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이야기를 브런치에 글로 쓰면 생기는 일

모든 것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by 바이올렛


2019년 10월 8일, 지금으로부터 3년여 전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글을 쓰면 책으로 만들어주는 멋진 공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신청해서 감사하게도 기회를 얻었다. 그때부터 쭉 되든 안되든 뭐라도 글을 적으며 살아왔다. 브런치에는 사진을 올리고, 좀 긴 내용의 글에다가 조금 괜찮은 제목을 붙이면 검색엔진 다음의 메인화면에 글을 띄워준다. 그러면 단숨에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갑자기 작은 구멍가게와 같던 나의 브런치 공간은 많은 인파를 감당해야 하는 색다른 공간으로 변신한다.


브런치 알람에는 조회수 1000이 되었다, 2000이 되었다, 1만, 3만, 5만, 10만을 돌파했다는 메시지가 뜬다. 동시에 구독자 수도 조금 늘어나고, 댓글도 달린다. 나는 누구에게 동정심을 얻고자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가정사를 드러내고 있는 나의 글로 돈벌이를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느꼈던 고단했던 감정과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글을 쓰며 결을 좀 가다듬고 싶은 것뿐이다. 나에겐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조회수가 올라가면 우선 가슴이 벌렁거린다. '이러다가 나 유명해지는 거 아니야?' 라거나, '출판사에서 연락 오는 거 아니야?' 라거나, '내가 글을 좀 잘 썼나?' 하는 생각으로까지 연결된다. 그러다 보면 마음은 팔랑팔랑 거려 지고 평범하던 내 일상도 괜히 둥실 떠올라서 주방일을 하다가 놓치는 것도 생기고 멍하게 먼산 바라보는 경우도 생긴다. 즐거운 상상이 현실을 꼭 야무지게 만들어주진 않는가 보다.


더불어 내가 감당해야 할 또 다른 것이 있다. 바로 악플이다. 뭐 굳이 나를 공격하거나 내 글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아니더라도 나와 가치관이 같지 않거나 글 밖의 우리 집 사정, 내 사정을 잘 모르고 훈수 두는 댓글을 볼 때는 나도 뒷목이 뻐근해진다. 댓글을 받은 후 다시 답글을 적지는 않는다. 시간과 기운이 없고 내 호불호에 따라 누구에게는 달고 누구에게는 달지 않고 하는 것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댓글로는 소통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상태다. 그래 놓고 댓글 쓰기 기능을 닫지 않은 것은 모순이긴 하다. 독자의 반응이 궁금하긴 하기에 이 모순을 용납하는 중이다.




예전에 나는 아버지 직장에서 제공되는 관사에서 살았다. 여러 곳으로 이동하며 살아가야만 했던 우리 식구는 산골에서도 살고, 바닷가 마을에서도 살았다. 가는 곳마다 여건은 열악했고 어떤 지역에선 툭하면 정전이 되기도 했다. 우리 집엔 꽤 손길이 잘 닿는 거실의 한편에 양초와 성냥개비를 두는 공간이 있었다. 정전이 되었다 하면 엄마는 얼른 그곳으로 달려가서 촛불에 불을 밝히셨다. 어릴 적의 나는 정전되는 것이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그저 촛불 앞으로 가서 하던 일을 계속할 뿐이었다.


요즘은 세월이 좋아져서 정전 같은 건 근 20년 내로는 겪어보지 못했다. 그런 건 정말이지 요즘 같은 시대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엔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져 버리는 정전에 대한 기억이 분명히 살아있다. 무심한 듯 촛불을 켜고, 촛불 근처로 모여들던 가족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때는 불빛이 작기 때문에 뭔가 활동이 큰 일은 못했다. 그저 불빛이 허락하는 만큼의 공간만이 사용할 수 있는 구역이었다.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은 꼭 우리 집이 아닌 듯 여겼다. 어둠은 평온함을 집어삼키고 어린 시절의 내게 무서움을 주었다.


더구나 촛불은 살아서 움직였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일렁일렁 움직이면서 '내가 살아있으니 조심해라.' 하는 듯했다. 엄마는 집에서 초를 가지고 불장난을 하면 그날 밤엔 오줌을 싼다면서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하셨다. 정말로 그랬다. 엄마 몰래 촛불에 불을 붙이던 날엔 밤에 이불에 지도를 그렸었다. 그러니 정전이 되어 촛불이 일렁이고 있을 때 나와 동생은 행동도 조심조심히 했고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어디에 옮겨 붙지 않도록 더 주의해야 했다.


갑자기 왜 정전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따금 정전이 되는 것처럼 내 주위가 어두워졌으면 좋겠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내 생일날 너무 많은 축하를 받아서 살짝 쑥스러운 마음이 들 때라던가, 너무 많은 사람 앞에서 주목을 받아서 그 관심도가 조금 줄어들면 좋겠다고 여겨진다거나, 온라인에서 벌떼같이 달려들어 나에게 조금 톡 쏘는 말로 댓글을 다는 누군가가 있을 땐, 내가 가진 다른 것을 포기할 테니 나를 좀 내버려 둬 달란 말이 막 하고 싶어 진다.


요즘은 타의에 의해 형광등이 나가고 촛불을 꺼내야 하는 상황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내 마음엔 양초 하나쯤 준비해둬야겠다. 예기치 않게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오거나 하도 단단히 꼬여서 풀 방법이 없는 일 같은 것이 가슴속에 돌덩이처럼 들어앉아 있을 땐, 자의로 온 마음속의 불을 끄고 대신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마음속 촛불 하나 탁 켜 두고 싶다. 그러면 내가 보고 싶은 만큼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만, 나를 온전히 위로하고 평온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나고 딱 거기까지가 내 마음 영역인 듯 여겨보고 싶다.


나와 남편의 직장은 서로 뚝 떨어져 있다. 나의 직장 근처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틀며 살아가고 있고, 남편은 새벽에 출발하여 먼 거리를 출퇴근하며 지낸다. 새벽바람맞으며 출근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 나는 더 아이들을 다부지게 키우고 내 마음도 굳건히 하고 싶어 진다. 그러니 새벽 6시의 알람을 듣고 벌떡 일어날 수 있고 늦게 퇴근해오는 남편 대신 아이들을 온전히 돌보고 재우는 것까지 기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글의 한 조각을 본 사람들은 우리 집의 이런 사정은 모른다. 그저 미련한 한 명의 여자가 고생을 사서 하는 것으로 볼 것이다. 그 집 남편은 도대체 어디에서 뭘 하고 있길래 엄마 혼자 종종거리는 것이냐면서 걱정 반 훈수반 두고 싶은 마음에 사로 잡힐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내가 꾸준히 글을 쓰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나는 나를 잘 지켜가며 독자들의 대세 평을 가볍게 보지 말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쓰고 싶은 글과 잘 읽히는 글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이다.


직장에서도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 좋을지, 최대한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기는 것이 좋을지 잘 판단해야 할 것이다.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몇 권의 책을 출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밝은 빛과 같은 글로 멀리서나마 손길을 주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워킹맘의 이야기를 브런치에 꾸준히 남기고 있다. 이건 순전히 브런치와 다음에서 만들어준 합작품의 결과다. 복직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선플이 줄줄이 달린 것을 보고 일일이 답글을 못 드렸지만 내가 최선의 워킹맘 시절을 보내고 그 경험을 소상하게 기록하는 것이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워킹맘의 삶과 브런치에 써둔 글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흘러가고 있다. 오늘은 복직 후 두 번째 달을 맞이하는 주말 밤이다. 글을 쓰다 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자야겠다. 이번 주말은 유난히 행복했다. 온라인 속 댓글에 악플이 달리는 것과 상관없이 오프라인에서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달달했다. 아들이 어디에서 '달달하다'는 말을 배워왔다. 아들의 입에서 '달달하다'는 말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사탕을 먹지 않아도 인생은 달다는 것을 아이가 알아채길 바란다.


keyword
이전 20화내가 아이들을 재우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