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란다.
복직 2주 차를 지나 보내며 습한 날씨 사이에서 오손도손 하게 보낸 우리 식구다. 방학 중에도 계속되는 방과 후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을 주문한다. 다음 주에 도시락 싸고, 아침저녁밥으로 먹을 식재료도 주문한다. 인터넷으로 이 모든 걸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마치 분신술이라도 부리듯 불 앞에 서서 지지고 볶아야 하는 요리를 모두 에어프라이어에서 하고 있다. 나 대신 뚝딱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는 기계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일요일 저녁이 되면 주말 여섯 끼니를 책임진 기계를 스팀 기능으로 청소한다.
세탁소에 맡겨둔 옷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몇 가지는 내가 직접 스팀다리미로 다린다. 이번에 새로 주문한 다리미이다. 예전에 쓰던 것은 '소형 가전 수거' 서비스로 버려야 할 텐데 다음 주에 시간이 날지 모르겠다. 조금 더 베란다에 둔다.
잘 마른 빨래를 개서 식구들 옷 서랍에 배달한다. 참하게 갤 때도 있고, 급할 땐 대충 겹쳐서 넣어두고 서랍을 닫는다. 안 보면 괜찮다. 시간을 아끼는 게 더 중요하다.
주말엔 우리 집 남자 둘끼리 복작거리기도 했고, 남매끼리 베란다에서 물놀이를 했으며, 내가 하루에 낮잠을 두 번 자기도 했다. 에어컨, 선풍기, 제습기를 껐다 켰다 하면서 이 날씨를 견뎠다. 지금은 모든 창문을 열어두고 여름밤의 서늘함을 느끼고 있다.
벌써 3주 차를 맞이한다. 두 번째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번지는 암울한 생각들을 떨쳐내고 싶어서 옷을 입고 숲으로 향했다. 씩씩하게 걸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마치 바람을 타고 내게 온 것처럼.
내가 나여서 좋다.
내가 나여서 다행이다.
이런저런 잡생각이 늘 많고 그렇게 떠오른 생각들이 곧장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의 꼬리에는 대체로 이런 문장이 늘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나여서 싫어.
내가 나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모든 잘못을 내게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모두에게 좋을 거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여전히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데에도 저절로 자신감 떨어지는, 자존감 갉아먹는 생각들이 피어오를 때가 있다. 그래도 자꾸 일으켜 세우는 자아를 발견한다. 그렇게 혼자 자빠지고 내가 나를 일으켜 세우며 계속 나은 방향으로 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고 기록한다.
아이들은 엄마가 속으로 이런 작업에 꽤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옛날엔 전혀 모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은연중에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내 존재 자체가 아이들에게 태양처럼 당연하고 귀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둘이 놀다가도, '엄마가 없으면 우리가 없어.'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렇게 저쪽 방에서 들려오는 대사가 나를 살게 한다.
다음 주 출근 준비도 중요하지만 내겐 이것도 중요하다. 아들이 지나가는 말로 '연두색 사과'를 먹고 싶다고 한 것을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남편과 저녁에 산책 삼아 마트에 걸어가서 사과를 사 오는 것 말이다. 아이들은 떼를 잘 쓰지 않는다. "이번엔 바나나만 사고, 다음에 연두색 사과 사줄게. 엄마 장바구니가 지금 무겁네."라고 하면 알겠다고 수긍한다. 그러니 지나가면서 가볍게 했던 약속을 모두 지키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부모님께서 내게 하셨던 말씀이 자꾸만 내가 하는 말과 겹쳐진다. 아이들과 무슨 과일 먹을지 이야기 나누고, 내가 가지런하게 깎아서 후식으로 내놓다 보면 어릴 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과일이 비싸다.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집이 많다. 이렇게 과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먹자."
그렇다. 나도 우리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다. 과일이 비싸다. 한 주먹 거리밖에 안 되는데 1만 원을 훌쩍 넘는다. 몇 종류를 담으면 장바구니는 1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그래도 밥 먹고 후식 달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과일 한쪽을 주고 싶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준비해주셨던 사각사각한 사과, 당시엔 고급 과일이었던 바나나, 여름에 원 없이 먹었던 복숭아까지... 아이들 입에 모두 넣어주고 싶다.
예쁘게 깎아서 한 입 크기로 쏙쏙 먹기 좋게 준비해주고 싶다.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이다. 다음 주 출근 준비도 마쳤고, 내일 먹을 사과도 미리 준비해두었다. 이렇게 워킹맘의 일요일 밤을 마무리한다.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똑같고 단지 시간을 돈 버는 곳에 많이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나를 잃지 않으려면 더 즐겁게, 더 간절하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 쓸 때의 나야말로 내 모습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글 쓰고 있을 때의 내가 나여서 참 좋다.
내가 나여서 좋다.
내가 글을 써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