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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Jan 04. 2023

불쌍해보이는 분위기

두 달 전쯤 나는 정밀심리검사를 받았었다. 이 우울한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적절한 진단서를 받아서 정식으로 휴직 신청을 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위해서 병원을 찾았었다. 그 서류를 두 달만에 다시 꺼내서 읽어보았다. 임상심리전문가가 작성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도장을 찍은 그 서류를 다시 읽자 마음은 끝을 알 수 없이 더 우울해졌다. 그 기분 그대로 출근했다.




런던에서 공부하던 시절 템즈강 주변에서 축제가 벌어진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터키 아이스크림, 멕시칸 타코, 일본의 타코야키 같은 것이 길거리 음식으로 자리 잡았듯, 런던에도 한식 포장부스가 운영중이었다. 전세계 음식 사이에서 한식을 만나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하지만 그때는 동전 하나도 절약하며 살던 시절이라 비싸디 비싼 한식을 사먹을 수가 없었다.


이미 밥을 먹었기도 했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다는 이유로 멀리서라도 달려가고 싶은 한식 부스를 등지고 앉아서 우리는 하염없이 템즈강만 바라보았다. 그런 나와 친구들의 뒷모습이 측은해보였던지 한식 부스의 운영자가 음식을 포장해서 우리 앞으로 가지고 와주셨다. 얼마나 고맙던지, 불고기, 잡채 같은 귀한 음식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꼬질꼬질하고 불쌍해보였을까? 그건 음식을 가져다준 사람만이 알 것이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눈에는 총기없이, 마음에는 열정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미 마음에 힘을 잃고 후배들 보기 민망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중 한 명의 후배는 나보다 약 열 살 가량 어린데도 늘 나에게 힘을 보내주곤 한다. 그녀는 나의 회사 밖 모습과 회사 안 모습, 둘을 모두 알고 있다. 그녀에게 복직 후 지난 5개월은 그저 멘붕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했고, 이런 내 모습이 떳떳지 못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녀는 마치 연장자라도 되는 듯 나를 다독였다.


"그래도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과장님이잖아요."


누가 뭐래도, 남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지금 힘든 상황에 있는 것은 나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뜻 같았다. 남에게 휘둘리지 말고 내 마음 단단히 챙기라는 뜻으로도 들렸다. 오늘은 퇴근하려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데 팀내 후배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유독, 평소보다 조금 더 따뜻한 듯 싶었다. 나만의 착각이어도 좋을만큼. 혹시 그녀가 팀내의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나를 좀 살뜰히 살펴달라고 이야기한 건 아닐까 하는 허황된 상상을 해볼만큼 배려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모든 배려를 뒤로하고 내 마음은 속수무책으로 가라앉은 상태이다. 그리고 그렇게 어설프게 정상인인척 하던 내 마음은 죄스럽게도 늘 아이들 앞에서 폭발하곤 한다. 퇴근후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 준비를 한다. 두 아이가 마치 자동차 시동을 걸듯 슬슬 싸울 태세를 갖춘다. 둘이 말싸움을 하고 꾹꾹 참고 있던 나는 더는 못 참겠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리를 버럭 지르고, 얼어붙은 아이 둘을 보며 얼른 방으로 들어온다. 내가 또 잘못했구나. 내가 못 참았구나.


마음을 추스르고 방 밖으로 나가보니 눈이 벌게진 아이 둘이 눈에 들어온다. 그때부턴 엄마가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엄마의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화를 냈다가 이내 미안하다고 말하는 내 말에 얼마만큼의 믿음이 남아있겠는가. 아이 둘의 마음을 겨우 달래 저녁을 먹였다. 간과 쓸개를 뺐다. 힘도 같이 빠졌다.




선배님 한 분을 만났다. 38년간 몇 군데의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점은 모든 경험이 다음번 경력에 도움이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면 내 경험은? 나의 지난 경력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움이 될까? 나는 보고서를 잘 쓰는 직장인이 아니었다. 깔끔하게 처리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나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이 힘들고 불편했다. 악의가 없는 언행에서도 내게 불리할 의미를 찾아내어,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반면에 내가 받던 호평과 칭찬에는 겸손해야 한다면서 부정하기에 바빴다.


적당히 치고 빠지며 필요하면 사내 정치도 해야 하는데 그런 것에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짧게 쓰고 복직해야 센스있는 법인데, 휴직을 최대치로 사용했다. 복직해보니 저절로 눈치없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내가 없던 몇 년 사이 보안은 한층 강화되었고, 회사 경영의 방향도 새롭게 바뀌어 모든 것을 새로 익혀야했다. 하나 하나 후배들에게 배워가며 이제 막 알에서 나온 어린새가 된 기분으로 회사를 다녔다.


그럴수록 못해도 괜찮으니 내 이름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회사의 실적으로 들어가는 일 말고, 지지부진해도 내 일이 하고 싶어졌다. 거기가 피할 수 있는 길 같았다. 후배들에게 치이고, 선배들에게 밀리며 내 자리를 유지하는게 나에겐 어려웠다. 많이 어려웠다. 매순간 무능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외롭고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 이러려고 회사로 돌아온 것은 아닌데.


요즘은 거울 보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웃음기, 윤기, 생기가 빠진 나를 거울에서 보는건 괴로운 일이다. 몇 달 전부턴 화장도 하지 않는다. 그저 머리를 감고 잘 빗고 다니는 것 정도만 할 뿐이다. 향기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나의 취향이 만들어지고 어떤 재미를 잃지 않던 삶이 그립다. 툭 건드리면 눈물, 가만히 생각하다가 우울. 어느 쪽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참 지치는 일이다.


건식족욕기를 샀다. 발끝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올라온다. 몸에 기운이 없을 땐 전기의 힘을 빌어 온기를 얻는다. 그 온기를 안고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럼 이불 속에서 최대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잠에 든다.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일어나서 아침엔 다시 어두운 마음으로 이부자리를 걷는다. 앞으로 몇 년, 내 손에 들어올 얼마만큼의 퇴직금과 매일 매일 허물어지는 내 마음을 바꿀 가치가 있을까?


조금 더 버텨본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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