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하이팅!

조금 더 직장인 생활을 이어가야 할 몇 가지 이유

by 바이올렛


결국 어제 딸이 쓰다만 편지를 너무나 받고 싶어서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민더야, 혹시 엄마한테 줄 거 있니? 엄마한테 편지 쓰려고 했었니?"


다 먹은 도시락을 꺼내며 어제 살며시 다시 넣어둔 색종이 편지지에 진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곤 내가 먼저 물었다. 딸은 곧 완성해서 주겠다고 하더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모르는 글자는 나에게 물어가며 편지를 완성했다. 내용은 이렇다.


엄마, 회사 다니느라 마니 힘이 들지?

엄마, 엄마가 회사 다니는 것만으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엄마가 회사에 가서 엄마가 참 대단해. (두 손가락 최고 그림)

엄마 다음부터 더 열심히 다니면 좋겠어요.

엄마, 하이팅 (두 주먹 불끈 그림)


이 편지를 받고 내가 어떻게 중도 포기를 할 수 있겠는가? 이 편지의 핵심은 그만두지 말고 잘 다니면 좋겠다는 것이 아닐까? 딸에게 '엄마가 회사에 다녀서 어떤지' 물어보니 좋기도 하지만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어져서 안 좋기도 하다고 대답한다. 그래도 얼굴 표정을 보니 전반적으로는 무탈하게 만족하는 듯하다.


딸이 엄마를 대견하게 생각하며 돌봄 교실에 있던 그 시간에, 회사에서 열심히 근무 중이던 제부에게 카톡으로 선물이 왔다. 레모나 먹고 힘내라고 박스로 선물을 보내준다. 그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워서 내내 마음이 찡하다. 여동생에게 제부는 뭘 좋아하냐고 내가 선물을 받아서 답례하고 싶다고 하니 아무것도 안 보내줘도 괜찮다고 한다. 며칠 전에 이미 형부(나의 남편)가 커피 쿠폰을 선물로 보내줬다면서 자기도 고맙다고 한다.


우리 자매와 함께 사는 남편들이 마치 둘이 약속이라도 한 듯 처제와 형수에게 선물을 보낸 것이다. 둘이 짰는지, 안 짰는지는 모르겠지만 둘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제부가 메시지를 이렇게 보내왔다. "처형, 복귀 축하해요. 화이팅"


여동생과 결혼한 제부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서로 존댓말을 하며 잘 지내고 있다. 아내의 언니에게도 이렇게 살갑게 응원의 말을 보내는데 여동생네 가족이 얼마나 알콩달콩 살아갈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딸, 제부에 이어 요즘 내 심기를 불편케 하지 않으려고 무진 노력을 하는 사람은 단연 남편이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다 받아주고 있다. 카톡으로도 심심치 않게 응원의 문구를 보내온다. 내가 적응에 너무 힘을 뺄까 봐, 못한다고 말할까 봐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잘해주는 것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조금 달리 생각해보기로 했다. 딸이 '다음부턴 더 열심히 다니면 좋겠다.'는 편지를 보내온 것처럼, 남편도 나를 묵묵히 지원하고 있다고.


바깥에 있는 요인을 극복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던 아쉬움과 서러움의 사슬을 잘 풀고 스스로 꼭 극복하고 싶었던 내면의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회사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상관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복직하고도 딱 십일이 흘렀다. 십일 내내 계속 다닐 수 있을까 불가능할까를 생각하며 보냈다. 우선 십일을 무사히 보냈으니, 이제 다음은 백일이다. 디데이 계산기를 이용해서 날짜까지 다 확인하고 동그라미를 크게 쳐두었다.


다른 사람의 백일을 축하하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때 가졌던 그 마음을 다시 꺼내서 나의 복직 후 백일을 축하해주고 싶다. 직장 건강검진도 받아야 하고, 차도 바꾸려고 한다. 아마 이런 식으로 나는 자연스레 인생의 파도를 따라 넘실넘실 살아갈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 인생에도 중요한 이벤트들이 다가올 것이고, 내 인생도 골골이 고비를 넘기며 꽤 연륜을 가진 어른으로 성숙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엄마 하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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