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맛 삶, 순한 맛 육아, 순한 맛 숙면
"엄마, 오빠 또 꿀잠 자요."
아들은 잠을 아주 달게 잔다. 깊이, 푹, 오래 잘 잔다. 딸은 오빠에 비해서는 잠이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우리 집 아이 둘은 웬만하면 밤 9시 이전에 꿈나라로 향한다. 딸이 옆에 누워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엄마, 잠이 아주 솔솔 와요."
그러곤 정말로 꿈나라행 직행열차를 탔다. 오늘은 아이들 재우는 법에 대해서 글을 써봐야겠다. 처음엔 뭘 이런 걸 가지고 글까지 남겨두나 싶어서 유난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해 떨어지면 자는 게 당연하지, 무슨 대단한 노하우라고 동네방네 자랑하는 것만 같아서 자세히 글로 쓰기가 민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꽤 많은 집에서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싶어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된 후부터는 우리 집 남매의 꿀잠에 대해서 좀 차근히 써봐야겠다 싶어졌다.
육아에 있어 무던한 편이고 학업 성적에 욕심이 많이 나지도 않는다. 그런 내가 욕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따로 있는데, 그건 바로 아이들이 순한 맛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순한 맛 인생'이 뭘까? 소비를 통해 행복을 찾지 않는 것, 물질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않는 것, 나의 눈으로 보고 느끼며 총명하게 살아가는 것, 머리보다 마음이 더 강한 힘을 가지며 사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순한 맛 인생'이다.
이건 내 삶의 철학 같은 것이라 우리 집 물건 몇 가지에도 영향을 끼쳤다. 혼수 용품으로 장만한 커다란 냉장고를 헐값에 처분하고, 굳이 작은 크기의 냉장고를 사서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몇 년을 사용해보니 나는 미로 찾기 같은 곤란한 상황이 생기는 대형 냉장고가 나의 살림 스타일에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음식 만드는 손이 작은 나는 며칠 이내로 먹을 것만 장을 보고, 오래 묵혀두지 않은 신선한 음식들을 바로바로 해 먹는 것을 좋아한다.
여동생이 결혼 선물로 사준 TV도 눈물을 머금고 처분했다. 물론 스마트폰과 태블릿 피씨로 유튜브의 바다에 빠져서 살 때도 있지만 적어도 거실을 제 집인 듯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TV를 정리한 것도 우리 집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이들은 내가 미리 안전성을 확인한 콘텐츠만 주말에 1시간씩 시간을 정해서 보여주고 있다.
집에 TV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집은 약간 원시인 문화 같은 것이 만들어진다. 요즘 최신 유행하는 드라마를 잘 모르고, 광고를 보지 않으니 뭐가 가장 인기 있는 소비재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참 속 편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예전에 결혼 전 친정식구들과 살 때는 홈쇼핑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종류의 물건들, 음식들을 나도 모르게 홀린 듯 주문해본 적이 여러 번이다. 아이들도 물건을 사달라고 떼를 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일찍 잘 재우는 것과 냉장고, TV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우리 식구를 관통하는 라이프 스타일은 마치 바늘 하나에 실 하나를 꿴 듯 하나의 맥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일찍 자려면 저녁밥도 일찍 먹어야 한다. 4시부터는 곧 저녁밥 할 시간이구나 하고 생각해두었다가, 5시에 아이들을 씻기고, 5시 반쯤 바로 밥 먹을 수 있게 준비한다. 내가 매 끼니 진수성찬을 만들지 않아도 갓 만든 반찬 한두 가지로도 아이들은 너무나 흡족하게 밥을 잘 먹는다. 그 점이 너무 고맙다. 그 밥엔 내 사랑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니까 내 요리 실력에 크게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괜찮다.
물론 저녁밥상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먹다가 싸우기도 하고, 음식을 엎지르기도 하고, 먹다가 바닥에 흘리기도 하고, 거실 한 바퀴를 돌고 오기도 한다. 아이 둘과 내가 머리 맞대고 먹다가 셋 중 하나가 폭발하기도 하고, 그중 둘이 거품을 물기도 하고, 셋 다 자기 이야기만 하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 집의 저녁밥상은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난다. 그럼 아이들은 1번, 손 비누 -> 2번, 치카를 한다. 다 한 후에는 한가롭게 논다.
저녁 7시 반, 늦어도 8시경에는 나도 설거지를 마친다. 그전에 미리 아이들은 자기들 방에 베개 3개를 나란히 벽에 세워둔다. 가운데엔 내가 앉고, 양 옆엔 남매가 앉는다. 요즘 한참 빠져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준다. 매일 밤 셋이서 그리스 로마로 여행을 떠나는 그 재미가 쏠쏠하다. 유치원 때까지는 책을 읽어달라고 해도 내가 바빠서 많이 못 읽어줬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더 많이 읽어주고 있다. 책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 나누고, 내 목소리로 읽어주면서 내 마음에도 따뜻한 기쁨이 느껴지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매일 읽을 분량을 함께 정하고, 다 읽고 나면 셋이 같이 눕는다. 그럼 꼭 강아지들처럼 내 품을 파고든다. 그렇게 우리 셋은 또 옹기종기 붙어서 온기를 나눈다. 아들의 머리카락이 까슬까슬한 것이 좋고, 딸이 아직도 아기 냄새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그렇게 아이 둘을 재워놓고 나오면 밤 9시가 넘는다. 그 시간이 진정한 나의 퇴근시간이다.
사무실에선 매일같이 칼퇴근을 한다. 내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이 기업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그렇게 가슴 두근거리며 퇴근도 못하던 과거의 나를 뒤로하고, 밝게 인사하며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퇴근한다. 부리나케 아이들의 돌봄 교실로 향하고, 둘을 차에 태워 집으로 온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출근을 한다.
아침에 한 번, 초저녁 무렵에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을 출근하면서 나는 회사에도, 육아에도 최선을 다한다. 맨날 뭘 그렇게 최선을 다하며 사는가 싶기도 한데 그게 나의 숙명 같다. 그러니 밤에 쌔근쌔근 잠든 아이들을 보면 그저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일찍 잘 자 주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밤 9시 이후의 시간이 허락된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러면 그 귀한 시간에 가장 쓰고 싶었던 글을 쓴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글을 쓰며 깨닫는다. 나도 생각이 있지, 나도 마음이 있어라고 조용히 되뇌는 것처럼.
첫째가 갓난아기일 때 모유수유에 아주 애를 먹었었다. 처음부터 분유와 혼합수유를 했더니만 아이는 분유병만 찾았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고 건강에도 좋은 모유를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어서 모유수유 전문가를 찾아서 마사지도 받고, 유축기도 최고급으로 구입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었다. 그때부터였다. 젖을 잘 먹이는 것만큼, 잠을 깊게 잘 자게 하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걸 느꼈다. 잘 자야 잘 먹고, 잘 먹어야 잘 잤다.
그래서 첫째가 태어나고부터는 밤에 불을 켜지 않고 어두컴컴하게 해 떨어지는 것과 함께 아이를 재우려고 노력했다. 밤에는 거의 불을 켜지 않고 아이를 일찍 재웠다. 그때는 내 육아스타일이 너무 고전적인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렇게 한지 9년 여가 흐르자 이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이들에겐 잘 익은 듯싶다.
아이들에게 뭘 더 해줄까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 가족의 삶에서 뭘 빼면 더 편안하고 간결해질까 역시 자주 궁리하는 편이다. 내가 핸드폰을 덜 보는 것, 밖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와선 아이들에게 무심하고 귀찮다는 듯 대하지 않는 것, 아이들의 마음을 플라스틱 장난감으로 얻으려 하지 않는 것, 나는 이런 것을 염두에 두며 내 삶 자체를 간소화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그렇게 헐렁해진 우리 가족의 삶 사이로 꿀잠이 많이 파고들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9시를 기점으로 꿈나라로 간다. 나도 꼭 필요한 것만 하고 똑같이 꿈나라로 향해야겠다. 이따금 내가 아이들을 키우며 정말로 해보고 싶은 것이 뭘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아이들이 나보다 매사에, 모든 면에 있어서 더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유난히 예민하고 피곤할 때에만 그것이 잘 안 보인다. 내 목소리가 커지고, 핏대를 세우는 때도 생긴다. 아이들이 가진 그 자체의 생동감과 활기를 더 많이 이끌어주고 싶다.
오늘은 내 말 한마디로 딸이 펑펑 울어버렸다. 오빠와 둘이 투닥거리다가 자기가 새로 산 배드민턴 채를 바닥에 탕탕 쳐서 테두리가 까져버렸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쏙 빼고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엄마한테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혼이 날까 봐 말을 못 했다고 하면서 대성통곡을 했다. 나는 아이에게 스스로 솔직하게 털어놓고 엄마에게 마음을 열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이는 그렇게 한바탕 울고나더니 이내 기분을 되찾았다.
솔직한 마음, 대범한 마음을 내는 법을 아이를 보며 배운다. 오늘 이 글은 '우리 집 아이들 이렇게 잘 잔다.'는 자랑이 아니길 바란다. 학원도 안 보내고, 집에서 시키는 학습지도 없고, 태블릿 피씨로 별다른 공부도 시키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해맑게 웃고 놀고 먹고 자는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다는 걸 써두고 싶었다.
요만한 아이들 키우는 엄마들에게, 아빠들에게, 이런 부모도 있으니 그들이 가진 저마다의 육아관, 인생관, 가치관에 대해서도 한 번씩 생각해보고 보다 굳건히 이어갈 힘을 함께 길러보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뿐이다.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해 부모로 살고 있으니 작은 내 목소리 하나도 '부모의 말'이라는 테두리를 둘러쓰면 마음 찡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매번 글을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