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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Jan 09. 2023

겨울방학엔 도시락을 싸요.

방학 땐 급식실 운영도 안하고, 돌봄교실에서 제공되던 간식도 안나온다. 일하는 엄마에겐 별도의 휴가가 주어지지 않지만, 아이들 방학에 맞추어 1시간 일찍 일어나서 새벽 도시락을 싼다. 도시락 싸기 임무는 내 머릿속이 복잡하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마땅히 내가 할 일이다. 나는 이렇게 도시락을 준비했다.




여름방학 때 구입했던 3단 도시락이 있지만 그건 겨울에 사용하기에 적합치 않다. 추운날엔 보온도시락이 필요하다. 쇼핑몰 사이트에서 보온도시락, 초등도시락 등 몇 가지 검색어를 넣어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기에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보온력이 좋은 제품을 샅샅이 살펴본다. 아이가 둘이라 도시락이 두 개 필요하지만 우선 성능을 장담할 수 없으니 한 세트만 구입해본다. 배달되어 온 도시락이 아이들 마음에도 들어야 조금이라도 밥을 즐겁게 먹기에 남매에게 이 도시락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다행히 합격점을 받아 통과했다. 그리고 같은 제품으로 색깔만 다른 것으로 하나 더 구입했다. 그렇게 도시락은 우선 갖췄다. (쿠팡에서 써모스 도시락 구입 완료)


도시락 싸야 하는 날에 동그라미를 다 쳐보고 날짜를 세어보니 이번 겨울방학엔 꼬박 30일동안 도시락을 싸야 한다. 그렇게 도시락 시즌이 오면 나는 살짝 오금이 저리다. 밤에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의도치 않게 드라마에 빠져 몰아보기 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늦잠을 자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런 불미스러운 날에 대비하여 햇반도 조금 사두었다. 주부에게 햇반은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는 아이템이라 사면서도 늦잠잘 것을 단단히 대비하는 것 같아 살짝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그래도 구입은 했다.

(햇반 중에서도 '솥반'이라는 제품을 종류별로 모두 구입해보았는데 우리 아이들은 '흑미밤찰밥'을 잘 먹었다.)


여름에 복직을 앞두고는 살까말까 여러번 망설이던 에어프라이어를 구입했다. 다른 집들은 도대체 거기에 뭘 넣어서 그렇게 맛있게 먹는걸까 항상 궁금했는데, 막상 구입하고보니 거기엔 별 것을 다 구울 수 있었다. 도시락 시즌엔 냉동식품을 몇 종류 산다. 치킨너겟, 떡갈비, 바삭불고기 등.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씹는 맛이 있는 고기맛이 나는 반찬 하나가 꼭 필요하다. 여기에다 간식도 만들 수 있다. 고구마 껍질을 모두 벗기고 감자튀김처럼 얇게 썰어서 굽는다. 달콤하고 맛있는 간식이 완성된다. 어묵도 같은 굵기로 썰어서 넣어보니 맛있는 간식 겸 좋은 안주가 될 만한 음식이 완성된다. 그중에서 가장 신나는 음식은 칼집 난 약밤을 사서 해먹는 군밤이다. 정말로 우리 식구만 먹기엔 아까워서 따뜻할 때 경비아저씨께도 나누어드렸다. 하여튼 시간 설정을 해두고 다른 일을 하다가 와보면 완성되어 있는 그 음식을 반찬 한 칸에 넣는다.


항상 갖춰두고 도시락에 넣어줄 수 있는 밑반찬류도 구입해둔다. 김자반, 멸치볶음, 진미채 같은 것도 좋고 주말에 정말 기운이 남는 때가 있으면 직접 장조림을 만들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 칸은 김치를 넣어준다. 아이들은 김치의 잎파리 부분보다는 희고 힘 있는 줄기부분을 좋아한다. 그래서 초록색 잎파리는 온통 내 차지이다. 내가 이렇게 출근 전 새벽에 준비한 도시락을 아이들 가방에 하나씩 넣어주고 나는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한다. 더불어 아침밥도 차린다. 그렇게 아침이 북적인다.




도시락 싸간지 이틀째, 큰 아이가 말한다.


"엄마, 00이 도시락이 고급스럽더라구요."

"응? 어떤 반찬이 들어있었길래 고급스러워?"

"나도 자세히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고급스러웠어요."


도대체 새해에 열 살이 된 아들의 눈에 무엇이 그렇게 고급스러워 보였을까? 혹시 그집 엄마는 음식으로 캐릭터를 만드는 소풍용 도시락을 준비한 걸까? 아니면 귀한 식재료로 만든 고급 음식이 들어있었던 걸까? 더구나 몇몇 친구들은 보온도시락에 국까지 싸왔다고 한다.


뭐? 국이라고?

그 아침에 국을 끓여서 도시락에 넣는다고?


나는 국 대신에 사랑을 가득 채워주려고 한다. 그렇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싸는 도시락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본다. 거기엔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크고 따뜻한 사랑이 꼭꼭 채워져있다는 걸 아이들은 알지 모르겠다. 도시락을 싸다가 갑자기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이렇게 다 큰 어른이 되고보면 누구나 자기 혼자 큰 줄 아는 시기가 온다. 머리가 굵어져서 부모의 사랑 아래에서 컸다는 사실 자체를 잊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문득 내가 알람 소리에 용수철처럼 튕기듯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 엄마도 그랬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부들부들해졌다.


'엄마도 그랬겠지? 나랑 동생 도시락 싼다고 일찍 일어나고, 도시락 반찬 걱정 하셨겠지?'




도시락통만 산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도시락과 세트로 들어있던 젓가락은 아이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하지 않아서 수저 세트를 따로 구입했다. 이것도 적당한 것을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쿠팡에서 스마트슬림 케이스 수저세트 구입) 만족하면서 사용 중이다. 도시락 반찬이 서로 섞이지 않게 칸을 나눠야 하는데 이건 롯데마트 매장에서 실리콘으로 된 머핀틀(소)을 사서 잘 사용중이다.


동네 반찬 가게에서도 사보고, 인터넷에서 반찬을 주문해보기도 하는데 일회용 포장용기나 아이스팩 같은, 재활용이 어려운 쓰레기들을 함께 사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반찬을 만나기까지 몇 겹의 포장을 뜯다보면 차라리 내가 재료를 사서 만들걸 하는 생각이 든다. 음식이 묻어 그냥 버릴 수도 없고 설거지 하며 가볍게라도 씻어서 버리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직접 요리를 하는 것보다 일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 입에서 쓴 맛이 나는 것 같아진다.




아이들과 먹는 아침밥도 저녁밥 준비에도 이젠 도가 텄지만, 도시락만은 아직도 초보자 수준을 면치 못했다. 도대체 직장 다니며 다른 엄마들은 도시락을 어떻게 싸는 것인지 궁금했고, 하나씩 구색을 갖추는데에도 많은 노력이 들었기에 내가 써보고 좋았던 것을 다 적었다. 이 글을 다 쓰고는 통통하고 동글동글한 어묵과 소세지를 주문하려고 한다. 질리지 않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반찬을 만들려는 노력은 올 겨울 내내 이어질 것이다.


보다 영양가 있고 정성이 들어간 음식도 있을텐데 나도 알고 싶다. 계란말이 하나도 허술해서 잘 말지 못하는 엄마를 둔 우리집 남매는 다행히 먹성을 타고 나서 내가 어떤 수준의 요리를 해도 마치 오랫동안 굶주렸다는듯 맛나게 먹어준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엄마 배고파요."를 먼저 이야기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엄마는 뭐라도 더 좋은 걸 주고 싶다.


내내 우울하다는 타령을 하며 살던 요즘이었지만, 실은 엄마 역할 하나만은 구멍내고 싶지 않아서 안간힘을 써왔다. 직장인으로서는 매우 부실했을지 모르지만 그 기간 내내 좋은 엄마, 든든한 엄마, 사랑하는 엄마이고 싶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고 도시락 반찬 재료를 주문해야겠다. 이렇게 노력해며 살아가는 내가 좋아지는 순간이다.


얘들아, 맛있게 먹고  겨울 건강하게 지내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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