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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Dec 12. 2022

2022년 코로나

"코로나 한 번도 안 걸렸어요. 가족 모두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구나 눈을 크게 뜨고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 전염력 강한 바이러스가 어떻게 우리집만 비껴가는지를 생각하다가 약간의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 뭔가 고즈넉하게 살아가는 우리 식구의 생활패턴이 무척 안전하고 건강한가보다라는 생각까지 하며 흐뭇해하곤 했다.


그러다가 내가 몹쓸 저녁 회식을 하느라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돌아온 그날 밤, 남편이 초저녁부터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다고 여겼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남편은 두 줄이 선명한 검사키트를 사진으로 보내왔다. 그렇게 우리집에도 첫 코로나가 도착한 것이다. 방 한 칸에 들어가있던 남편을 위해 삼시 세끼를 차려냈다. 식탁에 차리던 밥을 겨우 쟁반에 옮겨담아 나르는 것 뿐인데 체력소모가 상당했다.


환자가 집 안에 있고, 나와 아이들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자꾸 기운이 줄어들었다. 최대한 환기를 자주 하고 문고리를 소독약으로 닦아내보았지만 결국 아들에게 먼저, 그 다음 나, 마지막으로 딸에게 전염이 되었다. 이로써 우리 온 식구에게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투했다.


주말을 보내고 난 월요일 아침, 나의 회사, 관련되는 업무 담당자, 아이들의 담임선생님, 돌봄선생님, 방과후선생님에게까지 열 몇 군데가 넘는 곳에 문자를 보냈다. 아들은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먹은 것을 게워냈으며, 목소리가 완전히 변해버렸다. 나도 목이 서서히 아프더니 따끔따끔한 통증과 함께 흐르는 코가 되어버렸다. 아침 먹고 누웠더니 점심이 되었고 점심먹고 누웠더니 저녁이 되었다.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도 험난했다. 내가 사는 곳에는 일요일에 진료하는 병원이 딱 한군데 있고 그 병원에는 우리 지역에 사는 모든 코로나 환자가 몰려든 상황이었다. 병원에서부터 주차장까지 인파에 휩쓸려 다니며 손에는 약봉투와 코로나 양성확인서류를 받아들었다. 힘겹게 집으로 돌아왔다. 내 몸이 아픈 것은 둘째 문제이고 아들과 딸이 차례로 고열이 오르고 축 처져버리는 것이 힘들다. 입맛이 없는 아이에게 어떻게해서든 무언가를 먹이고 약을 챙겨 먹이는 일, 찾아간 병원이 달라서 처방받은 약이 달라 두 아이에게 적절한 시간차를 두고 물약, 가루약, 씹어먹는 약에다 냉장보관 항생제를 꼼꼼히 챙겨주는 일이 만만하지 않다.




자꾸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몸이 바닥으로 꺼져버릴 것 같은 컨디션임에도 누워서 핸드폰만 보다가는 안구가 너무 따갑고, 자괴감도 함께 들기 때문에 기어코 몸을 일으켜세워 책상에 앉는다. 마침 읽고 있는 소설책이 너무 어두운 내용이라 우울하고 갑갑한 마음까지 든다. 그래도 굳이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몇 차례 반복해서 읽는다.


현실의 힘겨움을 가만히 바라보는 소설속 등장인물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작은 움직임으로 상황을 바꿔보려는 발자국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적신다. 그러면 바로 일기장을 꺼내서 내 시간을 적어본다. 지나온 시간, 현재와 앞으로 다가올 시간까지를. 그러다가 힘겹게 노를 젓듯 이어나갈 앞으로의 몇 년에 생각이 고정된다. 핀으로 꽂아둔 중요한 종이쪽지라도 되는 듯 마음에도 압정으로 박아놓은 듯 그 시간만 바라보게 된다.


버텨야지, 견뎌내야지, 어떻게든 이겨내야지.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는 딱 7일이면 된다. 그 이후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다. 내게도 그와 비슷하게 0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져있다. 딱 이 시간동안은 자꾸 '꿈을 이루고 싶다'거나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하겠다'는 말 따위는 넣어두어야 한다. 최대한 요동치는 것 없이 무탈하고 무난하게 평범한 직장인이자 워킹맘으로 살아야 한다.


그 몇 년을 달력타입으로도 써놓고, 선그래프 타입, 파이그래프 타입으로도 그려본다. 그리고 주요한 이벤트가 될 만한 사건도 적어본다. 이를테면 이사라던가, 퇴직 몇 년 전인지 같은 키포인트들 말이다. 어떤 시간은 긴 시간의 흐름의 표본이 될 수 있다. 이번 자가격리기간이 그럴 듯 하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시간, 가보고 싶은 곳을 상상으로만 품어보는 상황, 몸의 어느 부분이 아프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약을 먹으며 버티는 것 뿐인 현실.


코로나는 어김없이 공평하게 우리집도 휩쓸고 지나가는 중이고 아무쪼록 아이들이 어서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다. 엄마도 아프니까 최대한 너희들끼리 놀고 스스로 자라는 말에 일찌감치 들어간 아이들에게 고맙다. 덕분에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야식도 먹으며 흘려보내야하는 이 시간을 잠시 만져보듯 쓸 수도 있었다.




가끔 수험생처럼 공부해야 할 소설책들을 쌓아두고 분석하듯 읽는 요즘의 내가 신기하다. 한때는 자기계발서에 푹 빠져서 그것대로 안 살면 큰일나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훨씬 더 다채로운 범위의 문학작품들을 읽으며 사람의 마음이란 원래 이렇게 오묘한 것이구나, 이걸 도대체 어떻게 쓰는 걸까에 빠져살고 있다. 소설작법서와 소설작품을 번갈아 읽으며 손으로는 부지런히 필사하고 나만의 소설쓰기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2월부터는 주말마다 소설쓰기 교실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나는 그렇게 삶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아프고 힘겹던 시간은 또 어느덧 내 뒤로 보내주고 나는 내가 가보고 싶은 길로 접어드는 중이다. 겨울이라 부쩍 거칠어진 손등에 좋은 향기의 핸드크림을 바르고 먹고 싶은 간식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먹어가면서 나는 이 겨울을 이 격리기간을 보내고 있다. 언젠가 내 신분이 바뀌어있을 그날이 올까? 해소되지 않은 마음의 어두운 부분을 글로 개운하게 써내려가며 뽀득뽀득한 유리창을 닦아내듯 내게도 그런 말끔한 날이 올까?


우선 이 칼칼하고 따끔거리는 목부터 낫게하고 싶다. 그다음에 또 다음 일을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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