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이올렛 Jan 07. 2023

나는 고운 사람

오늘 이상하게 마음속에서 작은 꿈이 꿈틀꿈틀댔다. 잠시 마음속이 두근두근 할 만큼 이런 이야기라면 내가 잘 할 수 있지 라는 주제가 떠올랐다. 메모도 해보고 잠시 행복한 미래도 상상해보았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긴장이 녹아내렸다.


모든 이에게 각자가 감당해야 할 고난이 있을텐데 온 세상은 평온하고 나만 힘든 줄 알고 5개월여를 살아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의 고통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잠시 빠져나와 상황을 둘러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건강하고 밝게 성장하고 있고 우리 가정도 무탈하다. 다닐 수 있는 회사도 있고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둬도 된다고 말하는 남편도 있다.


가만히 상황을 살펴보니 내 마음에서 만들어낸 괴로움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느끼는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나를 관찰하기 위해서 참 많은 날 울었고 일기를 썼으며 이 곳에도 글을 틈틈이 남겨왔다. 그리고 마침내 알았다. 그 누구도 나를 붙잡아둔 게 아니었어.

내가 스스로 '불행'이라고 낙인찍어버린 거였구나.




옆 팀의 동료직원과 식사를 했다. 그는 내게 자신의 몇 년 전 신경정신과 약물 복용과 상담 치료 경험을 툭 터놓고 이야기 해주었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먼저 허심탄회하게 꺼내는 그였다. 번아웃 되었었던 자신의 과거를 나에게 털어놓고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홀가분하게 과거를 털어낸 사람의 밝은 미소가 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그런 미소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곧이어 인사 이동이 예정되어 있다. 회사가 매일 들썩들썩하다. 내 마음이 흔들흔들해서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다. 5개월간 지내며 지금 있는 팀이 앞으로도 지낼만한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보았고, 그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나의 흔들리는 마음을 선배에게 털어놓았더니 내가 갈 만한 팀을 적극적으로 알아봐주고 새로운 팀에 다리까지 놓아주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나의 미래가 월말쯤엔 또 새로이 바뀌게 될 것 같아 작은 희망과 설렘을 가져본다.




남편과 주말 아침에 눈을 뜨고 나란히 누워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회사에서 아내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불안해진다고 했다. 내가 무슨 일을 낼 것 같고, 회사 다니기를 강요하다가 사람 잡는게 아닐까 싶어 자신도 혼란스럽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는 곧잘 태산을 세우곤 하지만 말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그에겐 항상 "힘들어, 죽고 싶을만큼" 이라고밖에 이야기하지 못했다. 대신 이렇게 글로는 자세하고 치밀하게 내 마음을 적어가고 있었다. 이런 내 자세한 감정의 변화를 몰랐던 그는 그저 내 생각만해도 안타깝고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렇게 남편에게 염려를 끼치던 내가, 실은 회사에서 사람 구실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평소보다 자세히 이야기했더니 그는 안심을 한 모양이다. 나는 감성을 앞세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고, 그는 이성적으로 대처해나가는 내 당찬 모습을 듣고 싶어했다. 그는 어차피 나에 대해 아무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은줄 알았다. 그렇게 혼자 착각하며 그동안 마음앓이를 했구나 싶었다.


그는 내 모든 면을 알고 있다. 작년 한 해에 책을 두 권 출간했지만 실은 빚좋은 개살구라는 것도 알고 있고, 출판사로부터 어떤 허접한 대접을 받으며 초보작가로서 겪어내야 할 고난을 겪어온지도 모두 안다. 그렇게 실속없는 내 모든 면을 알고 있는 그는 내가 적극적으로 그 길로 뛰어든다고 하니 많이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도 글쓰는 게 좋다고,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내가 얼마나 허황한 사람으로 보였을까? 그렇게 현실과 소망 사이에서 적당한 자리를 찾아가며 사는 중이다. 가장의 무게를 그에게 떠넘기고 꿈 하나만 쫓고 싶어하던 내 자리가 유독 어려보인다.




결국 이 모든 고통의 감정은 내가 만든 세계였던걸까? 아무도 그런 세계를 설계해두고 나를 그 괴로움의 미로에 던진건 아닐텐데... 역시 탈출하는 법도 이미 내가 알고 있는게 아닐까? 최근에 나를 "응원한다"고 표현한 몇몇 덕분에 나는 마음이 무척 따뜻해졌다. 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일을 해내는 나를 장하다고 여길 수도 있게 되었다. 내가 뭘 잘못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내게 불리하고 조금 어렵게 돌아가는 것 뿐이라고 여기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회사 안과 밖에 내 걱정을 하고 있는 몇 사람의 얼굴과 그들의 메시지가 내 마음에 모두 도착했다. 응원의 메시지가 도착하면 나는 부끄럽고 수줍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혹여 칭찬같은 것이 섞여 있으면 몸둘바를 찾지 못했고 내가 가진 조금의 쓸모도 부정하기 바빴다. 그렇게 스스로 계속 낮은 자리에 있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나를 감싸고 있었으니 웬만한 관심과 격려도 내 마음에 제대로 도착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왜 부정하기 바빴을까?

나는 지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느라 마음이 조금 고단했던 것 뿐인데.'


그러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조금씩 희망도 가져볼 수 있게 되었다. 갈수록 침침해지는 시력도 소중하고, 더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스스로 잘 지켜내야하는 내 마음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3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오랜만에 회사로 돌아가서 5개월을 눈물바람으로 보냈지만 그런 노력이 그렇게 밉지만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는 그 노력을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어질 만큼 마음이 많이 풀어졌다.




매일 울고 싶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눈물과 함께 잠드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아픔의 터널 끝을 향해가고 있는지 차츰 내 뒤를 따라올 후배 엄마직원들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할만큼 힘들었는데 내가 아끼는 후배들, 아이를 낳고 회사로 돌아올 예정인 엄마직원들도 모두 이 과정을 겪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자 어서 내 괴로움, 도전, 극복, 성장, 안정을 향한 이 모든 노력을 더 자세히 체계적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꽉 채워서 육아휴직 했던 경험, 복직, 여전히 육아지원제도의 혜택을 받으며 이른 퇴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직원으로서의 내 경험, 내 성장기를 자세히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는 이렇게 큰 차이가 생겨버렸다. 어제까지는 더이상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자괴감의 굴을 깊이 파던 나였는데, 이제는 하루 바삐 지금 느끼는 모든 감정을 더 자세히 써놔야겠다는 당찬 마음으로 바꿔먹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말하는 것보다 쓰는 것이 좋다. 말은 늘 조심스럽다. 흥에 겨울 때도, 낯을 가릴 때도, 늘 볼륨조절을 하며 조심스럽게 하는 편이다. 하지만 글은 딱 내 생각이 나아간만큼 한 글자씩 정직하게 쓸 수 있다. 그건 나의 내면과 대화하는 느낌, 세상이 꽉 차서 조금도 외롭지 않은 느낌이다. 글을 쓸 때만큼은 다른 이가 아닌 온전한, '딱 멋진 나'로사는 기분이다.


아이를 키우며 요리에 밝지 않아도 따뜻한 밥을 해주려고 새벽에 일어나는 나, 보온도시락 두 개에 치킨너겟과 김자반, 김치를 넣어 도시락을 싸는 나, 소매가 까맣게 변한 옷을 손빨래해서 세탁기에 넣는 나, 탈탈 털어 빨래건조대에 너는 나, 온갖 감정을 나에게 풀어놓는 아이 둘을 보듬는 나, 집안의 온도와 습도, 청결과 분위기까지 모든 것을 관리하는 나, 떨어지지 않게 집안의 온갖 물건과 간식을 채워넣는 나, 아이 둘을 재우며 그 보드라운 감촉과 부드러운 숨소리에 울컥 눈물이 나버리는 나.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사는 나를 그동안 왜 미워하고 있었을까 싶어서 또 눈물이 난다. 지난 5개월간 회사에서는 더 큰 노력을 하며 살아왔다. 어쩌면 스물네살의 내가 신입직원으로 입사했을 때보다도 더 큰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자그마치 17년차 선배이지만 후배들보다 아는 것은 없는 사람으로서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는 혼자만의 철칙을 만들어두고 배우지만 가르칠 수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해왔던지. 그 노력을 나는 모두 알고 있다. 그걸 작고 낮게 보지 말아야지.


휴직기간을 얼마나 알차고 치열하게 보내왔던지 높은 텐션을 그대로 가지고 복직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건 아주 작은 것 뿐이었고 내가 처음 마주한 감정은 굴욕감과 무력감이었다. 그 허망한 감정들을 어떻게 다뤄야할 지를 몰라 바로 이어 자괴감과 서글픔을 불러들였었다. 그리곤 내내 슬픔과 연약함의 상태로 살아왔다. 이런 감정들은 모두 나쁜 것이 아니었다. 마땅히 올 수도 있었을 감정들이었고, 앞으로 설렘과 기쁨을 불러들이지 말라는 법 또한 없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렵사리 얻게  작은 긍정의 신호를 마음에  붙들어두려고 한다. 오늘밤은 조금  설레는 작업을 하고 잠들려고 한다. 나에겐 작가 노트가 하나 있다. 거기엔 앞으로 쓰고 싶은 책의 제목, 아이디어, 간단한 목차, 에피소드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거기에  페이지를 추가하고 잠들어야겠다. 그렇게 써야만   있는  사람으로, 나는 새해를 맞이한다. 새해엔 누구에게나 새로운 페이지가 주어진다. 거기에 고운 내용의 일기를 채우고 싶다.


 마음은 원래 고우니까,

나는 고운 생각을 하는 고운 사람이니까.



* 곱다 (형용사)

활용형 : 고와, 고우니


1. 모양, 생김새, 행동거지 따위가 산뜻하고 아름답다.

2. 색깔이 밝고 산뜻하여 보기 좋은 상태에 있다.

3. 소리가 듣기에 맑고 부드럽다.

4. 만져 보는 느낌이 거칠지 아니하고 보드랍다.

5. 가루나 알갱이 따위가 아주 잘다.

6. 상냥하고 순하다.

7. 편안하고 순탄하다.

8. 그대로 온전하다.

9. 흔적이 없이 깔끔하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매거진의 이전글 불쌍해보이는 분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