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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Dec 28. 2022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 글

코로나에 걸렸다가, 자가격리를 마치고 업무에 열중하며 살았다. 복직 후 바로 주문했던 새 차가 나왔고 코로나 이후 생긴 호흡기 후유증을 달고 기침을 하며 연말 업무 마무리에 한창이다. 아이들은 신기할 만큼 잘 자란다. 밥을 엄청나게 잘 먹고 본업인 놀이에 충실하다. 나를 엄청 좋아하고, 동시에 자기들의 놀이를 그만큼 좋아한다. 남편은 골프를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나도 쪼금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요즘 좋아하는 것이 없다. 책 읽는 것도 별로 흥미가 없고, 눈 떠서 눈 감을 때까지 눈 떠 있는 시간에 나를 웃게 하는 것이 드물다. 그나마 안도와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아들과 딸을 안을 때이고, 그 외의 모든 시간은 의무로서의 삶으로 채워진다. 모든 어른들이 어른 노릇을 하느라 나와 비슷할텐데 그 가운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요즘은 참 귀하다.


7일간의 격리가 끝난 후에도 기침이 계속되어 감기약을 처방받아 먹다가 어제는 선반 제일 위에 모셔두었던 신경정신과 약을 꺼내먹었다. 그 약이 필요했다. 갯수를 세어보니 열 번 정도 먹을 수 있는 양이 남아있다. 내가 십일 정도를 잘 보내고 행복감을 찾을 수 있을까? 다시 병원에 다녀야할까?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거울을 보다가 내가 완전히 망가진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제 기능을 못하고 사는 게 아닐까? 이게 사람 구실일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다듬어봐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중 진심으로 뱃속 깊이에서부터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하고 싶은 게 많았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졌다.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모두 못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집안일과 아이들 돌보는 것, 돈벌이를 위한 직장일을 제외하고나면 나는 변장을 위해 만든 가면이나 동물탈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서 의무감에 해야 하는 일들을 제외하고나니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몇 종류의 감정이 발 밑에 깔려 있는데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서 제대로 눈치채고 감정을 해소하며 사는 게 잘 되지 않는다.


열이 나고 아플 땐 계속 이불 속에만 들어가 있었고, 좀 나아지고 나서는 다시 코로나 이전처럼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멍 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온갖 종류의 인터넷 뉴스, 주부 커뮤니티의 글 정독, 유튜브 속 연예인들의 농담으로 생각을 마비시키며 살아왔다. 일부러 아무 생각도 피어오르지 않게 하려고,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편이 낫다고 여기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어느 자리에서도, 어느 시간에도 진짜 나를 찾을 수 없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아침에 출근하며 팀원들에게 씩씩하게 건네는 인사에서도, 업무중 수없이 주고받는 전화통화에서도, 나는 없다. 퇴근후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엄마로서의 자아이지만 힘에 부친다. 잘 먹는 아이들, 끝이 나지 않는 질문, 느린 손으로 해내는 주방일, 어떤 땐 엄마 역할도 겨우 해내고 있는 게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래도 아이들은 나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자신들의 모든 감정을 내게 내려놓고 하루의 고단함을 잊어버린다. 말랑말랑한 아이들의 몸을 안아주고 강아지 쓰다듬듯 많이 쓰다듬어주고 그들의 섭섭했던 마음, 아쉬웠던 마음을 다 들어주며 재운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똑같이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놓는다. 그도 고단함이 있었을텐데... 그렇게 부부는 각자 험난했던 하루를 나누고 서로 누가 질새라 "마음이 안좋아." 하면서 자신을 위로해달라고 이야기한다.




조만간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회사에서도, 개인적으로도. 그러면 과연 잊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내내 빙빙 둘러서 요즘의 어수선한 머릿속과 마음을 써보았는데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장에 쓰는 것이 더 나을지, 그래도 지나가던 사람이라도 잠깐 읽는다는 전제하에 글을 쓰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다.


우울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계속 같은 상태로 무기력하고 외롭고 괴롭다. 더 자세히 적는 것은 일기장에 적어두었다. 지금의 이 무거운 삶이 내게 무슨 쓸모가 있겠냐 생각하다가, 나중에 나의 소원인 소설 쓰는 사람이 된다면 적어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인물은 정확하게 표현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온몸에 무게추를 단 것 같은 삶, 인터넷 뉴스에서 '죽음'에 대한 글을 보면 그것만 커다랗게 보이는 선택적 관심, 재미도 보람도 잊어버린 삶, 끝없이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


어디가 바닥일까?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의 가장 아래는 어디일까? 시기상 언제일까? 아직도 내려가는 중일까? 불려야 할 경제적 자산도 중요하고, 상처 입히지 말아야 할 내 안의 영혼도 중요하다. 영혼이 울지 않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힘이 기운을 잃지 않게 살고 싶다. 울어도 답이 없을 땐 눈물도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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