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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Dec 29. 2022

2022년 끝나기 이틀 전의 마음

눈 깜짝 했더니 한 해가 지나갔다. 작년 이맘때가 떠오른다. 그때에도 첫 책 출간을 하겠다고 바쁜 일정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원고 작업에 돌입하던 참이었다. 그때와 지금의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던 시기였고 지금은 숨고르기 중이라는 것이다. 어느덧 회사 생활도 5개월이나 해냈다. 다행히 바쁜 일이 있었기에 얼마쯤은 몸을 지탱하며 살 수 있었다. 출근과 퇴근 사이에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사는지, 그 일을 하는 나도 가끔 궁금하다. 뭐가 그렇게 바빴니? 숨 한 번 크게 쉬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버린다.


어제는 '아무도 안 봤으면 좋겠는 글' 이라는 제목으로 요즘의 저조한 기분에 대해서 글을 썼다. 그 글의 여운이 다음날까지 지속되었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도, 복도를 지나다니면서도, 밥 먹으면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내가 힘든건가? 누구나 다 이 정도는 우울한 기분을 안고 사는 거 아닌가? 그래도 내 건 조금 더 심한 것 같아... 같은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밤이 되었다.




새해 달력을 펼치며 이렇게 한숨을 쉬어본 것은 처음이다. 늘 달력을 보는 것, 만지는 것, 직접 써보는 것까지를 다 좋아했는데 올해는 설렘과 떨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떻게 퇴직까지 빨리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다니다가 퇴직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골몰하는 요즘이다. 그러니 하루는 더디게 가고 가끔은 기분 나쁠만큼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면 허무함이 바로 뒤따라온다.


의미와 재미로 꼭꼭 눌러 채우며 사는 삶을 꿈꾸었었다. 아주 재미나게, 눈에 띄게, 앞서 나가는 삶을 좋은 것으로 여기며 자기계발을 했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세계에서 바닥부터 나를 만들어가는 것은 나에게 희열감을 주었다. 하지만 다시 회사로 돌아와서 오랜 육아휴직 끝에 적응에 애를 먹는 자아로 돌아오면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에서 올라올 줄은 모른다.




우울한 이야기 말고, 요즘 나에게 재미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은 마흔 살에, 소설가 정유정 작가는 마흔 한 살에 등단했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소설가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특별한 생동감을 느낀다. 하루종일 움츠러 들어있던 마음이 아주 조금 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들의 분위기를 흡수해본다. 목소리의 안정감이 좋다. 자신의 글을 쓴 사람이 그 글을 설명하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가끔은 소설가의 작업실 풍경을 영상으로 구경하기도 한다. 책 사이에 파묻혀서 사람들과 단절된 채 오로지 모니터 앞에 홀로 앉은 작가의 모습에서 그가 느낄 창작의 괴로움과 동시에 환희와 열정의 마음을 그려보곤 한다. 지금 회사에서의 내 책상은 등 뒤로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다니고, 모니터 2개 가득 업무 문서를 펼쳐놓아야 마음이 든든한 상황이다. 어떤 때엔 보지 않아도 되는 메일함, 게시판, 결재함을 수시로 오가면서 나의 시력을 낭비하곤 한다. 그래서 어떤 때엔 이 시력이 남아있을 때에 어서 좋아하는 일로 접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게 된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 몇 년만 더, 딱 몇 년만 더. 나는 그 시간을 살아가며 의외로 시간이 잘 간다고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고, 대부분의 날은 지독하게도 멈춘 것처럼 꼼짝을 않는 하루 하루에 대해 분노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간이 잘 가는 것처럼 느끼려면 최대한 '즐거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가 가장 즐거울까? 요즘은 건식족욕기와 팥주머니를 몸에 두르고 산다. 따뜻한 것을 배에 얹고 이불 속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그게 가장 편안하고 기분좋은 일이다.


책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유명세를 안고 있다는 소설가들을 줄세워 마치 숙제하듯 책을 읽었더니 재미가 없다. 그런 유명작가 따라하기 프로젝트는 그만 두고, 정말 마음에서 원하는 책을 다시 구입해서 읽어야겠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줄을 그을 수 없으니 애착이 떨어지고 아무리 필사를 해도 그때뿐이다. 긴 호흡의 소설을 읽어야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 철학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책이라도 맘 놓고 구입하고, 실컷 읽으면서, 이 젊음과 건강을 축복하며 살고 싶다. 날마다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매번 마음이 뭉클해진다. 이 녀석들을 낳고 기르느라 나는 많은 것이 변화된 삶을 살고 있구나, 이런 삶도 충분한 나의 몫이지 싶어진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 내 손길이 필요한 시기이다.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내 몸 밖에 있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나를 잘 지키고 바로 서서 살아가고 싶다.


문득 내년엔 어떤 한 해를 보내면 좋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딱 하나다. 소설 쓰는 법을 배우고, 단편소설 한 편을 써보는 것이다. 아마도 어디 내다보이기 부끄러운 글 쪼가리가 나오겠지만 처음으로 느껴보는 창작자의 감정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나의 삶에서 꼭 끌어안고 못 놓아주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주로 외로움과 막막함, 비참함, 무력감 같은 최대한 숨기고 싶은 감정과 그와 연관된 에피소드이다.


에세이를 쓰면서도 풀어놓아 보았지만 자세히 쓰면 쓸수록 나의 현실을 생생히 남에게 보여야 한다는 것에서 아득한 마음이 들곤 했다. 대신 소설은 그렇지 않으리라. 소설은 허구라는 것을 전제로 어쩌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던 것까지 쓰면서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뿌옇게 머릿속에서 오락가락 하는 것들은 있지만 제대로 이야기 구성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선 자신이 없다.


내가 잘 모르는 세계, 잘 모르지만 기꺼이 두 발 담구어 배우고 싶고, 모른다는 것이 오히려 기쁠 그 순간을 맞고 싶다. 다 알아서 새침하게 앉아 있지 않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배워나가고 싶다. 그렇게 책을 진심으로 읽고, 글을 진심으로 쓰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퇴직까지의 시간도 꽤 빠르게, 의외로 다정하게 지나보낼 수 있으리라.


나의 시력, 손목의 힘,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근육들이 버텨주길 바란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일이 완벽한 준비를 바탕으로 시작되진 않을 것이다. 어수선하고 우울하고 대체로 가망이 없어 보이는 일에 조금씩 빛이 들기 시작하는 것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내 인생의 가장 낮은 점, 가장 추운 지점에서 시작하는 새해의 이 열정은 추운 날 켜는 마지막 남은 성냥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내겐 인생을 걸고 해보고 싶은 일이 다행히 있으니 현실을 조금만 더 감내하며 마음속에 작은 불씨 하나를 꺼뜨리지 않도록 하자. 괜찮다.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더 없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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