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째 나는 마음의 가시덤불 속에서 살았다. 그것은 심리적 감옥이기도 했다. 네모 반듯했고 밖으로 난 창은 전혀 없었다. 문 하나가 나 있는데 열쇠를 내 손에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갈 힘 하나 남아있지 않았었다. 거기에서 갓 빠져나오는 중인 지금, 도대체 어떻게 탈출을 마음먹을 수 있었는지를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보려고 한다.
회사의 인사이동이라는 상황적 변화도 큰 역할을 했지만, 마음의 아픔을 계속 의식적으로 써내려가던 글쓰기 노력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는 '우울한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울만큼 마음이 단단히 묶여있는 상황, 사방을 살펴봐도 혼자인 것 같은 고립감, 아무리 발버둥쳐도 현재의 상황에서 조금도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과 무력감. 그런 것이 한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마음의 괴로움이 정점을 찍던 어느 날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불꺼진 조용한 사무실에서 일기를 썼다. 그 행위는 긴급 수혈이나 음식을 씹어 삼키지 못하는 환자에게 링거를 투여하는 일과 같은 것이었다. 그날 손바닥만한 수첩 몇 장에 썼던 글이 내겐 큰 힘을 발휘했기에 핵심되는 내용만 적어봐야겠다.
(질문1) 지금 가장 힘든 것은?
- 아무것도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
(질문2) 그게 왜 그렇게 힘들지?
- 무력감과 좌절감, 패배감이 삶을 지배한다.
(질문3)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내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만약 타인이라면 뭐라고 첨언해줄거니?
-네마음편한대로해.
인사 결정 나는 거 보고, 정말 안되겠으면 그때 가서 결정해.
어떤 부서로 배치받든 하고 싶은 결정해.
그결정이무엇이든.
(질문4) 그럼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 잘될거야. 지금의이무력감보다는뭘해도나을거야.
소설 쓰는 법을 배우고, 지금의 이 아픔에 대해 써보자.
유명해지기 위함이 아니잖아. 살기 위함이잖아.
써야지살것같은데그사실을잊지말자.
죽을 것 같다고 느낀 그 마음, 그걸 잊지말자.
이 어색하고 괴로운 마음을.
'
위의 글을 쓰고 얼어붙었던 인생에 햇빛 한 줄기가 비치고 그것이 꽁꽁 언 마음을 녹이기 시작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마침 그 무렵 읽었던 책이 곽아람의 <쓰는 직업>이었다. 책을 읽으며 20년차 직장인의 글쓰기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새해가 되어 나는 18년차가 되었고, 곧 만 17년을 바라보고 있다. 2년만 지나면 나도 20년차 직장인이 된다. 풍파를 겪으며 계속 앞으로 시간을 밀고 나가는 지금이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라는 생각에도 접어들 수 있었다.
그리곤 나도 써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여전히 나와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나-회사'에 대해서 말이다. 이 특색있는 장소에서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던지에 대해 써보고 싶어졌다. 여태껏 누군가에게 나의 직업에 대해 속시원히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나름대로의 이유를 찾아보기도 했고, 그렇다면 이제라도 제대로 된 소개를 할 만한 말로는 뭐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이전에 출간된 두 권의 책과 어떤 연결고리를 찾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고, 그런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했다. 겸업과 관련하여 호된 신고식을 치뤘던 경험을 하곤 다시는 실명으로 책을 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 만약 새로운 책을 쓴다면 본래 이름을 밝혀야만 진정성이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 이 모든 생각을, 소중한 소망을 품을 수 있게 된 나의 마음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느꼈다. 이런 사고를 해보기 어려울 만큼 나는 무기력했고 우울했었는데 말이다.
이왕 새 마음을 먹었는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끼는 노트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아이디어를 적기 시작했다. 책의 제목, 부제를 찾기 시작했고, 책을 쓰면서 참고할 만한 시리즈를 구입했다. 대중 없이 떠오르는 글조각들을 얼기설기 엮는 것도 재미있었다. 가장 중요한 책의 기획 작업이다.
- 독자가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 내가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익은 무엇인지?
- 나는 이 책을 씀으로써 어떤 성장을 만들 수 있을까?
위와 같은 질문을 계속 던졌다. 그리고 관련된 생각을 계속 적었다. 그 과정을 반복하며 목차를 만드는 중이다. 나는 우선 큰 얼개가 나와야 마음놓고 한 꼭지씩 글을 쓰는 편이다. 그렇게 얼개를 만드는 것까지가 내가 좋아하는 과정이고, 막상 글을 쓸 때는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어려운 일인지)를 절감하며 분량을 채운다. 막상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이것이 공개적으로 할 만한 말인지를 검열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다.
그 우울했던 터널을 지나면서도 글쓰기를 놓을 수 없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장에 하소연하듯 적는 글과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있는 공간에 글을 게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그 차이는, 사람이 혼자 있을 때와 타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 때에 하는 말과 행동이 하늘과 땅처럼 달라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특히 나는 더 그렇다. 혼자 있는 것을 사랑하고, 혼자만의 상상 속 세상을 구축하는 것을 더 없이 좋아한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더욱 공개된 글을 쓰면서 내가 가진 마음의 혼란이 어떤 궤적을 그리는지 타인의 시선에서도 관찰될 수 있기를 바랐다.
지금은 댓글 기능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예전에 썼던 글에는 지금도 간혹 댓글이 새롭게 달리곤 한다. 어느 지점에서 읽는 이의 마음에 작은 움직임이 있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새로운 주제의 글쓰기를 위해 한글 프로그램을 열었고, 파일 이름에 소문자 a부터 시작해서 날짜와 함께 저장 중이다. 나는 또 이렇게 새로운 기록을 시작했다. 그 기록은 얼마간 걸어온 내 인생을 반추하고 의미를 찾는데 보탬을 줄 것이다. 그렇다. 가장 힘들 때 글을 썼고, 새로운 설렘을 글과 함께 느끼는 중이고, 내 삶의 쓸모가 글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글은 다시 누군가에게 읽힐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글을 공유하며 함께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