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요리 실력이 이럴 거라곤 결혼 전엔 생각지 못했다.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다니던 직장인 시절까지 내가 주도적으로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 설거지 조금에 라면 끓이는 것 정도가 주방일의 전부였다. 가끔 명절에 전 뒤집기 정도를 돕곤 했으니 요리를 모르고 결혼한 것이다. 맞벌이 부부로 시작했지만 요리는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식재료를 구입하고, 소분해서 보관하고, 냉장고 속 재료를 스캔해서 요리를 하고, 마무리로 설거지까지. 요리는 한 접시의 행복 뒤에 수많은 노동이 숨어있는 일이었다.
주부 역할도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곧바로 아기 엄마가 되었다. 태어난 지 사 개월이 지나자 곧바로 이유식 시즌이 다가왔다. 그때까지도 괜찮았다. 재료를 청결하게 손질해서 곱게 갈아 익혀주면 잘 먹었다. 그렇게 아이는 자라났고 유아식에 이어 무엇이든 먹성 좋게 먹기 시작하자 나의 요리 실력은 금방 들통나고 말았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해주는 심심한 음식을 먹고 자랐다. 태어나면서부터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는(맹숭맹숭한) 음식을 먹었던지라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식사가 그렇게 맛있었는지 둘 모두 '밥 잘 먹는 아이들'로 정평이 나있었다. 왜 그렇게 밥 잘 먹는 아이들이었는지는 엄마인 나만 알고 있었다. 소금 간도 잘하지 않고 각종 소스류를 넣는 것도 조심하며 아이들을 키웠던지라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음식들이 무척이나 입맛에 맞았던 모양이다. 일반 식당에서 먹는 외식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짭조름하고 달콤한 각종 음식들에 아이들은 꽤나 신속히 밥을 잘 먹었다.
지금도 내심 손맛이 좋은, 요리 잘하는 사람들을 흠모하는 마음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 부분, 요리. 그걸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존경하는 마음까지 든다. 왜 내 요리실력이 주부 십 년 차에도 제자리걸음인가 생각해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구나 싶다. 재료를 손질하고 다듬으며 꼼꼼히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건강을 생각한답시고 양념도 적게 넣다 보니 대체로 맛이 없다. 시판 조미료도 안 쓰고 그렇다고 천연 조미료를 준비해 둘 정신도 없다.
평일엔 퇴근하면 기운이 없고, 주말엔 역시나 몰아서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주방에 붙어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매일 간단한 요리만 돌려가며 먹게 된다. 하다못해 된장찌개 하나도 재료 손질하는 게 엄두가 안 나서 집에서 안 한지 좀 되었다. 매일 포장만 뜯어서 구워 먹는 요리, 물에 끓이거나 데쳐서 바로 먹는 요리, 생으로 먹을 수 있는 요리 메뉴 위주로 먹고 산다.
아이들은 이런 열악한 요리 환경에서도 잘 먹고 잘 자라고 있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엄마 요리에 빈틈이 많다는 걸 진작에 눈치챘는지 딸은 학교 방과 후 수업의 쿠킹클래스에 다니고 있다. 어찌나 뚝딱 멋진 요리를 만들어 오는지 귀엽고 기특해죽겠다. 아들은 전기레인지 사용법을 익혀서 계란프라이를 주식처럼 자주 해 먹고 있다. 이젠 엄마가 집을 비워도 아이들끼리 한 끼 정도 챙겨 먹는 건 일도 아니다. 언제 이렇게 컸지?
아이들이 휩쓸고 간 주방을 보면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예전의 나였더라면 주방이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며 짜증을 냈을 텐데 문득 부끄러워졌었다. 내 요리 실력에 구멍이 많아서 아이들이 일찍부터 그걸 채우려고 노력하는 건데, 내가 잔소리를 해서 쓰겠나 싶었다. 아이들끼리 까치발을 들거나, 발판을 데고 올라서서 안전하게 그리고 맛있게 요리를 해보려고 애를 썼을 모습이 그려졌다.
자기들끼리 전자레인지에 밥도 데워먹고, 계란프라이도 해 먹고, 냉장고 속에 있는 후식까지 알뜰히 챙겨 먹었을 그 동선이 그려지면서 둘이 무슨 대화를 하며 냠냠 쩝쩝 밥을 먹었을지도 궁금해진다. 어른이 될수록 먹고사는 문제가 보통 일이 아닌 게 된다. 아이들이 자기 밥그릇을 잘 챙기는 아이들로 자라나길, 엄마인 나는 아이들이 자기 길을 잘 찾아나가길 바라며, 그때까지 먹고사는 문제없이 쑥쑥 성장해 나가는 걸 도울 수 있길 바란다. 때로는 주방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음식들도 조용히 치우며,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요리할 수 있게끔 주방 환경도 정비해 가며, 잘 먹고 잘 자라는 아이들로 성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