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은 업무에 도움이 될 만한 교육 안내문이 올라오자마자 신청을 했었다. 외국 공항에서 우리 공항의 노하우를 배우러 온 외국인들도 함께 참여하게 될, 100% 영어 강의라는 게 유일한 장벽이었지만 큰 걱정 없이 우선 신청을 해두었었다. 막상 교육이 시작되고 한국인과 외국인이 섞인 곳에서 영어로만 대화를 하고, 강의를 듣고, 발표 수업에 참여하려니 평소 조용히 내 책상에 앉아 맡은 업무를 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과 압박감이 그제야 느껴졌다.
보통은 강사님의 눈을 마주 보고 강의에 집중하는 스타일의 학생이지만, 그러면 감정 언어를 읽는데 에너지가 분산되어 차라리 내 앞에 놓인 노트북 속 강의교안을 바라보며 귀를 최대한 열고 '듣기'에 집중하는 게, 어쩌다 얻어걸리는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걸 깨달았다.
외국 공항에서 온 교육생들과의 스몰토크도 내겐 생각지도 않았던 높다란 장벽이었다. 다행히 영어에 능통한 후배직원이 우리 공항 직원 전체를 대표하여 환대하듯 사교적으로 교실 분위기를 이끌었지만, 그의 바로 뒷자리에 앉은 나는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만 내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와, 이건 단기간의 영어공부로는 넘을 수 없는 멀어져 버린 강을 바라보는 기분이야. 영어가 이렇게 나와 영영 멀어지는구나.
그래도 어느 그룹에서 내가 퍽 부족한 수준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으로 당당히 선택해서 들어갔다는 것에 그나마 작은 위로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을 배웠잖아. 장하고 기특하다. 계속 토닥토닥해주며 일주일을 이어왔다.
마지막날은 다른 일정이 있어서 친정 근처의 교육장으로 향하기 전에 아침 일찍 친정집에 들를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생겼다. 연락 없이 불쑥 찾아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파자마 차림의 아버지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맞이하셨다. 엄마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셨단다. 아버지가 차려주시는 따끈한 누룽지와 김치로 아침식사를 했다.
부모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까? 아버지의 눈동자 속에 들어있는 나는 이제 나기 시작한 흰머리와 주름진 피부의 사십 대 여성이 아니라, 어린이 혹은 청소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나를 보는 눈빛에서 그렇게 느낀다. 때로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나도 역경을 극복해 가는 당당한 주체로 살고 있는데, 늘 부족함을 지적하는 어미 아비의 매서움이 따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부모를 안심시키는 게 내 주된 일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누룽지를 마시고, 과일을 먹으면서 또 습관적으로 아버지를 안심시키겠다고, 내가 이만큼 잘 살아가고 있다며 말을 뱉었다. 직장생활 내내 수없는 어려움을 토로했던 끝에 이제는 나도 씩씩하고 다부지게 하고 있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더 이상 남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을 긍정하며 살게 됐다고. 그리고 이어진 아버지의 말씀.
"아빠, 지금 함께 일하는 상사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너도 나중에 그런 사람이 돼라."
그 말은 나를 멈추게 했다. 나는 직장생활 내내 객체에 머물러있었다. 달리 이야기하면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게 아닐까 싶다. 나를 끌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배정받은 팀이 안 맞아서,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의 조합이 좋지 않아서, 맡은 업무가 주류가 아니라서...... 자세한 사례는 파도파도 끝나지 않을 만큼 많았다. 그런데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어보라는 이야기에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주체가 되고 싶지 않았다는 걸 불현듯 깨달았다. 계속 탓하고 핑계 댈 것이 많다는 것에 둘러싸여 있고 싶었다.
올해는 그동안과 다르게 하고 싶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늘 '퇴사'라는 돌하나를 품고 살아가는 나에게 힘써 경주하는 한 해를 선물하고 싶었다. 외부 탓 그만하고 안에서 터져 나오는 열정과 성심을 마지막으로 불살라보고 싶었다. 끝을 정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봤는데 그래도 이건 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그때는 후회 없이 다른 길을 선택하기 위함이었다. 올해의 끝에 서있다. 열매처럼 얻게 되는 달콤한 결실을 조용한 마음으로 수확 중이다.
직장생활의 부침을 감당하지 못하고 늘 남들이 만드는 물살에 이리저리 휩쓸리기만 하던 과거를 더이상 미워하지 않는다. 이제는 한편에 자리 잡고 내 파동을 만들어보고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를 신청하고, 안 해보던 집중근무반 활동도 지원해 보고, 기획과 보고서 쓰기에도 진심을 담아본다. 이 모든 과정을 가장 먼저 응원해 주었던 나의 상사처럼, 나만큼 절실하게 제 파동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동안 많이 아파봤으니까, 잠 못 이룬 수많은 밤을 보내본 사람이니까, 그들의 좌절과 아픔에 반응하고 새로운 걸음을 바라보고 믿어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