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다녀요.

아이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by 바이올렛


2학기 학부모 상담주간이 진행 중이다. 큰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전화 상담을 했다. 이어폰을 꽂은 채 대화하며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메모했다.




준이는 제가 믿고, 고맙고, 사랑하는 아이예요. '이래서 교사하는구나'라는 마음이 들게 해요. 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요.


아이가 문장 완성 검사에 적은 문장들이 참 특별해요. "학교에서" 다음에 이어지는 말로 "공감을 한다."라고 적었어요. "친구들이" 다음에 이어지는 말로는 "나한테 사랑을 준다."라고 적었고, "나도 친구들에게 사랑을 준다."라고 해요. 행복이 충만한 아이예요. "가족은" 다음에는 "좋다."라고 썼어요.


아이가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다녀요. 특히 친구들을 잘 도와줘요. 친구의 일기장에도 자주 등장하고, 친구가 자기 모둠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게 이끌어줬어요. 친구 엄마가 준이에게 무척 고마워하고 있어요. 친구들도 준이를 잘 따르고 수업 분위기를 좋게 주도하는 학생이에요.


규칙을 잘 지키고, 눈을 보며 공감을 잘해서, 제가 수업 진행하며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의지가 될 정도였어요. 아이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표현력이 아주 풍부한 분을 큰 아이의 담임 선생님으로 맞게 되었다. 30분가량 통화하며 내 마음에도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선생님께서 상기된 어조로 아이의 인성에 대한 칭찬과 덕담을 하시는데 나도 같이 들뜨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하시는 말씀을 아이가 잊지 않고 기억해두었다가 나에게 얘기했던 사례를 이야기하며 우리 아이가 이만큼 훌륭하다고, 나도 이만큼 우수한 학부모라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렇게 2학기 학부모 상담이 끝났다. 어쩌면 올해의 담임선생님은 모든 학부모들에게 이렇게 사랑과 관심을 담아 칭찬하는 말씀으로 대화를 이어가시는 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엔 '혹시 우리 아이가 조금 특별한 멋쟁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순 없다.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 것만큼 팔불출이 없다. 태어난 대로, 자기가 생긴 대로 살아가는 팔자일 텐데 부모의 가르침이 얼마나 아이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아이에게 흠이 될 만한 행동이라도 좀 줄여보자 싶어 진다. 내가 대단한 무언가를 물려주고 가르쳐야만 아이의 인생이 활짝 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아이의 인생보다 부모의 인생 자체를 올곧게 이어가는 것이 더 나은지도 모른다. 어른 인생 하나 반듯하게 살아가는 것도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집도 다른 집과 똑같다. 모래 놀이를 하고 들어와서 흙이 우수수 떨어지는 옷을 제발 좀 화장실에서 벗자고 큰소리를 치기도 하고, 툭하면 식탁 아래로 흘리는 음식을 닦으며 제발 의젓하게 식사하자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먹고, 씻고, 숙제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에 사용하지만 아주 가끔, 짧은 시간이라도 나의 심장박동을 공유하려고 한다. 아무 대사 없이 아이와 나의 심장을 맞닿게 안아서 잠시 동안 멈추어서 등을 쓰다듬는다.


그때 아이는 나의 냄새를 맡을 것이고, 내 몸의 몰랑몰랑한 촉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면 귀로도 엄마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간직했다가 이따금 힘든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훗날에 다시금 꺼내서 아픈 현실을 이겨내는 연료로 사용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명상하듯, 아이를 안아준다. 그게 내가 주는 조금 특별한 사랑이다.




학교 다니던 내내 흠잡을 데 없는 학생이었다. 반항을 할 줄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선생님과 부모님 말씀을 듣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학생의 본분인 공부에 집중하고 딴짓을 하지 않은 덕에 나는 큰 고생 없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안정적인 직장과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스펙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아이 둘을 낳고 사회적 신분을 벗어놓고 나서야, 심각한 방황을 시작했다.


그 방황의 깊이가 너무 깊어서 나는 어디까지가 허용 한계선인지를 잊은 채 몹시 멀리까지 나가서 새로운 모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서 정규 트랙에서 벗어나 살았던 과거의 나를 바라본다. 한몇 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다시 해보라면 못할 것 같다. 인생을 건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모험을 마흔이 다 되어서야 한 것이다. 참 빠르기도 하다.


선생님께 칭찬을 받는 아홉 살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 선생님 말씀, 부모님 말씀이 곧 하늘인 줄 알고 규칙 하나 어기지 않으려고 너무 애쓰는 건 아닐까? 친구를 많이 도와주라는 엄마의 말이 법인 줄 알고, 혹여나 자신의 마음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희생의 아이콘으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한 가지 믿는 구석이 있다면, 늘 그래 왔듯 아이는 나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리석음의 정도가 지나쳤던 나처럼은 아닐거라고.


내가 인생의 절반쯤 와서 깨닫고 뉘우치고 시도해본 것들을 아이는 내 품 안에서 다 해봤으면 좋겠다. 내가 다 받아줄 터이니 아이가 해보고 싶은 것, 실패라고 부를 만한 경험들을 많이 쌓아보고 세상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내 품에 있을 때 넘어지는 것을 보는 게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한 번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바들바들 떨며 어른이 되는 것만은 말리고 싶다. 내가 그렇게 해봤는데 그리 추천할 만한 모습은 아니었다고 느낀다.


담임 선생님, 돌봄 교실 선생님, 방과 후 선생님, 태권도 관장님까지 아이를 칭찬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시는 분들이 많다. 칭찬의 맛은 짜릿하다. 그 맛에 중독되어 자신의 삶을 복종과 체념으로 채우지 않길 바란다. 아이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주체적이고, 창의적이길 바란다. 누가 칭찬해주어서,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일보다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해보면 재미있고 의미 있을 것 같아서' 하는 일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아들과 딸이 그런 아이들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내가 먼저 그렇게 살아본다. 최대한 주체적으로, 비록 마흔에 들어선 엄마이지만 최대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행복을 찾아가며 하루를 꽉 채워본다. 결국 내 삶을 잘 사는 것으로써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본보기를 물려주고 싶다. 그래서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내실을 다져나가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꽉 채워 글을 쓰며 종이를 채우고 마음을 채우며 나는 하루만큼 더 성장을 꿈꾼다. 이것은 아이의 성장 못지않은 중요한 성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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