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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렛 Jul 26. 2023

점심시간만큼은 내 거!

직장생활의 오아시스

나는 정말 혼자 있는 게 좋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서 방전됐던 에너지를 차분히 충전하고, 다시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살아갈 힘을 길러낸다. 그렇다고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과묵하게 있는 것도 아니다. 애써 태연한 척, 밝은 척, 당당한 척을 한껏 하다가 다시 혼자인 시간으로 돌아오면 그때서야 느끼곤 한다. 내가 얼마나 무리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섞이고자 노력했는지를. 마치 몸의 색을 바꿔서 보호색으로 둔갑하듯 나도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예민함을 최대한 숨겨가며 직장생활 중이다. 아, 이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나말고는 아무도 모를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사막 속의 오아시스 그 자체이다. 점심시간이 없었더라면 정말로 회사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때에 비로소 나는 숨다운 숨을 쉬고 나다운 내가 되어 애잔하게 나의 육신을 위로한다. 수고했다. 오전도 수고했어. 오후도 한 번 힘내보자.


복직한 지 1년이 되어서 점심시간 루틴을 딱 정립했다. 매일 수건과 운동복을 출근길에 챙겨가고 점심시간 시작과 동시에 "점심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씩씩하게 걸어서 일터에 마련된 헬스장으로 향한다. 거기엔 98% 남성, 단 2%가 나를 포함한 여성이지만 괜찮다. 여러 회사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소속이 섞여서 결국 모르는 사람들과 공간을 나눠서 쓰는 것이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인 것이 낫다. 거기에 우리 회사 사람도 운동하러 왔더라면 내가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또 운동을 포기해 버렸을 수도 있다.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탈의실에서 운동복으로 산뜻하게 갈아입고 러닝 머신으로 향한다. 뛰면 힘이 들고, 그러면 포기하고 싶어질까 봐, 빠르게 걷는 것으로 유산소 운동을 대체한다. 운동장에서 빠르게 걷는 아주머니들처럼 손을 힘차게 젓는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내가 어릴 때 봤던 그 아주머니들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젠 내가 누구처럼이 아니라 그냥 아줌마로서 아줌마 걸음을 걷는구나 싶다. 


10분 정도 뛰고 나서는 어슬렁거리며 비어있는 운동기구에 자리를 잡고 대충 10~15kg 정도로 무게를 조정하고 근육 운동을 시작한다. 팔과 어깨를 이용해서 뭘 밀거나 잡아당긴다. 허리와 다리를 이용해서 역시나 뭘 밀거나 잡아당긴다. 위, 아래, 양옆, 앞뒤로 다양하게 근육을 써서 움직이다보면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몸을 위아래로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고 뻐근하게 느껴지는 근육통을 즐겨본다. 이젠 그 통증이 아파서 울부짖게 만드는 허리 통증보다 행복한 것이라는 걸 확실히 안다. 


그렇게 운동시간을 알차게 쓰고 다시 탈의실에 돌아와서는 푸시업을 10개 정도 더 한다. 나 아직 기운 남아 있어! 정말로 건강해지고 싶단 말이야! 같은 다짐을 하면서. 개운하게 씻고 다시 직장인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다음엔 바로 옆에 붙어있는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매일 비슷한 반찬이 반복되지만, 누군가 따뜻하게 마련해 준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이건 전부 운동을 하고 왔기 때문에 생긴 뿌듯함 덕분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맛없는 밥이라며 불평하지 않았을까?


여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혼자서 한다. 그게 얼마나 나에게 평온함을 주는지 모른다. 직장에서의 하루중 완전히 혼자 보낼 수 있는 그 한 시간이 없었더라면 나는 숨이 막혔을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이전 부서에서 하루종일 사람들과 촘촘히 붙어 앉아 일을 하고 점심까지 같이 먹고, 시답지 않은 연예인 이야기와 투자 이야기에 호응을 하다가 기운이 빠지곤 했다. 관심 분야가 아닌 것에도 열심히 맞장구를 치고 호응을 해주다가 정작 내 휴식 시간은 단 1초도 남아있지 않곤 했다. 그걸 어리석다고 생각하며 자책하기까지 했으니 괴롭지 않을 수 있었겠나 싶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 혼자만의 점심시간 루틴을 만들어내기까지 나에게도 많은 결심이 필요했다. 팀 점심을 다 같이 먹어야 분위기상 매끄러울 것 같은 때에도, 저는 따로 먹겠습니다. 라고 당차게 이야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던가. 직장 연차와 상관없이 당최 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속으로 얼마나 많은 날 울었던가. 


점심시간의 자매품으로 업무가 공식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자투리 시간이 있을 때 '3분 그림 그리기'도 하고 있다. 시계를 확인한 후 얼른 손바닥만 한 스케치북을 꺼내서 까만 플러스펜으로 형태만 쓱쓱 그린다. 그렇게 사무실 내 자리에서 보이는 작은 소품들은 나의 모델이 되어 스케치북에 들어와 있다. 그 시간도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그렇게 고된 직장생활 중에 나를 살리는 특별한 타임을 꼭 가지려고 노력한다. 남이 만들어주지 않는 그 시간들 덕분에 자꾸만 올라가는 긴장도와 예민도, 불안을 낮춰가며 한 사람분의 일을 해낸다. 그럼에도 퇴근 후에 집에 와선 이불속을 파고들며 그날 있었던 일 중에서 억울한 일, 잘못 처리한 일, 속상한 일을 끝없이 펼치며 속아파하곤 하지만 자꾸만 이겨내 보려고 애쓴다. 예민해도 괜찮아. 지금 모습 그대로 충분해. 걱정 마. 모든 면에서 나아질 거야. 하물며 나아지지 않고 지금 이대로라고 해도 아무 문제없어. 오늘도 나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괜찮아, 걱정 마. 잘하고 있어라고.


(원고지 13.8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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