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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Dec 03. 2022

자꾸만 읽고 싶은 손바닥 편지

아들은 꽤나 무덤덤한 편이다. 감정의 기복이 크지도 않고 그림 그릴 종이와 연필, 밥을 든든히 먹어서 부른 배와 함께라면 투덜거리거나 징징거리지도 않는다. 그에 반해 딸은 얼마나 섬세한지 기름종이처럼 쉽게 변화를 흡수하고 프리즘처럼 여러 색깔로 감정을 분출해낸다. 웬만하면 딸의 모든 감정을 다 감싸주려고 애쓰는 편이지만 그럴 수 없을 때가 있다. 바로 출근 준비할 때와 퇴근 후 돌아와서 몸이 가장 힘들 때이다. 하지만 딸은 그 두 시간에 집중적으로 감정을 분출해낸다.


자고 일어나자마자 속이 상한지 쿵쾅거리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안방으로 온다. 먼저 일어난 사람이 상대방을 깨워주기로 했다면서 바로 옆에서 자던 오빠를 툭툭 쳐서 깨웠더니 도리어 화를 내면서 왜 잠을 깨우냐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게 몹시 섭섭했다고 잔뜩 골이 난 얼굴로 내 옆에 누웠다. 제발 달게 잠을 이어가고 싶었는데, 아무 죄 없는 내게 와서 투덜거리고 화풀이하는 딸을 보니 잠이 채 깨지도 않았는데 같이 속이 상한다.


'하루를 남의 짜증을 받아주는 것으로 열다니. 지금은 좀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대충 딸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는척 하고 다시 눈을 감아서 잠을 청하려고 했는데, 딸이 두 번째 손가락을 딱 드는 거였다. 교실에서도 질문이 생기면 그렇게 하라고 배웠다면서 밤에 책을 읽어줄 때 아이들은 곧잘 궁금한 것이 생기면 손가락을 들곤 했다. 그걸 본 이상 다시 눈을 감을 순 없었다.


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보통 바로 질문을 쏟아내는데 오늘은 말이 없다. 나는 내 손바닥을 펴주었다. 말로 하는 대신 손가락을 연필삼아 내 손에다가 쓰겠다는 뜻인가 싶어서 기꺼이 종이가 될 셈이었다. 그런데 손가락으로 뭘 쓸 마음도 없어보이고 도리어 내 손바닥을 꼭 잡아주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쯤은 이미 잠이 다 깼고 억울하게 단잠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생각도 많이 지워낸 참이었다.


대신 속상한 마음을 엄마품에서 달래려고 찾아온 딸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먼저 딸의 작은 손바닥에다가 글을 썼다. 민더야 사랑해. 딸의 손바닥이 생각보다 작다. 그 작은 손바닥 안에도 더 통통해서 볼록하게 올라온 부분이 있다. 그리고 나의 거칠고 딱딱해진 손과는 달리 무척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웠다. 따뜻하기는 얼마나 따뜻한지 말랑한 재질의 손난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딸은 내 손을 낚아채더니 자신의 손가락으로 몇 글자를 꾹꾹 눌러 적는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 행복하세요.

엄마 오래오래 사세요.


그리고 하나 더.


엄마는 보석.


지난번에 아들이 내 속을 잘 알아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우리 누니는 최고의 아들이야'라고 했더니, '엄마는 최고의 엄마에요.'라는 말이 돌아온 적이 있었다.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나는 우리 남매에게 보석이라는 말을 듣고, 최고라는 말을 듣는다. 마음이 꽉 차오른다. 기쁘고, 부끄럽고, 간지럽고, 행복하다.




요즘은 소설 작법서를 열심히 읽고 있다. 소설 쓰는 법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소설집을 읽으면 독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시선으로 옮아가서 작품을 즐길 수 있다. 내겐 그 경험이 무척 참신한 기쁨이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것 역시 육아서를 읽으며 육아의 실전에 뛰어든다면 이처럼 '좋은 엄마의 시선'으로 옮아가서 아이를 키워낼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이다.


육아는 그 반대였다. 육아서는 딱 거기까지였고, 현실은 구질구질했다. 아이들을 대하는 나를 보고 실망했고, 내 숨기고 싶은 면모를 마치 돋보기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듯 아이의 언행에서 발견했을 땐 소름이 끼쳤다. 육아하는 내 모습을 스스로 바라보며 만족과 후회 중에서 후자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지만, 아이들은 전업맘과 직장맘을 오가는 엄마의 인생경로를 마치 이해라도 하는 듯 스스로 씩씩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스스로 설정하고 정렬하며 지내왔다.


그리고 이젠 제 살기 바빠서 늘 빈칸과 구멍이 많을 엄마를 바라보며 응원하고 칭찬할 줄도 아는 아이들이 되어버렸다.


딸의 통통하고 작은 손바닥을 잊고 싶지 않다. 아들의 꿈뻑꿈뻑 뜨고 감는 순한 눈을 영영 기억하고 싶다. 그 손바닥엔 사랑한다는 말을 쓰고, 아들의 눈엔 자기 삶을 사랑하는 한 여인이 들어있으면 좋겠다.


그 여인은 남에게 보여지는 세계보다 그녀만 볼 수 있는 보다 넓은 세계를 품고, 안고, 그리며 사는 중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그녀만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꽤 균형을 잘 잡아가며 그리 모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는 법도 매일 터득해가며 그럭저럭 지낼만한, 그리 우울하지도 괴롭지도 않은 날들을 사는 중이다. 그리고 가끔 어두운 방에 한 줄기 얇은 빛이 들어오듯, 먼저 살아본 다른 이의 인생이 마치 따라가야 할 깃발이라도 된다는 듯 참고하고 표본 삼아가며 자기 발자국을 내는 중이다.


엄마에서  여성으로,  여성에서 아무 거리낌 없는  인간으로, 아무 거리낌 없는  인간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그녀는  단계씩을 소리내지 않고 오가면서 시간과 공간을 채워간다. 그녀가 평범한 하루에서 후회보다는 만족하는 날이  달에  하루씩  많아지길 바란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그녀를  어느 곳으로 데려다  것이고, 그녀는 점점 자신이  갖고 싶은 색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대체할  없는 색을 가진 보석처럼, 그녀는 자기 색으로 자기 빛을 내는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이  것이다. 그녀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딸의 손바닥 편지를 잊고 싶지않아 혼잣말로 외우는 나를 위해, 딸이 직접 손바닥 편지를 글로 옮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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