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이올렛 Dec 06. 2022

직장인의 이중생활

'옆집 엄마의 이중생활' 같은 느낌으로, 나는 부캐를 가져본 적이 있다. 십년 넘게 다닌 직장에서 잠시 벗어나서 해보고 싶은 것을 마치 탐험하듯 하던 시기가 있었다.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었고 블로그를 비롯해서 몇 종류의 소셜네트워크에 가입하여 개인사를 풀어놓곤 했다.


회사 사람들은 절대로 발견하지 못할거라는 확신 같은 것이 있었다. 그저 흩어져버릴 가벼운 생각과 말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어엿하고 의젓하게 살아오던 지난 날을 비판하기도 했고 내가 몸담았던 공간, 시간을 사실은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털어놓았었다.


그러다가 간혹 회사 사람들이 나의 글 혹은 영상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고, 이웃 추가, 팔로우를 하기도 했다.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 카톡이 와서 반가워하기도 했다.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활발하게 하던 모든 활동을 마무리하고 회사에 와보니 나에게 아는체를 했던 사람들 너머에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나의 일탈을 관찰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 내 생활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이색적인 에피소드들도 종종 생긴다. 이건 살면서 못 느껴봤던 것들이라 참 쑥스럽고 신기하다.


내가 하던 말, 글, 활동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노라고 이야기하며 회사 안에서도 모임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꿈 많던, 잘 나가던 여성직원들이 아이 하나 둘 씩을 낳고 후덕해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살짝 소외된 느낌으로 회사에 다닌다. 그들에게도 여전히 뛰는 가슴이 있다고, 작은 목표를 세우고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생각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의아하다. 회사 안에서도 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로 퇴사하기로 마음 먹고 담당부서에 의사를 밝혔던 적이 있다. 그 팀에 있던 직원이 나의 이중생활을 알고 있노라고 이야기하며 '팬'이라고 말하는 거였다. 당시의 나는 그저 하루를 버틸 힘도 없을 때였는데 그래도 고마움은 확실히 가질 수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가슴 뛰고 설레는 일을 즐겁게 하던 시절이.




사십대가 되어 나는 꽤 변했다. 새로운 시도도 해보고, 실패를 달게 받아들이고, 나의 한계도 잘 관찰하며 살아간다. 내향적인 나의 성격, 긴장을 많이 하는 마음, 어색하면 오히려 더 오바하는 나의 사회생활 모습까지, 나는 모두 받아들이며 사는 중이다.


회사 안에서는 늘 갑옷을 입은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 해도 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규칙이 더 많았다. 그 규칙은 회사의 법이기도 했지만, 내가 만들어놓은 것도 많았다. 그걸 하나 하나 지키며 사는 것이 버거웠다. 그렇다고 어길 베짱도 없었다. 그러니 골골 거리며 조용히 불평하며 살아왔다.


마음속으로 조용하게 남은 회사생활에 대해 무엇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일지 생각해본다. 나에게 회사 밖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것처럼, 회사 안에서도 어떤 구실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회사 밖에서 해봤던 그 일탈이 회사 안에서 행복을 찾는데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다.


'영어 원서 동호회'를 만들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는 게 좋을지, 업무에 지장이 없으면서도 마음속의 작은 울림을 유지하려면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해야 할지를 생각 중이다. 감사하게도 이런 활동을 꼭 하고 싶다는 몇을 만났다. 회사 안에서 작지만 설레는 시작을 해보는 중이다.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조금  뻗어나갈지   지켜봐야지. 요즘 읽는 (김초엽 작가) 매일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간다. 회사와  밖에 모르는  같은 사람도  우주까지 생각해보며 잠시 한숨을 돌릴  있게 말이다. 회사 안에서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활동을   있을거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 찬찬히   있는 것부터 해봐야겠다.


조금 설레고, 꽤 많이는 담담하다. 아무런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직장에 다니는 동안 덜 힘들길, 조금 더 웃길, 그리고 내가 가진 그 어떤 재주나 재능이라도 나누고 갈 수 있길 바란다. 그런 기회를 잘 다듬어서 자리를 펼쳐봐야겠다. 나를 지지한다고 밝힌 몇몇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꾸만 읽고 싶은 손바닥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