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모일 회, 밥 식)
: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음. 또는 그런 모임.
수십 명이 한데 모여 함께 고기와 술을 먹는 회식을 했다. 코로나 이후 처음이고, 나에겐 4년만에 맞는 회식이다. 내심 기대되는 마음도 있었다. 이젠 바뀌었겠지, 조금은 그럴 듯한 자리이겠지. 하지만 나의 기대는 무너졌다.
술잔 돌리기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견딜 수 없는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나는 회식이 힘들다.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 하고, 먹고 싶지 않아도 먹어야 하는, 난감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싫다. 가장 싫은 것은 그 자리를 견디지 못하는 나에 대한 마음이다. 자꾸 작아지는 마음, 어색하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고 즐거워 보이려고 연출하는 내 모습을 등 뒤에서 바라보는 마음을 가질 때는 약간 괴롭기까지 하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고기 굽는 식당, 누군가는 집게와 가위를 들고 묵묵히 뒤집고 썰어야 하는 분주함, 맥주와 소주 사이에서 사이다를 마시는 희한한 비참함까지. 이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일년에 두어번 있는 회식날이 솔직히 고역이다.
처음의 어색한 분위기를 뚫고 술이 얼큰하게 취한 몇몇이 자리를 옮겨다니며 분위기를 띄운다. 아주 예전엔 뭣 모르고 따뤄주는 술을 내 속으로 비워내곤 했지만 이젠 아무도 술을 권하진 않는다. 그저 여러번 술잔을 부딪히며 계속 화이팅을 다짐하곤 한다. 회식 자리에서 직원의 사기를 돋워야 하는 문화는 언제쯤 바뀔까?
전세계 어디라도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선 함께 밥과 술을 먹는 문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종의 폭력과 같은 회식 분위기는 나에겐 벅차고 불편하다. 술 취해서 기분 좋아진 몇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안면근육이 떨리고, 점점 온몸과 머리카락에 흡수되는 고기냄새에 질식할 것 같다. 가족끼리 먹는 음식을 요리할 땐 괜찮던 그 냄새가 이런 자리에선 유독 견디기 힘들다.
술 취한 선배들의 꼬장을 받아내느라 힘들었던 과거를 아직 태연하게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그저 흐릿하게 의도적으로 지워내려 노력만 했을 뿐, 이상하게 회식을 할 때마다 과거의 기억이 겹쳐진다. 있는대로 술에 취해, 사무실에서라면 못할 말을 서슴지않고 내뱉던 모습들, 술 냄새와 담배 냄새, 음식 냄새가 한데 섞여 나에게 끝없이 숨을 토해내던 누군가, 유쾌한 농담과 불쾌한 성희롱 사이에서 불편한 언행을 멈추지 않던 더러운 입과 손들.
그 모든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하긴 힘들다. 여전히 망령처럼 회식마다 떠오른다. 그렇게 수년만에 맞게 된 회식은 나에게 불편함과 거북함을 상기시킨 자리였고 시간이었다.
회식에 참석하기 위해 몇 주전부터 남편에게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먼 거리를 출퇴근 하는 그에게, 그날은 휴가를 쓰든 유연근무를 신청하든 하교부터 저녁식사까지 책임져달라고 했다. 몇 차례 잊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고 당일에도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두 아이를 떼어놓고 힘겹게 참석하기로 마음 먹은 나에게 또 누군가는 "공짜밥인데 먹고 가야지."라는 말을 했다.
아무리 공짜로 주는 밥이라도, 가능하다면,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빠지고 싶은 자리가 바로 저녁 회식이다. 단 한 번도 이 회식 참 마음에 들었다고 느낀 적이 없다. 늘 돌아서면 씁쓸했고, 함께 모여 놀고 먹는 문화가 딱 여기까지일까 싶어서 매번 씁쓸한 마음으로 귀가한다.
집에 와보니 아이들은 꼭 토끼처럼 모여서 칼림바 연주도 하고, 책상 정리도 하고, 숙제도 하고 있었다. 그런 두 아이에게 책을 읽어서 재우곤 내 글을 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어서 온갖 종류의 경험도 그렇게 몹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 2개월간 함께 근무 중인 인턴직원도 참석했다. 술에 취한 선배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당황스런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 내가 가진 눈빛과 같아서였을 것이다. 그저 몇 개월간 스치듯 근무하고 이별할 사람들의 눈에 우리는 어떤 풍경일지 생각해보았다.
지금 이 모습이 최선이라고, 이런 회식 문화가 그나마 나은 거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술자리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누구나 다 이런거라고 항변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한 테이블, 4명을 넘어서는 식사는 나에게 늘 힘들다. 소외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대화를 이어가고, 어쩌다 내가 소외감을 느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 거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런 나에게 말없이 눈빛으로 응원을 보내는 후배, 조용히 말을 붙여주는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무탈하게 웃고 대화하며 과거 이야기를 안주삼아 떠들다가 왔다. 그 시간이 좋았는지, 견디기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여전히 내 머리카락에서 나는 고기 굽는 냄새가 오늘 그 시간이 참 강렬했고, 다음번엔 아이들 내버려두고 저녁 회식에 가는 일은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조직 생활을 하며 유독 힘든 포인트들이 있다. 그럴땐 처절할 만큼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는, 먹고 싶지 않은 메뉴로 배를 채우지 않아도 되는, 그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터질듯 커진다. 회식은 가능하다면 건너 뛰고 싶은 의식이다. 회식, 회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나같은 사람은 어떻게 조직에 정을 붙이고 살아야 할까? 여전히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