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기억상실증

기억나지 않는 몇 년

by 바이올렛





육아의 무게


지난 몇 년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마치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오늘이 된 것 같은 말도 안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내가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지난 몇 년의 시간 동안에도 나는 좌절하고 깨우치면서 아주 미세하게나마 성장했을 텐데, 그 기억이 또렷하지가 않다.


대신 그 자리엔 아주 뿌연 알 수 없는 막막함과 죄책감, 고단함이 불규칙하게 뒤섞여있다. 그것을 한 겹 한 겹 들춰서 보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 왜 아이를 키운 지난 몇 년을 이렇게 미워하게 된 걸까? 어쩌면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 이타적이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적도 없을 텐데, 왜 나는 그 시간을 부정하려는 걸까?


그 내면엔 너무 힘들었다고, 그 몇 년이 너무 깊은 심연처럼 차마 탈출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처지같이 무섭고 어두웠다고, 두려웠다고 외치는 내 속마음이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감히 그 아픔과 고통에 손을 대서 쓰다듬지도 못할 만큼 그렇게 힘겨웠다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이런 기분이 아닐까? 가사와 육아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엄마에게 주어지는 그 무게는, 처음 엄마가 되어보는 많은 여성들에게 참으로 속절없는 책임을 지우곤 한다.


나는 6년 전, 첫 아이가 나에게 찾아온 것을 안 그 날부터 오늘까지 참으로 천천히, 오롯이 엄마가 되기를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시간 동안 더 이상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나의 삶과 나의 아이를 온전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기억나지 않는 나의 몇 년은 또 한 편으로는 꽤나 담담하게 성장한 내 자신을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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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기억


이렇게 희미해진 기억과 엄마로서의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더듬더듬 짚어갈 무렵,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아이들의 출생 때부터 지금까지 찍은 모든 사진이 든 노트북이 랜섬웨어에 감염된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비록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어서,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내 기억을 대신해줄 장비의 문제로 아이들의 사진을 잃을 순 없었다. 그 길로 바로 컴퓨터 수리점에 갔고, 나의 20대 유학 시절의 모든 사진은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나에게 보물과도 같은 아이들의 모든 사진은 기적적으로 구할 수 있었다.


다른 모든 가치와도 바꿀 수 없는 아이들의 성장기록을 살렸다. 그것은 내가 아이들을 눈물로, 사랑으로 키운 지난 몇 년의 기억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시는 아이들을 키웠던 지난 6년의 기억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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