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쉼표를

큰 아이 여섯 살에 육아휴직 시작

by 바이올렛



엄마가 될 준비


나는 큰 아이를 출산하기 이틀 전까지 사무실에서 멀쩡히 근무를 하고, 바로 이틀 후에 아이가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평소처럼 퇴근을 했다. 금요일 저녁의 퇴근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운 발걸음 일 수 밖에 없다.


바로 다음날, 토요일은 출산예정일을 앞둔 마지막 정기검진일이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양수가 부족해서 뱃속의 아이가 위험하다는 거다. 우리 부부는 그게 출산 전 마지막 식사인 줄도 모른 채 냉면 한 그릇씩을 얼른 먹고는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다급하게 도착한 대학병원에서는 지금 규칙적인 태동이 있으니, 바로 분만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그날 밤을 꼬박 병원에서 지새운 후 나의 생애 첫 출산은 4시간의 진통 끝에, 다음 날 오후 3시에 건강한 큰 아이를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출산 이틀 전까지, 내가 이틀 후 한 생명체의 엄마가 될 거라는 사실도 알지 못한, 그저 철없는 한 명의 여성일 뿐이었는데,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 이후의 내 삶은 마치 죽었다 깨어나는 것 같은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아이의 출산 후 나는 1년의 육아휴직 시간을 보냈고, 차츰 엄마라는 이름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 익숙함은 연년생으로 태어난 둘째의 탄생으로 다시 혼란과 바쁨, 한시도 놓칠 수 없는 긴장 속의 하루하루로 나를 빠르게 데리고 갔다.


그 희미한 기억 속의 나는 아기가 싼 똥 묻은 바지를 빨고 있거나, 두 아이를 재우고 주방에 조용히 나와서 이유식을 만들고 있거나, 인터넷으로 기저귀를 신청하고 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5살, 6살이 된 두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고 나는 직장에 복직해서 열혈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섯 살 엄마의

육아휴직


하루는 퇴근 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 전에 급히 찾은 마트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달부터 정규직 된대. 그래 여기 복지가 좋아. 이런 직장이 어딨어? 열심히 다닐 거야.”


나는 서두르던 내 발걸음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트에 갓 취직하신 한 아주머니는 당신의 새로운 직장에 이렇게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채워나가시는구나. 그리곤 이어서 내 자신에게로 관심의 눈길을 보냈다. 그런데 나는?


나는 그 당시, 직장과 집안일, 아이 둘을 키우는 것에 완전히 지쳐 있었다. 그때 내 눈엔 직장의 안정성이나 매월 차곡차곡 들어오던 월급, 훌륭한 복지, 좋은 동료들, 내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업무에는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 가치인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이미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쓴 책을 찾아서 읽었다. 강연도 들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의 소리에도 더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나는 발견했다. 나는 "나 자신으로 온전하게 살고 싶다는 것"과 그런 "안정감 있는 나"에게서 나오는 좋은 기운으로 아이들을 "바르고 온전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내 안의 열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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