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속의 말은 크게 울려퍼진다.

by 바이올렛

소문으로만 듣던 그곳에 처음 방문한 건 몇 년 전이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고, 모두의 관심이 비밀리에 모이는 곳이라는 얘기를 듣고 깊은 밤 조용히 그곳에 가보았다. 조명이 몇 개 달려있지 않은 그곳은 어둡고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발밑엔 물이 고여있고 흔들리는 조명 사이에 언뜻언뜻 보이는 장면이라곤 검은 동굴벽이 전부였다. 무심코 가지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리자 동굴 전체가 왕왕 울렸다. 이곳은 작은 소리도 크게 퍼지는 곳이란걸 느꼈다. 무서웠지만 꾹 참고 한발한발 내디뎌보았다. 비좁은 동굴틈 사이로 빨간 불빛이 들어오는 곳에서부터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서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가까이 가보았다. 가까워질수록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욕이었다. 남욕하는 소리, 그것도 충분히 실명을 유추할 수 있을만큼 구체적으로 한 명을 재물대 위에 올려놓고 잘근잘근 씹는 소리였다. 깜짝 놀라, 그것을 듣고 있는것만으로도 공범이 된 것 같아 서둘러 동굴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그날 입었던 옷을 모두 버렸다. 그장소에 다녀왔다는 것, 동굴속 공기에 오염된 것 같아 몸을 깨끗이 씻고 잠들었다. 두 번 다시는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몇 해가 흘렀다. 그때 그 동굴이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혹시 나만 모르는 소문이 돌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알아두면 눈치껏 살아가는데 혹시 도움되는 일이 있지는 않을까, 싶었지만 사실 남욕하는 사람들 사이에 엉덩이를 디밀고 앉아 한자리 차지하면 적어도 내가 재물대 위에 올라가는 일은 안생기지 않을까 하는 꿍꿍이도 들어있었다.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먼저 비난하는 입장에 서서 자신을 지켜야겠다는 계산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조금의 죄책감과 함께 이번엔 손에 등불을 하나 비춰들고 한걸음씩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더 빨리, 더 많이 여러 군데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귀담아 들을 수 있었다. 놀라거나 숨으려 들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렸다. 가지고 있던 등불 덕분에 말하는 사람들의 입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달랐다. 분명 이미 알던 그 사람의 웃음기 어린 미소가 있던 자리에 경멸과 비난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다. 씰룩거리는 입가에 조소가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이번 방문도 잘못됐다는 걸 알고 서둘러 뒷걸음질쳐 나왔다. 등불은 나오면서 잃어버렸다.



다시 여러 해가 흘렀다. 그동안 세월이 할퀴고 간 자리에는 통증 대신 무덤덤한 흉터만 남아있다. 어쩌면 동굴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를 시간을 보내고 왔다. 막상 재물대 위에 올라가보니 두려워한 것에 비하면 고통이 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소문은 몇 년간 끈질기게 쫓아다닐 수 있다는 것, 한 번 붙은 따가운 관심은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가 교훈처럼 남았다. 오랜만에 동굴에 한 번 들어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모두 서둘러 허겁지겁 도망치듯 나왔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왜 다시 들어가고 싶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이번엔 더 대담해졌다. 배터리를 넣어 사용하는 손전등을 준비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은밀한 이야기를 자세히 보고싶어졌다. 동굴 구석구석 방마다 일일이 들어가보면서 사람들의 인원수, 얼굴 생김새, 말할 때의 표정, 낄낄거리는 웃음소리, 그아래 떨어져서 모인 축축한 물을 천천히 감상하듯 후레쉬로 비춰보았다. 날이 새는줄도 모르고 대부분의 방을 뒤져보고 나서야 이상한 안도감을 느낀채 동굴밖으로 나왔다. 다음날도 다시 가서 같은 행동을 했다. 혹시 어제 놓친 이야기가 있는지, 잘못 본 건 없는지 다시 살폈다. 이번에도 내가 재물대 위에 없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나오다가, 유난히 큰 소리가 나는 방이 있어 고개를 돌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재물대 위에 잠들어있는 줄 알았던 이가 사실 눈을 감고 숨죽인채 울고 있는 장면을. 그방에 있던 사람들은 돌아 누운 재물의 들썩거리는 어깨를 모른채 허리를 꺾고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었다. 최소한의 방어도 할 수 없게 모두가 지켜보고, 모두가 송곳같이 뾰족한 시선으로 상처를 헤집고 있었다. 뒷골이 서늘해졌다. 후레쉬를 떨어뜨렸다. 킬킬거리며 웃던 시선이 내가 있는 자리로 오기 전에 뛰어나왔다. 눈가가 따가웠다. 눈이 뜨거워졌다.



"투명한 소통을 통해 지속가능한 조직문화를 만듭니다."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슬로건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의 감사, 감찰부서에서는 블라인드를 모니터링하고 실제로 업무에 활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조직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치료할 수 있다는 순기능만 있으면 좋겠지만, 익명성 뒤에 숨어 무방비 상태의 희생자 등에 칼을 꼽는 비인간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건 아닐까? 앞에서 못 할 말은 뒤에서도 못 할 말인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블라인드 재물대 위에 올라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극심한 통증을 느낄 것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호기심을 채우고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 이만하면 내 직장생활에는 문제가 없음에 안도하는 이상한 평온함을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꽉 막혀서 소통의 물길을 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과거에서 상호 존중하는 이상향으로 나아가는 미래로 가기 위해,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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