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우리 집엔 방학숙제 마감기한이 있었다. 그 시간이 무서웠다. 개학 며칠 전에 아버지가 설정한 방학숙제 마감일까지 숙제를 마치지 않으면 혼이 났었다. 혼나지 않으려면 그날까지 모든 숙제를 마쳐야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어떤 날이 있었다. '탐구생활'이라고 하는 회색 책 속에 과일을 반 잘라서 그걸 보고 그림으로 그려야 하는 페이지가 있었는데 시간에 쫓기며 과일 씨앗을 그렸던 기억이 있다.
그 외에도 밀린 일기를 쓴다고 날짜만 쭉 써놓고 내용은 대충 지어내서 여러 날의 일기를 하루에 다 몰아서 썼던 기억도 있고, 문제집 몇 권 풀기 같은 숙제가 있던 방학에는 반 전체에서 나 혼자 그 문제집을 다 풀어오기도 했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만 있던 방학숙제 마감일은 그 위력이 참 대단했었다. 그날의 공포심이 지금껏 내게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고 보니 아버지가 나와 동생에게 심어주고 싶었던 '시간관념'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엔 참 두려운 날이었다. 숙제는 자고로 몇 개쯤 빠뜨려야 제 맛 아닌가 싶은 생각도 못 하고 성장기를 겪었다. 그렇게 성장한 나는 우리 집 남매의 방학 숙제를 봐주는데도 또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내일이 아이들 개학날이다. 방학과 동시에 내가 복직을 했고, 그렇게 약 한 달 여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첫째가 숙제하는 매무새를 보면 놀라울 때가 있다. 꼼꼼한 성미, 야무진 챙김새가 기특하다. 둘째는 그에 반해 '자유인'이라는 별칭을 붙여주고 싶을 만큼 숙제 따위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그래도 둘 모두 하기로 한 날에는 새벽에도 벌떡 일어나서 숙제장을 먼저 펼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장하기도 하다.
내가 '숙제하라'는 말을 늘어놓은 것도 부정할 순 없지만, 아이들도 자기들 나름대로 마감기한을 만들어두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얼마나 장한지 모른다. 내가 아이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아니면 복직 후 아이들이 더 의젓해진 것인지, 하여튼 요즘 내가 보는 우리 집 남매는 참으로 기특하기가 그지없다.
아이들이 커서 무슨 일을 하든, 그들만의 '마감기한'이 꼭 있을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 설정한 날짜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나처럼 회사를 다녀서 그에 맞는 규칙이 생길 수도 있다. 양쪽 무엇이 되든 '시간관념'을 잘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보다가 건물이나 땅문서 같은 것은 없어서 줄 수 없지만, 대신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꿈을 잃지 않는 것'과 '스스로 시간을 정해두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것은 얼마든지 물려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한때는 나도 물질적인 것으로 물려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에 좌절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내겐 그것 말고도 여전히 세상을 그윽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태도와 관점'이 있다고 믿는다.
아버지는 우리 자매에게 방학 숙제를 제때 해야 한다는 시간관념과 책임의식을 물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 덕분에 나는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지나가며 하신 가벼운 숙제 발언을 놓치지 않고, 반 전체에서 혼자 과제를 해간 적이 있다. 그렇게 잘 듣고 규칙과 정해진 숙제를 잘 해내는 것에 특화되어 살아왔다. 그랬기에 무탈하게 이루어낸 것도 많지만, 나는 한 번도 삐딱선을 타고 반항하거나 이의를 제기해본 적이 없는 듯하다.
거기에서 오는 아쉬움도 나이 들수록 선명해진다. 더 어릴 때 더 막살아볼 걸...
아이들이 내 품에 있을 때 모든 실패를 다 해봤으면 좋겠다. 규칙에 정해진대로 딱딱 맞춰가며 사느라 그들의 젊고 싱그러운 날을 얽매인 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품, 아빠품 안에서 반항도, 좌절도, 도전도, 실패도 모두 다 맛봤으면 좋겠다. 나도 같이 울고 웃고 달리고 날며 그 발자국에 함께하고 싶다.
나는 정도를 걷느라 딴 길은 잘 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 때늦게 사춘기를 앓느라 아주 고생을 했다. 그리고 다시 정직하고 바른 길을 걷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우리 아이들은 내 품에서 모든 것을 다 해보길 바라며, 그 모든 널뜀을 받아낼 수 있게 나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보고 싶다. 내가 이만치 어른이 되는 동안 내 생각에는 꽤 바르고 올바른 길만 걸어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모님은 그리 생각지 않으실 수도 있다. 부모님이 눈감아 주신 꽤 많은 부분을 잊지 말고, 내가 아이 둘을 기르며 그들이 빗나가고 엇나갈 길에 대해서 포용심과 관용심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
내일부터는 아이들의 2학기 생활이 시작된다. 내 직장생활도 어느덧 복직 후 한 달을 맞이한다. 나는 이제 누가 뭐래도 '직장인'이다. 얼마 전 출간된 책을 회사에 신고했다. 그렇게 나는 '직장인'이면서도 동시에 '작가'인 사람으로 정체성을 굳혀나가고 있다. 이렇게 두 개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 여러 곳에서 많은 실패를 해봤다. 장황한 실패 끝엔 언제나 정직한 열매가 맺히는 걸까?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과 실패가 함께 하는 것이 좋은 것이리라.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자식의 꾸준한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품 안에 있을 때 수많은 도전을 망설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도전을 두려워했던 나의 젊은 날이 떠오른다.
그 두려움의 대가를 나이 들어 치렀다.
아이들은 먼저 그 터널을 뚫고 지나가길.
그들의 삶이 도전과 용기로 가득 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