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도 며칠 안 남았다. 호흡기 질환으로 아픈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꼬박 7일을 식구들과 하루종일 얼굴 맞대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 귀엽기만 한 아이들과 하루종일 붙어있는게 뭐가 그렇게 힘든일이냐 하면 할 말은 없다만 아픈 몸을 이끌고 밥을 차렸는데 밥투정 하는 아이를 매 끼니 마주하다보면 내 안에서도 화가 끓어올랐다.
나도 아프다고! 나도 밥 안차리고 그냥 푹 쉬기만 하고 싶다고! 그렇게 절절하게 소리치고 싶었다.
아이들은 양성 판정 이후 첫 며칠만 고열로 고생을 하더니 회복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 나만 증상 발현이 늦더니 마지막 7일을 향해가는 격리기간 내내 아프다. 가래가 끓고 후각과 미각을 잃었으며 기운이 없고, 무엇보다 몸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꽉 차버렸다.
남편은 격리기간이 끝나서 출근을 했고 징징 대는 아이둘과 집에 남아서 계속 주방을 맴돌다보니 하루가 다 끝나버렸다. 나를 가지고 놀리고 까부는 아이들을 양치 후에 바로 방으로 들어가라고 이야기하곤 저녁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하는 내내 머릿속으론 이상한 상상이 멈출 줄을 몰랐다.
내가 부잣집에 시집 갔더라면, 이렇게 아픈데 설거지 하는 일은 없을텐데... 보다 자상한 남자를 만났더라면 아픈 아내를 위해 휴가를 내고 내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보살핌을 받을텐데... 이런 류의 상상을 무궁무진하게 하다보니 속에 화가 꽉 차올랐다. 모든게 억울하고 밉게 느껴졌다.
내가 며칠 앓아누워있던 동안 매 끼니마다 밥을 차려 갔다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은 이상하리만치 싹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엔 끈적끈적해진 주방 바닥과 남편의 서툰 살림 솜씨만 눈에 들어왔다. 분명 그는 최선을 다해 식구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아픈 몸 때문인지, 좋지 않은 컨디션 때문인지, 모든 것이 부족하고 마땅하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불만으로 꽉 사로 잡힌채 설거지를 마치고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방으로 들어가보았다. 아이들 방은 문을 여는 순간 공기부터 달라진다. 마치 착하고 순한 사람이 되라고 무슨 마법의 가루를 뿌려놓은 듯 억눌린 감정으로 부들부들 떨던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아이방 안의 공기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불이 꺼진 방이지만 주방에 켜둔 불빛에 비쳐 아이들 자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똑같은 자세를 취한 쌍둥이 인형처럼 자고 있는 아이들, 한낮의 까불거림은 찾아보기 어렵게 고요하고 평화롭게 잠들어있다.
아이들 자는 모습은 늘 사람을 숙연해지게 만든다. 집밖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왔던 기억도, 일하면서 속상했던 어떤 날의 일도, 내면이 끓어올라 얼굴까지 화끈거리던 날조차도 아이들 자는 모습 앞에선 전부 맥을 못추는 옛날 노래가 되어버린다. 손을 잠든 아이의 등에 가만히 갖다대본다. 엎어져서 자는 것이 편한지 둘은 똑같이 뒤집어져서 자고 있다. 등에 따뜻하고 촉촉한 감촉이 느껴진다. 늘 잠든 후에 가보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을 몰아쉬는 아이들.
등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숨소리도 같이 높아졌다 낮아진다. 지금 무슨 꿈을 꾸는 걸까? 좋은 꿈을 꾸는 거면 좋을텐데...
아들은 자다가 한 번씩 경기를 일으킨다. 몹시 무서운 꿈을 꾸는 날이 그렇다. 자면서 엄마! 크게 외쳐서 가보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딱딱해진 몸으로 정신을 못차리고 중얼거리고 있다. 그건 꿈이라고, 엄마가 여기 있으니 괜찮다고 아무리 몸을 주무르면서 이야기해봐도 소용이 없다. 한동안 굳어있던 몸이 저절로 풀릴 때까지 놔두어야 한다. 일어나서 물어보면 아주 아주 무서운 꿈을 꿨는데 내용이 기억 안난다고 말한다. 아들이 어떻게 되는게 아닐까 싶어 매번 놀란다.
딸은 새벽녘에 무서운 꿈을 꿨다면서 울먹거리며 내 이불로 다가온다. 그러면 안고 같이 잔다. 그렇게 잔 날은 잔 것 같지 않고 온몸이 찌뿌둥하다. 그래도 딸은 심심치않게 내게 찾아오곤 한다. 그렇게 아이들의 꿈자리가 곧잘 사납곤 한다.
아이들의 통통한 볼,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똑같은 포즈로 잠든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아주 뜨겁게, 내 안에 그렇게 뜨거운 것이 존재했나 싶을만큼 따뜻한 눈물이 갑작스럽게 흘렀다. 설거지하면서 내내 불만에 사로잡혀 얄궂은 상상만 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 가끔은 아예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같은 상상을 하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이 너무 힘들 때 주로 그런 상상을 한다. 너무 괴롭고 힘이 빠져서 다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 말이다. 상황은 나아지는 바가 없고 더 힘들어질 일만 남았을 때에 나는 주로 상상을 한다. 여기 이 자리에 이런 꼴로 살지 않았더라면, 혹시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고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으며 살 수 있었을 또 다른 삶의 시나리오가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류의 상상은 사람을 갉아먹는다. 현실을 미워하고 상상 속의 더 나은 생활을 구체적으로 키워나가다보면 결국 어느 곳에도 제대로 발 붙이고 살지 못하는 사람이 될 뿐이다. 곧잘 그런 성향으로 빠져버리는 나를 현실에 발붙이고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이들의 자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보면 인생의 늘어난 부분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덜된 부분은 힘을 내어 자라나는 느낌을 받는다.
아이들은 순수하다. 원래도 순수한 그 존재들이 잠을 자는 모습은 다른 인간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무방비 상태로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모습은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원초적인 기쁨과 행복을 불러 일으킨다.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어 고맙다, 이만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축복이구나, 하는 생각을 뱃속 깊이에서부터 끌어올려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내심 아무도 모르게 얕잡아보던 사람이 큰 공을 세우는 때가 있다. 그럴땐 몰래 얕잡아봤다는 사실이 우선 부끄러워지고, 그 다음은 그 낮아보이던 상태에서 높은 곳까지 올라간 저력에 더욱 감동받곤 한다. 성격이 까칠한 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보니 포근한 내면을 가졌다라던가, 유순해보이기만 하던 사람이 사실은 악바리처럼 노력해서 큰 성과를 만들어냈을 때, 나는 곧잘 당황하고 동시에 축하한 적이 있다.
격리기간 동안 마음이 움츠러들고 아픈 몸을 추스르느라 까칠해진 마음가짐 때문이었을까? 나는 내 삶을 잔뜩 무시하고 있었다. 이건 어차피 내 속에서 일어나던 일이었으니 남몰래 할 것도 없었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설거지를 하며 한탄과 탄식을 내뱉으며 다시 추슬러진 몸을 사무실로 데리고 갈 다음주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얽힌 실타래처럼 현실을 미워하고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자는 모습에서 나는 다른 기운을 받았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다고 마음 먹었었지? 그러면서 왜 자꾸 약한 소리를 하는거야.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마다 현실을 잔뜩 부정하고 싶어질 때마다 아이들은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내게 많은 메시지를 보내온다. 무엇이 먹고 싶다고 하는 아이들, 무엇이 갖고 싶다고 하는 아이들, 그들을 거두어 먹이고 성인이 될 때까지 욕구를 충족시켜가며 키워내는 일이 앞으로 못해도 10년은 내게 주어진 흔쾌한 과업이다.
아파도, 마음이 찌그러져 있어도, 나는 묵묵히 일어나서 내 할 몫을 해야지. 통통한 볼, 들쑥날쑥하고 순박한 등, 정신없이 꿈나라로 가느라 뻘뻘 흘리는 땀까지. 나는 그런 것들을 동력삼아 다시 엄마 자리로 돌아온다. 엄마의 자리가 이렇게 무거운 건지 몰랐다. 우리 엄마도 이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오셨겠지? 어떤 날은 너무 무거워서 살짝 풀러 내려놓으면 어떨까 싶다. 그런 작은 상상마다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으려고 한다. 엄마도 마음의 무거움을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을 수 있는 거니까. 오늘밤은 모든 종류의 짐 보따리를 내려놓고 고요히 딱 나 한 사람만 생각하며 잠들어야겠다. 꿈속에서는 훨훨 날아다니길,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고 위로받고 사랑받으며 살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