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둘째는 흥이 많다. 나와 첫째는 시계를 자주 보고 규칙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편과 둘째는 즉흥적으로 결정해서 즉시 행동에 옮기는 것을 좋아한다. 돌봄 교실에서 나온 아이들을 차에 태워 귀가하다가 집에 도착할 때쯤 둘째가 이야기한다.
"엄마, 오늘 가방만 놓고 나와서 우리 외식해요!"
남편이 건강상의 이유로 외식을 하면 안 된다. 특히 고기류를 먹으면 안 된다. 그래서 최근에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건강식 위주로 했더니 둘째는 외식 생각이 났나 보다. 알겠다고 하고 집에 와서 도시락과 물통을 설거지하고 고깃집으로 향했다. 우리 셋이 있을 때만 미안해하지 않고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고깃집에서 냉면만 후루룩 먹는 남편을 보니 다시는 고기 먹으러 가자는 이야기를 할 수 없겠다 싶었다.
고기를 잘 먹고 나와서 바로 아래층에 있는 마트에 들러서 아이들 도시락 반찬에 넣을 찬거리도 사고, 비요뜨도 하나씩 사서 후식으로 먹으며 바로 옆 놀이터에서 좀 놀다 가기로 했다. 퇴근 후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재잘거리며 들뜬 아이들을 보니 몸이 저절로 움직여졌다. 밥도 잘 먹고, 후식도 잘 먹고, 놀이터로 달려가서 온갖 기구들을 야무지게 타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녀석들은 '돌봄 교실이 적응하기 힘들다'거나, '다른 아이들은 방학이라서 학교 안 나오는데, 왜 우리만 다니는 거냐'라고 투정 한 번 부리지 않는다. 행여나 불편하지는 않은가 싶어서 이것저것 물어봐도 그런 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도시락도 맛있고, 돌봄 교실에서 제공되는 특별활동도 재미있다고 한다. 같은 교실의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 뭐 하나 투정 부리지 않고 주면 주는 대로 잘 먹고, 어디에서나 잘 노는 모습을 보니 불현듯 내 속사정이 부끄러워진다.
복직 후 최대한 매일 글을 쓰며 마음을 쓰다듬어 보려고 마음먹었지만 어제는 일찌감치 몸져누워서 이런저런 괴로운 마음만 가득 안고 있었다. '나는 역시 다른 체질을 가진 사람이야. 안 되겠어.'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을 이불 위로 끌어안고는 남편에게도 개미 같은 목소리로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그렇게 잠들었다. 그리고 또 불꽃같이 활활 타는 듯 하루를 보내고 다시 밤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런 나의 24시간과는 무관하게 너무나 씩씩하고 밝고 평온한 24시간을 보내고 나와의 저녁 시간을 고대하고 즐기는 것이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둘째가 내 허리춤을 꽉 끌어안더니 이렇게 말한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가 없었더라면 우리도 이 세상에 없었을 거예요.
하느님이 우리를 엄마에게 보내주었어요.
얘는 한 번씩 이렇게 내 심금을 울린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도 똑같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했고, 엄마도 외할머니에게 똑같은 말을 하겠노라고 이야기했다. 집에 와서 들뜬 아이들을 가라앉혀 목욕을 시키고 이불에 눕혔다. 그리고 아이들 책가방 바닥까지 손을 넣어 혹시 빼야 될 물건이 있는지 보았다. 색종이 한 장이 툭 튀어나온다. 그리고 이렇게 적혀있다.
엄마, 회사 다니느라 많이 힘들지?
엄마 엄마가...
여기까지 적힌 보라색 색종이 위의 편지다.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 그리고 엄마를 위로하는 글자들.
아이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많이 힘들어 보였 나보다 싶어서 또 눈시울이 붉어진다. 남매가 매일 서로 다투고 자기만 덜 안아준다고 투정만 부리는 줄 알았더니, 사실은 내 생각을 꽤 많이 하고 있었나 보다. 엄마에게 편지를 쓰려고 마음을 먹고 저렇게 몇 글자라도 쓰다 만 것을 보니 기특하게 느껴진다.
복직 후 일주일 하고도 이틀이 더 흘렀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중 눈빛을 반짝이며 반가워해주는 이들이 있다. 조금 더 정을 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점심을 함께 한다. 엄마인 나는 업무도 관계도 잘해보려고 여러모로 노력 중이다. 그럴 때마다 나를 만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신경을 꽤 많이 쓰는 나, 별 일 아닌 것에 두려움과 공포를 집어먹는 나, 어찌 된 것이 아이들보다도 내가 더 어린것 같다고 느껴지는 나, 그래 놓고 되려 큰소리만 치는 나를 보며 내가 얼마나 작은 인간인지 매번 느낀다. 그래도 그 작은 인간이 기록을 통해 선명한 인간이 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그 노력이 나를 살게 한다.
방학 중의 학교는 공사가 한창이다. 학기 중에는 불가능했던 공사가 방학 때 몰아서 진행 중이다. 그 때문에 돌봄 교실 바로 옆의 화장실은 낮에도 전기 공급이 안되어 어둡다. 오빠는 그나마 금방 볼일 보고 나오기 때문에 괜찮은데, 둘째는 남자보다는 절차가 복잡해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두운 그 공간이 무섭다고 한다. 자기 전에 '후레시'를 좀 찾아봐야겠다. 혼자 화장실 갈 때 조금이나마 무섭지 않게, 엄마가 같이 가주지 못하는 그 어두운 화장실에서 조금이나마 안도감을 느끼라고.
어쩌면 이렇게 큰 사무실, 넓게 오픈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장소를 공유하며 근무하는 형태는 나의 세대까지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 우리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사라질 것이고, 월급 받고 주어진 일을 하는 개념도 사라질 것 같다. 온라인 접속이 되는 공간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 어느 시간대든 협업하게 될 아이들의 미래, 인간뿐만 아니라 로봇과도 접속하고 협력하게 될 그 시대를 내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기술적으로 물려줄 것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회사 내에서 비즈니스 매너를 익혀야 하고, 업무 처리는 어떤 식으로 해야 된다는 것은 아무 소용없을지도 모른다. 대신 인생을 설계하고, 시간을 관리하고, 자기의 사명을 스스로 설정해서, 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을 듯싶다. 엄마가 그렇게 먼저 살아보느라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고는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게 때로는 아이들이 나에게 힘을 주고, 또 일정 부분은 내가 본을 만들어가며 미래에 아이들에게 보탬이 될 수도 있을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간다. 워킹맘과 연년생 남매의 하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