정을 내릴지라도, 어디에 가서 어떤 어설픈 언행으로 망신을 당할지라도, 여기 이렇게 있는 '글 쓰는 나'는 늘 지나간 상황에 대해 테이프를 다시 돌려보고 결국은 모두 그럴만한 일이었다며 나를 위로할 것이다. 그 든든하고도 확실한 한 명이 존재하는 한 나는 무너져버릴 만한 일이 생겨도 마지막 순간엔 나를 지켜낼 거라고 믿는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바로 전날 염려하던 한 가지 일이 터졌다. 그 때문에 추석 연휴 4일을 혼자 마음고생하느라 끙끙 앓으며 보냈다. 하루 이틀 내 사정을 들어주던 남편은 3일째에는 이제 그 이야기 좀 그만할 수 없겠냐며 등을 돌렸다. 나의 전전긍긍함이 그의 인내심의 테두리를 뛰어넘는다는 것에서 상황을 크고 넓게 보지 못하고 작은 것에 매여서 걱정으로 날을 지새우는 내 처지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단테의 신곡>을 보며 '연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발견했다. 천국과 지옥 사이, 어중간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자신의 업보를 닦아나가며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충분히 기도를 해서 천국으로 가기를 희망하며 대기하고 수행하는 그 공간, 연옥. 어쩌면 우리 모두는 소소하거나 중대한 각종 잘못들을 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모두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목소리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밖에서 아무리 자신을 공격해오더라도 최후의 방어선을 가진 튼튼하고 단단한 인간이 되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겐 글을 쓰는 자아가 있다는 것이 그런 역할을 한다. 글을 쓰며 내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도 물론 우호적이겠지만 내가 나에게 나지막하게 내는 목소리의 톤을 나는 좋아한다.

'걱정하고 있구나. 두려워 마. 모든 것에는 풀어나가는 방법과 해결의 실마리가 존재할 거야. 상황은 순조롭게 흘러갈 거야.'


나만 들을 수 있는 내가 내는 위로의 말을 더 많이 글로 써놓으려고 한다. 결국 그 말이, 그 나지막한 톤이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고, 또한 아이들이 성장해서 자신들을 향해 낼 수 있는 목소리이길 바란다.


돈 버는 목소리, 인기 끄는 목소리, 뽐내는 목소리 등 세상엔 여러 목소리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람을 믿고 사랑하는 목소리'이다. 내가 어느 상황에 놓여도 그 목소리만은 잃지 않기를 바란다. 결국 목소리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프다. 그리고 내게 주는 위로에 아낌이 없기를 바란다. 작은 것도 크게 칭찬하며 매일 성실한 하루를 추가해가는 나를 위로하고 싶다.


'지난 한 달간 긴장하며 준비했던 일 마치느라 수고했어. 앞으로의 한 달도 잘 이어가 보자. 충분히 할 수 있어. 정말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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