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이올렛 Jan 29. 2023

글 쓰고 싶다는 욕망의 끝에 가보면

평일엔 회사에 다니며 아이들을 돌본다. 주말엔 집안일을 하며 아이들을 돌본다. 평일과 주말, 어느 지점을 뜯어보아도 한가롭게 남는 시간이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짬을 내어 하고 싶은 것은 분명히 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그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책상 위가 늘 수북했었다. 딱 작년 이맘때쯤 첫 책의 초고를 완성하겠다고 매진하던 때라 관련 자료를 모았고, 엄마 힘내라고 수시로 그림과 편지를 가져오는 아이들의 작품들이 더해졌으며, 집안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온갖 물건들이 내 책상을 차지했었다. 그렇게 나의 책상은 나만의 것이라기보다는 온 집안 식구와 그들의 물건으로 부피가 커져갔다.


그렇게 키가 점차 높아져만 가던 나의 책상을 1년여만에 싹 청소했다. 자매품으로 나의 책장에 있던 모든 책과 물건들을 전부 바닥에 쏟아낸 후 정리를 했다. 속이 다 시원하다. 정리를 하다보니 지난 1년이 함께 쏟아져 내려왔다. 어떻게든 복직하기 전에 책을 써보겠다고 발버둥치던 마음,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며 한 켠에 회사 관련 서류를 모아두었던 마음, 복직 후 온갖 병원에 다니며 과연 앞으로 멀쩡히 사람 노릇 하며 살 수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마음까지, 그 모든 마음이 나의 책상과 책장에서 발견되었다. 마음이 일렁였다.


엄청난 물건들을 버리고, 말끔해진 책상에 앉았다. 늘 미루기만 하던 바느질을 시작했다. 시간이 여유 있을 때 해야지, 마음이 편안할 때 해야지 하며 바느질을 기다리고 있던 터진 옷들 몇 가지를 차례로 손에 들고 하나씩 꼬맸다. 바느질 할 때에도 내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행여 실을 낭비하게 될까봐 바느질 해야 하는 구간을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실을 그에 꼭 맞게 잘라 매듭을 만들고 꼬매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영락없이 실이 부족해서 매듭 한 번을 만들어 마무리 하고, 실을 다시 꺼내어 새롭게 이어간다. 혹시 실수할까봐, 시간 낭비할까봐, 에너지까지 낭비할까봐 늘 철두철미하게 계획한 후 흐트러짐없이 실패없이 해내고 싶어하며 전전긍긍하는 내 마음이 바느질에도 투영된다.


아들이 종이접기를 좋아한다. 집에도  권의 책이 있는데 그것으로는 충족이 안됐는지 도서관에서 중간계 종이접기 책을 빌려와서 공예품에 가까운 종이접기를 하려고 벼르고 있다. 그러려면 일반 색종이로는 안되고 특수종이가 필요하다. 쿠팡에서 하루만에 오는 것으로 주문하여 아이에게 내밀었더니 '엄마 사랑한다' 말이 돌아온다. 사랑받는 일이 이렇게 간단했구나. 아들은 이야기한다. "절대로 실수하면  되겠다, 미리 작은 색종이로 연습해보고 엄마가 새로 사준 종이에다가 해야겠다."  말을 듣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말은 사실 아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책상과 책장을 정리하면서도, 밀려있던 바느질 거리를 만지작 거리면서도, 아들의 종이접기를 위해 재료를 주문하고 내밀면서도, 한결같이 생각했던 것이 있다.

'! 어서  써야 하는데. 집안일 어서 마치고, 어서 아이들 보살핀 후에   쓰고 싶은데...'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는 동안     마음 편히  시간은 없었지만 나는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연휴에는 자식 노릇, 이모 노릇, 작은 엄마 노릇을 했으며, 이전 팀과의 이별에서는 겸허한 팀원 역할을 했고,  출근했던 새로운 팀에서는 밝고 산뜻한  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주말이 되어서도 삼시 세끼 밥을 차렸으며 얼어버린 세탁기를 녹여보겠다고 벼르고 있는 주부 역할도 착실히 수행중이다.


하지만  모든 역할들 속에서도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가진 자아. 그렇다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의 끝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 걸까? 바느질을 한땀 한땀 하면서 어서 이거 마치고 아이패드 열어서  문장이라도 적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는 나의 마음 관찰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쓰고 싶니?'

'잘 살고 싶어. 나에게 어울리는 삶을 만들며 잘 살아보고 싶어.'


모든 이가  살고 싶을 것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사는 방법은 모두 다를 것이다. 나는 글을   마침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고, 현실에서 서툴었던 많은 면이 마침내 용서받고, 위안받고, 치유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랬구나,  해보고 싶어서 그런 말과 행동을 했었던거구나.' 마치 반추동물처럼 하루 동안 했던 , 내뱉은 말들을 다시 뱉어내어 해체하고 분해하며  말의 끝에 있던 진짜 의미를 나는 다시 바라봐준다. 그러다보면 이해가 간다. 그랬었지, 그래서 그랬구나.


삶을 후회하며 사는 날 보다, 음미하며 사는 날이 조금 더 많아지길 바란다. 그때 왜 그랬어, 그 말 왜 했어? 라며 얼마 남지 않은 용서 쿠폰을 손에 팔랑거리며 힘겹게 살아온 하루를 화내며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그럴만했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고 쓰다듬듯 말하고 내일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밤을 자주 갖고 싶다. 그러려면 내겐 글 쓰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보약을 먹듯, 조금 더 잘 살아갈 연료를 채우듯.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의 끝엔 정말  살고 싶다는 처절한 마음이 숨어 있다.  마음을 생각하면 코끝이 시려오고, 눈이 빨개져버린다. 목에도 울컥한 것이 막힌다.  편으론 내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처럼 사라지지 않는,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강하게 가질  있는 것은 물론이고, 글감도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고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글자라도 적는 습관을 만들  있어서 말이다.


오늘은 이렇게  자를 적었으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한파로 얼어버린 베란다 상황도 수습하고, 얼어버린 세탁기를 고쳐 빨래도 하고 틈틈이 아이들 배도 부르게 채워주며  마음도 따뜻하게 채우는 하루를 만들어보고 싶다.  쓰고 싶은 마음은 결국  살고 싶은 마음과 닿아 있고,  살고 싶은 마음은 또한 나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도 맞닿아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내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지막 날과 첫 날의 경계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