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털 난 날

음식 1인분에 양심을 팔다.

by 바이올렛

돌봄교실에서 아이를 찾아서 나오다가 같은 시간에 하교하는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났다. 서로 가볍게 목례를 하다가 딸의 성화에 못이겨 핸드폰 번호를 주고 받았다. 딸은 자신의 친구 엄마들과 내가 친하게 지내기를 내심 바란다. 나보고 자꾸만 폰 번호 교환하고 이야기 좀 나누라고 얼마나 다그치는지 모른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처음 만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과도 곧잘 대화를 시작한다.


보통은 아이 무슨 학원 보내냐, 학교 적응 잘 하냐, 친구 관계는 어떠냐와 같은 대화를 하는데 이번엔 어디 외식하기 좋은 곳이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내가 청해봤다. 그랬더니 소금구이 닭갈비집 하나를 알려주셨다. 그리고 덧붙여서 인원수에 맞게 주문하면 추가로 1인분을 서비스로 준다는 소소한 팁도 얻었고, 그럴땐 초등학교 1학년인 딸내미를 유치원생이라고 하면 된다는 말도 들었다.


아이들이 외식하고 싶다고 했던 어느 날 저녁, 남편 없이 나와 아이 둘 이렇게 셋만 추천받은 닭갈비집으로 향했다. 무심히 듣고 넘겼던 머릿수대로 시키면 1인분을 더 준다는 말이 생각났던 나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종용하는 엄마로 변신했다. 아들은 초등학생이고, 딸은 유치원생이라고 할 거니까 너희들은 입을 꾹 다물고 엄마가 주문할 때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다. 말을 하면서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내 양심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아들은 그렇게 거짓말을 하면 성공하지 못한다면서 나를 꾸짖었다. 딸은 1인분 더 먹는 것에 탐이 났는지 엄마 말대로 하자고 했다. 나는 그렇게 아웅다웅하는 남매를 데리고 음식점에 들어갔다. 막상 나도 심장이 쿵쾅거려 제대로 주문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마치 내 안의 녹음기가 일을 하듯, 나는 유유히 딸이 유치원생이니 2인분을 시키겠다고 했다. 그러자 서비스로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고르라고 직원이 이야기했다. 나는 무엇 하나를 고르고 붉어지는 얼굴을 서둘러 덤덤히 만들었다.


주문받던 직원이 자리를 비우자 그때부터 아들은 엄마 그렇게 거짓말 하면 큰일난다면서 난리였다. 딸은 얼굴에 거짓말하다가 들킨 사람이 짓는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아이둘에게 몹쓸짓을 했다는 것을 느꼈다. 음식 1인분 가격에다가 양심을 내다 팔았다가 자식 앞에서 몹시 부끄러운 엄마가 되는 순간이었다. 음식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익었는지도 모르고 서둘러 아이들 앞접시에 고기를 잘라 주고 나는 먹는둥 마는둥하고는 나왔다.


음식점에서 나오자마자 아들이 말했다. 나중에 이 음식점에 다시 찾아가서 '사실은 거짓말이었다고, 내 딸은 초등학교 1학년생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거짓말한 것이 들통나서 경찰이 잡으러 온다는 거다. 순수한 1,2학년 아이들 앞에서 엄마는 양심을 내다 팔고 마음 복구가 잘 안되었다. 스스로 부끄러웠다. 아무리 친구 엄마가 이렇게 하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뒷좌석에 앉은 딸에게 엄마가 직원에게 우리 딸이 유치원생이라고 말할 때 마음이 어땠냐고 물으니 '부끄러웠다'고 답하는 딸, '그렇게 거짓말하면 엄마 경찰서에 잡혀 간다'고 말하는 아들. 아이들에겐 정직하고 바르게 자라야 한다고 했으면서 나는 왜 그랬을까?


아마 다시는 그 집에 못 갈 것 같다. 음식이 무슨 맛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고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주인과 눈이 마주치면 내 마음이 들킬까봐 눈길을 돌리며 빠르게 먹기만 하던 내 모습이 떳떳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엔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남매에게 소프트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사주었다. 그리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엄마가 거짓말을 해서 아이들까지 조마조마하게 만들어서. 아들은 내내 혼자서 궁시렁 거리면서 엄마 그러면 안된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살면서 이런저런 거짓말을 하고 싶은 때가 생긴다. 남을 배려한다는 명목, 내가 그 거짓말을 통해서 이득을 얻을 것이 훤히 보일 때, 그냥 분위기에 이끌려서 어쩔 수 없이 등등 수없이 많은 이유가 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이유는 명확하다. 믿음 없이 이 사회는 지탱될 수 없다는 것, 믿음 없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닭갈비집의 교훈을 잊지 않아야겠다. 아이 둘이 나를 보며 자란다. 얼굴에 그늘이 진 날, 괜히 짜증을 부리는 날, 의기소침하지만 티내고 싶지 않은 날까지 아이들은 내 감정을 흡수하며 자란다. 솔직과 거짓을 딱 갈라 경계선을 만들기 어려운 때도 있다. 그래도 나만의 큰 줄기는 가지고 살려고 한다. 내가 나에게 솔직할 것, 내 결정에 자신을 가질 것,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나의 소신을 잃지 말 것.


이 큰 줄기를 지키며 살기 위해선 결국 '믿음'이 필요하고, '양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펼쳐보일 대상은 사실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요즘은 내가 나에게 묻고 싶다.


잘 살고 있니?

자신감 가지고 있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믿고 있지?

나 자신을 믿는거지?

누구보다 나를 믿길 바라.


그렇게 나를 믿으며, 나도 세상의 기준을 믿고, 타인도 나를 믿을 수 있게끔 살아가고 싶다.

거짓말 한 번에 얼굴이 붉어졌던 그 닭갈비집의 뜨거운 숯불 기운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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