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열기 위에서
퇴근 무렵이 되면 시계를 쳐다보며 정각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시간이 되면 피씨를 끄고 짐을 챙겨 칼퇴근을 한다. 차를 몰고 학교에 도착해 돌봄 교실에서 두 아이를 찾는다. 그리고 다시 차에 태워 함께 집으로 온다. 이 일정은 매일 반복되고 내가 우물쭈물 지체하거나 일을 제시간에 마치지 못하면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돌봄 교실에서 나와서 집에 온다. 땡볕 아래에 걸어오게 될 아이들 생각을 하면 그 무거운 가방을 내가 짊어지고 싶어서 얼른 퇴근할 채비를 하게 된다.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차로 향했다. 평행 주차를 했는데 내 바로 뒤차가 너무 바짝 세워져 있어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핸드폰 번호를 확인하고 연이어 전화를 해봐도 받지 않고 문자에 답신도 없다. 속이 타들어갔다. '어서 아이들에게 가야 하는데....' 땡볕에 서서 차를 몰았다가 다시 밖에 나와서 여유 공간이 있는지 확인했다가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회사 건물 앞에 있는 주차장이니 그 차의 주인은 아마도 같은 회사 직원일 것이다. 최대한 정중하게 문자를 보냈지만 삐져나오는 화를 감추긴 어려웠다. 그러다가 차를 오도 가도 못하게 해 놓고 연락도 안 되는 뒤차가 점점 미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미움이 분노로 번졌다가 체념과 굴욕으로 바뀌었다. 이유는 이렇다.
내 차는 남편이 결혼 전 난생처음 뽑은 차다. 첫째가 9살이니, 이 차의 나이는 열 살이 넘었다. 한 마디로 오래되고 낡은 차다. 이곳저곳 고장 나는 곳이 생기고, 빛바랜 부분과 때 탄 부분이 있어서 복직 후 부쩍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 월급을 받을 무렵 한참 요즘 나오는 차를 검색하다가 드디어 마음의 결정을 내려 '신차 대기'를 해둔 상태다. 약 반년 정도 기다려야 된다고 한다.
그 반년을 나는 지금의 차를 타고 출퇴근해야 한다. 사무실 출입구와 일부러 멀찍한 곳에 주차한다. 이 낡은 차를 타고 다니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직원들과 가끔 점심 먹으러 멀리 나갈 때에도 "저는 신차 대기 중이라, 새 차 뽑으면 모실게요."라고 이야기한다. 늘 남의 차를 얻어 타고 다녀야 되는 것 역시 마음 편치 않다. 그래서 일부러 멀찌감치 주차해놓은 내 차 바로 뒤에 딱 붙여서 세워놓은 뒤차가 미워도 막상 내가 아는 누가 나올까 염려가 된다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자, 그 느낌이 참 굴욕적이었다.
내 뒷 차가 때깔 좋은 벤츠여서 더 그랬을까? 모르겠다. 내가 아는 상사가 나오든, 새파란 후배가 나오든 그 하얀색 벤츠의 차주가 내 차를 힐끗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희한한 생각까지 연결되자 이건 내 차를 못 빼서 억울하고 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든 0.1mm씩이라도 핸들을 돌려서 무조건 차를 빼내야겠다는 것으로 마음을 바꿔 먹게 되었다. 여기까지 결단을 내리며 나는 굴욕감과 패배감, 무력감을 골고루 느꼈다. 여러모로 억울한 퇴근길이었다.
천만 다행히 나는 운전을 무서워하진 않는다. 내 차에는 전후방 카메라가 없다. 그야말로 감으로 운전해야 한다. 남편이 수년 전에 달아놓은 센서에서 삐삐 소리가 날 뿐이다. 그 소리와 나의 운전 감각에 의지해서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고, 공간감과 방향감을 느끼는 내 무형의 더듬이를 한껏 올려서 나는 벤츠가 허용하지 않은 공간을 어렵사리 찾아서 탈출에 성공했다.
내가 자동차 핸들과 씨름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행인은 그 아슬아슬한 장면을 마치 좋은 구경거리라도 된다는 듯 힐끔거렸다. 부끄러울 새도 없고, 신경 쓸 겨를도 없다. 나는 어느 차에도 흠집을 내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저 어서 신차가 나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앞으론 차와 관련된 억울한 일이나 씁쓸한 하차감을 느낄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먹어보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차를 빼서 집으로 왔지만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더구나 평소에는 오손도손 사이좋게 하교하던 남매가 교문을 나오면서 싸웠다며 한참 시간 간격을 두고 각각 들어오는 꼴을 보니 이게 모두 속이 새까맣게 타버린 내 탓 같아서 기분이 더 땅으로만 꺼졌다. 그리고 나의 이런 기분이 사실 점심때 들었던 이야기로 인해 속이 아려서, 쭉 괜찮은 척해보려 했지만 실패한 모습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점심엔 나를 무척 아끼는 과거의 팀장님을 만났다. 그때 한 팀에서 일하던 다른 직원과 셋이서 식사를 했는데 대화의 주제는 '경제 감각에 눈을 떠야 한다.'였다. 내겐 아주 쥐약 같은 분야인데, 나를 무척 아끼는 마음에서 그 주제를 선정하여 만나자마자 헤어질 때까지 누차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최대한 팀장님께서 알고 계시는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환율 등에 대해서 일목 요연하게 설명해주셨지만 어떻게 된 것이 나는 듣자마자 자꾸 반댓쪽 귀로 빠져나가서 그것을 주워 담느라 마음이 몹시 분주했다.
나를 아끼는 마음이 클수록 내게 '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이야기하신다. 부모님은 당연하고, 회사에서 나를 진정 아끼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돈 이야기를 한다. 그 고마운 마음을 덥석 받아서 실행에도 옮기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쪽으로 아주 무디다. 읽고 싶은 책이 더 급하고, 쓰고 싶은 글이 더 간절하다. 정신을 못 차려도 한참 못 차린 자본주의 시대의 이단아다.
미혼 시절엔 할 줄 아는 외국어를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고, 배낭 하나 메고 세계로 여행 다니는 것이 행복이었지만, 나는 이제 아이 둘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남들과 수준을 맞춰서 소비하고 라이프 스타일도 얼추 맞아야 대화가 통한다는 걸 느낀다. 햇빛만 있어도 행복한 철학자로 살고 싶다는 나의 꿈이 자꾸만 허망하게 느껴지고,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서 자산 늘리기에 집중해야겠다는 현실감각에 비상등이 울리고 있다. 그걸 내가 왜 모를까?
바로 뒤차가 벤츠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오늘 느끼던 무력감의 크기가 작아졌을까? 아니면 내 차가 벤츠였더라면 더 당당하게 화를 내며 뭐 이따위로 무개념 주차를 하냐고 소리를 질렀을까? 모르겠다. 오늘 내가 뙤약볕 아래 주차장의 아스팔트 열기에서 느꼈던 그 답을 알 수 없는 감정에 여전히 마음이 쓰다. 그 대목에서 목에 뭐가 콱 막힌 듯 마음이 먹먹해져 온다.
몇 살엔 몇 평대 집에 살아야 하고, 강남에 입성해야 성공한 삶이라는 어떤 공식에 들어맞지 않는 내 가치관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진다. 우리 동네의 조용한 바람과 초록색 숲이 떠오른다. 거기에 내가 비싼 값을 매겨야겠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가장 좋은 곳이라고 여길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오늘은 머릿속에 여러 부자 동네와 고급차의 이름이 떠올라서 복잡하다.
이런 날은 일찍 자야겠다. 내 직장 근처에 사느라 남편은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면 나는 또 이 무력했던 가슴을 스스로 달래며 잠에 들어야 한다. 나보다 부동산에 대해서 더 무관심하고 잘 모르는 남편, 그래도 그와 우리의 노후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해볼 필요는 있겠다. 그렇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에 돈이 많이 든다. 그걸 모른 체 하지 말자.
그리고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사는데 진짜 필요한 게 뭘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가족의 행복, 사랑, 건강, 그리고 돈. 꼬박꼬박 받는 월급이 전부인 우리 부부. 부모님께도 모든 재산은 사회에 기부하시라고 이야기하는 나의 가치관. 나도 잘 모르겠다. 오늘 글은 어떻게 결론 맺어야 할지. 내 차 뒤에 꼭 붙어있던 벤츠를 보며 느끼던 주눅 드는 감정, 그 차에 조금도 손상을 끼쳐선 안된다는 무력감, 하지만 고개를 들고 자꾸만 튀어나오는 속상하고 화나는 기분을 나는 어쩌지 못했다. 잘 달래며 잠에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