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이올렛 Aug 04. 2023

커피 못 마시는 병

"저는 따뜻한 우유 마실게요."


스타벅스에서 스팀 밀크를 주문하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와, 우유 마시는 어른이 다 있네. 왠지 어울린다. 참 예민하신가 봐요. 반응은 가지가지이다. 그 말들을 모아보면 한 문장으로 번역해 보면 이렇다.


"당신은 커피 못 마시는 병에 걸렸군요."


한국 사회에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회식 자리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신 후, 2차로 노래방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핍박받던 시대가 있었다. 싫어도 좋아도 상사의 18번 곡을 명곡이라 생각하며 탬버린을 흔들곤 했다. 요즘은 단연코 테이크아웃 커피의 전성시대이다. 일회용 플라스틱컵에 담기는 아아를 마시지 못하고 다른 음료를 시키는 사람은, 그것도 밤에 잠이 안 와서 카페인 음료를 못 마시는 사람은 병 걸린 사람 취급을 받곤 한다. 


처음엔 이게 카페인 때문인지 몰랐다. 오후 4시쯤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신 적이 있는데 그날 새벽 4시까지 잠을 못 이뤘었다. 콜라도 그렇고, 녹차, 홍차, 커피는 물론. 잘못 걸리면 초콜릿이 든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잠이 안 오곤 했다. 10대 때에는 카페인 함유 식품을 먹을 일이 별로 없었고 20대까지도 젊은 혈기로 어찌어찌 버텼다면 30대부터 본격적으로 카페인 복용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밤을 아주 꼴딱 새고 나서야 이게 카페인 때문이라는 걸 아주 느리게 깨달았다. 


임신과 모유 수유 중에는 어차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고, 아이들이 좀 크고 나서 내가 무슨 음식이든 먹을 수 있기 시작하면서부터 가끔 기분풀이용으로 달콤한 커피를 마시곤 했다. 괜히 폼 잡는다고 카페에 가서 남들이 커피 시킬 때 근본 없이 카페인 음료를 따라 시켰다가 밤을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밤에 혼자서 견디기 어려운 공백을 만들어내고서야 한동안 커피를 안 먹곤 했다. 


그런데 커피는 좋은 점도 있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 커피를 먹으면 그 고소하고 쌉쌀하고 달콤한 맛에 기분이 잠깐이나마 좋아진다. 더구나 카페라테를 먹으면 따뜻한 우유의 든든함까지 더해져서 썩 흡족한 기분이 된다. 하지만 커피점을 찾는 날이 많아지자 내 기분 관리는 점차 엉망이 되어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꾸 커피 생각이 났다. 밤에 못 잘 걸 알면서 커피를 홀짝이다가 잠이 안 와 고생을 하는 어리석음이 이어졌다. 




요즘은 카페인 음료를 딱 끊었다. 대신 카모마일 티백을 갖춰놓고 하루에 한 잔씩 마시고 있다. 여러 브랜드의 카모마일티를 사보고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브랜드를 찾았다. 그 순수하고 새초롬한 향기를 맡으며 마음을 달랜다. 


마음이 끝도 없이 가라앉는 날이 이어진다. 작은 일에도 뾰족한 가시에 몸이 찔리는 것처럼 민감하게 느껴진다. 아무 뜻도 아닌 말에도 혼자 가슴이 울렁거려서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회사와 집, 그 둘 사이를 오가며 사는데 이렇게 글 쓰는 시간을 제외하곤 늘 누군가와 함께 있다 보니 정말 처절할 정도로 혼자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함께 있어서 위로받는 것도 크지만, 나는 혼자 있으면서 스스로 기력을 충전하는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자꾸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 진다. 카페인 없이, 허브티의 도움을 받아 차 한잔의 명상시간을 만든다. 그 시간에는 내 생각만 하려고 한다. 세상 근심 전부 내려두고 그냥 내가 행복해질 만한 생각만 하기. 다음 달부터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다. 이번 달은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으로 보내려고 한다. 그럴 자격이 있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 너무 열심히 살았어. 그만 열심히 살아. 차 한 잔 해.

매거진의 이전글 요리 못 하는 당당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