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주말 풍경

복직 4주 차 주말

by 바이올렛




여름방학과 함께 시작한 나의 직장일은 어느덧 4주 차에 접어들었다. 새벽 6시에 알람이 울리면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서 쌀을 씻어 밥을 안치던 생활도 막바지를 향해간다. 복직을 앞두고 도시락 반찬용으로 냉동식품 몇 가지를 샀었다. 떡갈비, 납작 불고기, 치킨너겟. 내가 집에 있을 때는 거의 사본 적이 없는 아이템들이다. 불 앞에서 지지고 볶는 요리를 잘 못하고, 자주 안 해도 괜찮으니 아이들에게 최대한 자연식품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도시락에 두부 삶은 것을 넣을 순 없었다. (어느 날 두부 삶은 것을 주니 남편이 우리 집에 누가 출소한 사람이 있냐고 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냉동식품 여러 봉지를 샀다.


한쪽엔 김치, 한쪽엔 김자반, 멸치, 진미채 등 마른반찬을, 그리고 나머지 한 칸에 돌아가면서 고기를 가장한 냉동식품류를 넣어주었다. 다른 친구들은 소시지 반찬을 자주 싸오더라며 해달라고 하길래 물에 삶아서 넣어준 적이 있다. 그렇게 공사다망했던 워킹맘의 도시락 싸기는 마무리되어간다.




나는 요리에 큰 취미가 없다. 그저 내가 잘하는 것이라곤 밥때에 맞춰서 최대한 자연식으로 영양가 있는 먹을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요리하는 손도 작아서 넘칠 만큼 많이 하지도 않고, 딱 한 끼에 먹고 끝날만큼만 만들어 깔끔하게 치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밑반찬을 미리 넉넉하게 만들어놓고 두고두고 먹은 적은 별로 없다. 물론 할 줄 아는 반찬이 몇 가지 없기도 하다. 한 번은 아이들 어린이집 소풍 때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는데 인터넷을 보고 '아기 김밥'을 쌌더니 옆구리가 죄다 터져서 참으로 민망했던 적이 있다.


하나 더 실토하자면 어린이 김밥 말고, '어른 김밥'을 싸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아가씨 때 엄마가 하시는 것을 거들어보기는 했는데 내가 결혼하고 나서 가족을 위해서 김밥을 말아본 적이 없다. 상상만 해도 김밥 옆구리 터지는 장면이 그려지고 그 많은 재료들을 다듬다가 왠지 화가 나버릴 것 같다. 그런 내가 오늘 난생처음 장조림을 만들어봤다. 이유는 딸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친정 엄마가 만들어주신 반찬을 야무지게 먹거나, 바쁠 때는 마트에서 파는 시판 장조림을 사본 적이 있다. 딸은 엄마의 요리 솜씨와 상관없이 식욕이 왕성하고 뭐든지 잘 먹는 편인데, 나에게 '장조림'을 만들어달라고 주문을 걸어왔다. (아이고야,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데!) 우선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번 인터넷 장보기 때 '소고기 홍두깨살'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어제 배달이 왔고, 오늘 만들어서 먹었다. 맛은 처음 만든 것치곤 대성공이다^^. 나는 내 요리에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다. 결혼 초 남편이 제발 양념 좀 넉넉하게 넣어서 우리 집도 '단짠단짠'으로 먹자고 했지만 나는 심심한 요리가 건강에 좋은 거라며 큰소리를 땅땅 쳤었다. 그 덕에 남편은 결혼 후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요리를 심심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내 덕이라고 생각한다.


어젯밤에는 '내일은 장조림 만들어야지.' 생각하면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소고기 핏물을 빼고 물을 끓여 고기를 집어넣고 불순물을 제거했다. 애벌로 끓인 물은 모두 버리고 사과, 양파, 파, 마늘을 넣고 본격적으로 육수를 만들었다. 고기를 넣고 팔팔 끓인 육수를 따로 모아두었다. 동시에 양념을 만들었다. 간장, 설탕, 올리고당을 넣어 육수와 함께 팔팔 끓이고 고기도 함께 넣었다. 이번에는 고기를 잘게 자르고 찢어서 넣었다. 잘 찢어지지가 않아서 대부분 가위로 썰어 넣었다. 남편이 봤더라면 손으로 하나하나 찢어야지 했을 것이다. 그는 나보다 요리실력이 괜찮다.


그리고 감으로 간장 국물이 졸아드는 정도를 확인해서 불을 껐다. 수저를 놓고 밥을 놓고 아이들에게 장조림을 메인 반찬으로 주었다. 아이들은 내가 해주는 것은 무엇이든 달디 단 진수성찬처럼 잘 먹는다. 물론 밥투정, 반찬투정을 할 때도 있지만 내가 주방에서 들이는 노력에 비하면 참 잘 먹고 잘 자라고 있다. 장조림 하나 만드는 데에도 주방은 초토화되었다. 1시간도 넘게 걸렸다. 그래도 장조림 하나 만들어본 것이 나에겐 큰 보람이고 성과다. 이런 사람도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며 잘 살아간다. 뭔가 쓰고 나니 썩 부끄럽고 겸언쩍지만 그래도 뿌듯함도 크기에 상세하게 적어봤다.



요리실력만 이렇게 어둔한 것이 아니다. 애 키우고 살림하는 것, 직장 생활하고 한 사람의 성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대부분 남들과 좀 다른 편이다. 내가 아이 둘을 낳고 초등생이 될 때까지 참 많이 들은 말이 몇 가지 있다.


"그냥 아줌마 써."

"친정 엄마한테 부탁해."

"애들은 학원 돌려."


아마도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들일 텐데 나는 대다수가 살아가는 방식에 나를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꾸역꾸역 살림과 육아, 직장일을 병행하느라 마른 몰골로 살아가는 나를 보며 많이들 그렇게 이야기했다. 편하게 살라고. 지금 붙잡고 있는 것들을 놓으라고.


하지만 나는 집안에 남을 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도우미 아줌마를 '쓰라고' 표현하는 것부터도 이상하고 내 엉성한 살림 위에 남의 손길이 포개진다는 것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둘째를 낳고 집에 산후도우미가 2주간 오셨는데 마음 편하지 않았던 기억도 있다. 친정 부모님은 내가 연년생 둘째를 낳자마자 우리 집과 10분 거리로 이사를 오셔서는 약 2년가량을 도와주신 적이 있다. 그때 부모님은 내가 신경 쓸까 봐 병원도 몰래 다니셨다. 갓난아기를 안고 나 대신 꽤 많은 집안일을 해주시느라 몸이 점점 아파지셨다. 그걸 나 모르게 하신 것도 죄송했고, 그렇다고 가까이 살면서 내 힘으로 하겠다고 말하지도 않고 도움을 바라게 되는 내 처지도 편치 않았다.


학원에 대한 내 기억은 그렇게 좋지 않다. 학교 공부만으로도 이미 이해 용량이 꽉 차게 생겼는데 하교 후에 다시 학원으로 가서 새롭게 공부를 하거나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내겐 마땅찮게 느껴진다. 대신 내가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때 좀 더 놀 걸' 싶은 마음이 떠오르는데 그 아쉬움을 아이들이 해소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건 우리 동네의 교육열이 치열하지 않고 아직 아이들이 저학년이기에 할 수 있는 철없는 학부모의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부족함 없이 놀고 쉬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는 육아도, 살림도, 직장도 나의 본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로 사는 것'을 나의 본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로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 느리고 미련한 걸음일지라도 꾸준히 내딛는 성실하고 정성스러운 발자국을 찍는 행위가 아닐까? 내가 보기에 세상은 추월차선을 타지 못해서 안달인 것으로 보인다. 그에 반해 나는 자꾸만 더 느리고 안 지켜도 되는 규칙을 정해두고 신실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런 마음을 자꾸만 글로도 남겨두고 싶어 진다. 왜 그럴까?


도우미 아주머니 없이도, 친정 부모님 도움 없이도, 애들을 학원 뺑뺑이 돌리지 않아도 워킹맘의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어떤 외부 도움 없이도 아이들의 생명력으로, 부부애로, 자기애로 꽉 채워서 가정을 꾸려갈 수 있다는 것을,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살아도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들만의 진로를 더 잘 찾아나갈 것이라는 것을,

나이 들수록 못하고 서툰 것이 많아지는데, 감사하게도 그 사실을 더 기쁘게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매 순간 확인하고 싶다.


지금 이 시간, 이 장소, 이 마음으로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주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하루를 몇 등분으로 쪼개서 도시락을 싸고,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집으로 와서 다시 저녁밥을 챙겨주고 밤에는 책을 읽어 재운다. 그렇게 몇 등분 난 하루는 쉴틈도 빈틈도 별로 없지만 이상하게 결혼 전 혼자일 때보다 든든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자유 시간이 많았던 그때는 불안하고 불투명한 미래가 너무 무거웠지만, 이제는 선명하고 활력 넘치는 현재를 홀가분하게 사는 것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매 순간 느끼고 있다. 이렇게 워킹맘의 복직 4주 차 주말이 흘러간다.


잘 마르는 빨래 냄새를 맡으며 쓰던 글을 마무리하고, 수북하게 쌓인 설거지를 끝내보러 가볼까? 아이들 방학 숙제도 챙겨봐야지. 그리고 시간이 생긴다면 내가 좋아하는 책도 아껴가며 몇 장 읽어보고 싶다. 꽤 평범한 행복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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