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주제에 들어서면 늘 할 말이 없다. 가장 자신없는 부분이면서 안좋아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겨울스포츠, 스키로 말할 것 같으면 내겐 컴플렉스이면서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는 종목이다.
아마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내 스키 역사는 30대에서 마무리 되었을텐데, 이 컴플렉스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아서 남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스키타러 다니기 시작했다.
작년엔 아들이 1학년, 올해는 딸이 1학년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아들과 남편은 스키강습을 받던 작년에, 나와 딸은 스키장 옆에서 눈썰매를 탔었다. 하지만 올해는 나와 딸까지 스키 대열에 합류했다. 이것은 혁신적인 일이다.
딸은 외모와 성격까지 아빠를 닮았는데, 안타깝게도 운동신경은 내 것을 닮았다. (미안해 딸아) 그래서 딸이 몸으로 하는 활동을 주저할 때면 나는 어김없이 이런 (부실한) 몸을 가진 엄마도 도전한다는 것을 꼭 보여주게 된다. 안전체험장에 가서 위험해보이는 활동을 자원해서 한다던가, 이번 스키 강습이 그렇다.
그 미끄러운 눈길에 그것도 경사진 곳에서 저절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스키를 어떻게 컨트롤 할 수 있단 말인가? 20대때 남들따라 스키장 가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였기에 초급 슬로프를 기어내려오는 것이 내가 가진 실력이었다. 하지만 딸은 인생의 큰 즐거움인 신체활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나지 않길 바랐다.
스키선생님은 너무 친절했다. 만나자마자 딸의 이름을 묻더니 강습 내내 최고의 선생님이 되어주셨다. 스키를 못타던 어린이가 탈줄 아는 어린이로 변화하는 과정이 신기했다. 가족강습으로 나도 함께 배웠다. 야매로 배운 스키 실력이 정석으로 바뀌어가는 것 또한 신기했다.
체육은 내게 늘 멀기만 했다. 달리기도 하다가 그만두고, 필라테스도, 요가도, 걷기도 늘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야말로 숨쉬기 운동만 하고 산다.
선생님은 스키 강습자에게 "잘 한다. 운동신경이 좋다."라는 칭찬을 후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스키 강사 자격 교육할 때 그렇게 가르치는 것 같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운동신경에 대한 칭찬을 받아가며 머쓱한 마음으로 눈길을 내려왔고 다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남편과 아들은 중급코스에서, 딸과 나는 선생님과 함께 초급코스에서 하루를 보냈다. 스키부츠 안의 내 정강이는 스키복과 부츠사이에서 까지는 줄도 모른채 상처가 났고, 발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욱신욱신하게 아프다. 온몸이 아프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내가 스키를 탔다니. 딸도 배워서 함께 탔다니. 딸은 오전 오후 합쳐서 4시간 강습만으로 선생님 생각이 자꾸만 나는지 여행지에서도 일기를 쓰고 잠들었다.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 스키를 탈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을 안고 숨소리를 내며 자는 중이다.
작년부터 우리 식구는 국내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전히 내가 몇 월에 어느 고장으로 가서 무얼 보고 무얼 먹고 왔는지 기억은 못한다. 내게 모든 여행은 그저 짧은 영상, 혹은 좋은 감정으로 남는다. 맛집은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다. 그보단 여행지에서 보는 가족들의 새로운 모습, 특히 아이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게 가장 기쁘다. (물론 기뻐하는 모습을 보려면 맛있는 집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는 확실하다. 우리 가족 마음 편하고 행복한 것에 두려고 한다. 그리고 여행이 거듭될 수록 못한다고 생각하던 것을 그래도 도전해볼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좋겠다.
겨울스포츠는 내게 그런 대상이었다. 너무 멀어서 가보고 싶다는 마음조차 들지 않는 것. 하지만 이젠 온몸에 크고 작은 통증을 느껴가면서도 기꺼이 타고 싶은 것이 되었다. 그것도 아이와 함께. 스키장에서 보면 아이는 더 작아보인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타서 아이를 보호하면서 탈 수 있으면 좋겠다.
일상에서 벗어나 까만 밤에 별이 빽빽한 곳으로 여행을 왔다. 도무지 현실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던 나에게 의식적으로 낯선 곳을 선물하고 싶었던 남편 덕에 이곳까지 왔다. 이렇게 온몸을 바람으로 갈랐던 경험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유효할 거라 믿는다. 시원한 바람, 두려워하던 대상도 도움을 받아 연습하면 그리 어렵지 않은 순간이 온다는 확신, 아이를 위해서 하는 일이 결국 나를 일으켜세우기도 한다는 걸 깨닫는 것, 이 모든 걸 새기며 여행지에서의 밤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