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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Feb 18. 2023

남에게 하는 싫은 소리

지난 주 첫 소설쓰기 수업에 참여했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수업 시작시간보다 훨씬 일찍 강의실 주변에 도착해서 빵과 음료를 사먹고 손에 잘못 주문한 얼음 음료까지 들고 딱 맞게 앉았다. 두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듯 보였고 젊은이들 사이에 앉아서 소설의 3요소, 구성의 3요소에 대해서 배웠다. 소설가이자 글쓰기 강사인 선생님께서는 절대로 그만두지 말고, 지각해도 좋고 중간에 결석해도 좋으니 끝까지 함께 가자고 이야기하셨다. 중간에 솔솔 졸음이 왔고, 이것도 나이탓인가 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20대로 보이는 청년들 사이에서 나는 꿋꿋하게 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40대가 되어서도 소설가가 되고 싶어하는 내가 기특하고 동시에 측은했다.


새로운 부서로 옮긴 지는 꼭 3주가 되었다. 3주 * 7일 = 21일. 습관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21일이라는데 그 말이 맞는 듯 하다. 어느덧 이전 부서는 생각도 나지 않을만큼 저 멀리로 사라졌고, 새로운 부서가 더이상 낯설지 않다. 업무도 분위기도 환경도 잘 익히고 적응해나가는 중이다. 이곳은 이전 부서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업무 성격도 다르다. 모든 부서는 각자의 스트레스 포인트가 있다. 이번 부서는 그동안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시간에 쫓기고 '궁색'한 환경에서 일을 펼쳐왔다는 것이 보였다. 전임자에게 인수인계 받아서 일을 해보니 '동네북'처럼 여기저기서 두들김 당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덧 18년차에 접어든 나의 직장생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젠 만 20년을 꼭 채워 명예퇴직 하고 싶은 마음을, 회사 다니는 몇 년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에 쏟아야 한다. 그러려면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꺼내서 쓸 날도 온다. 같은 회사지만 부서간 알력 같은 것이 존재한다. 마치 힘겨루기를 하는 것처럼, 매출을 많이 만들어내는 부서는 아무래도 그를 지원하는 부서들에 비해 의사결정권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월급 체계에 있는 직원들끼리 서로를 얕보거나, 가볍게 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못된 관행처럼, 회의 시간을 마음대로 변경하고, 일의 마감기한을 일방적으로 정하는 등 특정 부서에서 우리 부서를 못살게 굴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전임자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오래된 분위기이기 때문에 바꿀 수 있는게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새로운 담당자인 나보고 할 수 있으면 분위기를 바꿔보라고 화이팅을 외치는 것이 아닌가? 이럴 때 나의 나이 많음이 보탬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피식 웃음이 났다. 저 선배는 '라떼' 선배라는 딱지가 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어느덧 회사에서 너무 오래된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full로 당겨 쓴 선배라서 때로는 후배들보다 직급이 낮다. 그들과 상호 존대를 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업무를 한다. 하지만 불합리한 지점이 있을 때 내가 얼마만큼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또 골몰해보기도 한다. 어제는 누가 봐도 명확하게 상대부서가 잘못 처리한 일이 있었다. 나는 지금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한 번 어물쩍 눈 감고 넘어가면 앞으로 이 일을 하는 내내 끌려 다니겠구나! 그리곤 바로 내가 쓸 수 있는 명확한 카드를 썼다. 이제 앞으로는 업무 스케줄을 우리가 먼저 잡겠다고, 이런 식으로 한정된 시간을 상대 부서에서 오래 붙잡고 있으면 책임은 우리가 지되 일은 추진하기 힘든 곤란한 상황에 맞닥드릴 수 밖에 없다고. 그러므로 오늘 회의는 취소 처리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상대부서 담당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앞으로는 잘 관리하겠다고, 다시 생각해줄 수 없겠느냐고...


그 전화통화를 하며 나 역시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어야 했다. 나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입으로는 싫은 소리를 하고 있지만, 부서간 평등한 일처리를 위해 어떤 부서가 다른 부서 위에 군림하듯 있게 하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했다. 암묵적인 관행을 깨는 일이 불편했다. 다시 회의 일정을 잡자는 상대방의 떨리는 목소리와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하는 나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오고갔다. 그녀가 전화 통화 밖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보이는 듯했다.


결국 극적으로 이야기를 모아 다시 회의를 했고 마치고 나오며 그녀에게 음료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차츰 일 하는 방식을 정립해나가고, 일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져나간다. 때로는 무한 칭찬을 하고, 때로는 싫은 소리를 한다. 가장 곤란하고 싫은 순간은 상대에게 업무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어야 할 때이다. 물론 감정적으로는 당신을 위로하고 싶다, 그 어려움 충분히 공감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내 업무를 기준으로 명확한 거절, 부정의 의사와 개선이 필요하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 쉽지 않다. 사무실에 있는 내내는 물론 어제 퇴근 후 집에 와서까지 상대방에게 가졌던 미안한 마음, 그가 느꼈을 부담감 같은 것이 나를 감쌌다. 나 역시 미숙한 일처리로 상대 부서에게 그런 소리를 들어가며 억울한 마음이나 갖고 싶지 않은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있기에. 다만 내가 그런 소리를 해야 할 때에도 군림하듯 하지 말고,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함께 웃으며 일할 수 있는지 방법을 더 찾고 싶다.


그동안 여러모로 무시 당하며 일했을 전임자의 구겨진 마음을 인수인계 받는 내내 목격했다. 새로운 업무 절차를 마련해가며 나는 때때로 저항에 부딪힐 지도 모른다. 다행히 새로운 팀장님이 새로운 업무 방향을 함께 설정하며 직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회사 일은 단순하고 명쾌하게, 회사에 있는동안만 신경쓰며 합리적으로 처리해나가고 싶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나에게 잘 어울리는 글을 계속 써나가고 싶다. 휴일엔 소설쓰는 것을 배우러 간다. 평일엔 직장일을, 휴일엔 글쓰기 공부를 하며 산다. 내 블로그를 봐왔다고 폭탄 선언을 하는 후배들, 내가 휴직 중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아는 체 하지 않고, 묵묵히 응원하고 있던 후배들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그때마다 매번 놀라고,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실감한다. 이 공간 또한 언젠간 발견(발각) 되겠지?


언젠간 내가 쓰는 모든 글이 어떤 식으로는 발각 - 발견 - 추천될 수 있길 바라며, 개개인이 느끼는 간지러운 불편감, 답답함을 글로 긁어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지금 내가 내 속의 아픈 부분, 괴로운 부분을 긁어가며 사는 것처럼 그렇게 언젠간 내 글이, 도움이 필요한 이의 심정에 잘 닿기를 바란다. 여기에 아파본 사람, 고민해본 사람의 글이 이렇게 펼쳐져 있으니 당신도 힘을 내라고, 그렇게 내 글이 말을 했으면 좋겠다.


아침이 밝는다. 금요일 밤이면 기운이 빠져서 설거지도 못하고 잘 때가 있는데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설거지통에 꼬박 하룻밤을 그대로 대기하고 있던 그릇들을 씻고, 아침을 해서 아이들을 먹이고, 나는 지하철을 타고 소설 수업 들으러 향한다. 누가 시킨 일도, 누가 강요한 일도 아닌 것을 하려고 발걸음을 움직인다. 책상엔 소설책 몇 권이 있고, 카톡엔 도서관에 신청해둔 새책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와 있다. 그렇게 글 쓰고 싶어하는 직장인 엄마는 주중의 열기를 식히고, 주말의 에너지를 붙들며 살아간다. 이런 생활을 몇 년간 더 해보려고 한다. 나의 이중 정체성(직장인 + 글 쓰는 사람)을 꽉 붙들어매고 나를 응원해가며 오늘도 씩씩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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